-
2014년, 3년 전 4월 16일. 침몰하는 세월호의 승객들을 향하여 이준석 선장이 무책임하게 반복해서 외친 소리입니다. 배는 이미 엎어져 차갑고 깊은 물속으로 빨려 들어가는데, 배에는 470여 명의 귀한 생명이 있는데, 책임을 져야 할 선장과 선원들은 자기 살길만을 구하여 승객을 내팽개치고 가만히 있으라고만 외쳤습니다. ‘가만히 있으라, 가만히 있으라.’ 부활하신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며 기적을 행하는 베드로와 요한을 향해 산헤드린 공회가 요구한 말입니다. ‘그들을 불러 경고하여 도무지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하는 이들을 향해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
말씀
여성삼 목사(천호동교회)
2017.04.12 13:21
-
예전에 시내산 가는 도중 르비딤에서 척박한 곳에서 자라는 우슬초(히솝, 에조브)를 보았습니다. 그 인연으로 구속사에서 우슬초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 생각하다가 우슬초는 예수님 자신을 닮은 풀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사순절을 맞아 우슬초가 왜 구속사의 주요한 사건과 정결의식에 등장하는지를 통해 은혜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우슬초는 예수님과 구원을 상징합니다. 출애굽기 12장 22절에서 맨 처음으로 우슬초가 등장합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애굽에서 장자의 죽음을 면하고자 하나님의 지시대로 문설주에 우슬초 묶음에 피를 적셔서 문 인방 좌우 설주에 뿌려 장자의 사망에서 구원을 받습니다. 우슬초는 잎과 줄기가 솜털처럼 되어 피를 묻히기에 용이합니다. 우슬초 묶음에 어린양의 피를 묻혀 문지방과 인방에
말씀
장석규 목사(서대구교회)
2017.04.05 16:33
-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딤전 1:12) 믿음으로 낳은 아들 디모데를 향한 바울의 이 고백이 평생 제 목회에 표제가 되었습니다. ‘충성되이 여기셨다’는 말을 되새기면서 충성과 열정을 잃지 않고 초심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부족하고도 부족한 나를 충성되이 여기시는데, 자격이 없는 나에게 거룩한 직분을 맡기셨는데’라는 마음으로 다시 주님 앞에 설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목회의 말년을 보내는 저의 고백은 “주님이 모든 것을 다 하셨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부르셨고, 주님이 인도하셨고, 주님이 능력을 주셨고, 주님이 부흥케 하셨습니다.행정적인 요건이 갖추어졌다고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격이 있어서 목사가 되는 것이
말씀
원팔연 목사(바울교회)
2017.04.05 16:01
-
이 땅에 살아있는 모든 사람의 관심사는 행복이요 누림일 텐데요. 특별히 우리나라나 동양권에서 이 ‘복’에 특별한 관심과 애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목사로서 가슴이 아픈 것은 많은 사람들이 ‘복’ 때문에 삶을 허비한다는 점입니다. 이미 ‘복’은 한탕주의, 뒤집기, 지름길, 줄, 일확천금의 방법으로 오염되고 이와같은 기류에 많은 사람들이 더 힘들어지고 좌절하며 파괴적이며 더 불행을 자처하는 잘못된 방법과 길을 찾아 헤매는 아비규환의 내면적 혼란이 우리의 인생과 가정과 교회를 너무 힘들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인간으로서 품위를 지키며 복의 실체를 경험할 수 있는 길일까요?저는 그 유일한 길이 ‘뚜벅이 인생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지름길을 찾고, 일
말씀
김진오 목사(한빛교회)
2017.03.08 16:41
-
저는 개인적으로 기독인들이 주고받는 말에서나, 말씀이 증거되는 강대상에서 무조건 ‘복 받아라!’는 표현이나 ‘무조건 잘 될 것’이라는 식의 주장을 몹시도 싫어합니다. 한때 로버트 쉴러 목사의 ‘가능성의 신학’이 우리 조국과 신자들의 마음을 사로잡고 거센 부흥의 기조에 기여를 했던 바도 있었지만 다소 분별없이 사용된 ‘복’ 일변도의 가르침이나 주장은 이제 한국교회의 짧지 않은 역사 속에서 재조명되고 재평가되고 있는 분위기입니다.이로 말미암아 많은 지식인들과 젊은 신자들의 냉소적이고 관망적이며 유보적인 신앙은 오늘날의 교회에 큰 부담과 걱정이 되고 있습니다. 최근의 인구센서스의 통계에서 우리나라의 종교선호도에 기독교가 1위를 하는 놀라운 결과가 나왔습니다. 그러나 어느 기관의 통계에 따르면 가나안성도
말씀
김진오 목사(한빛교회)
2017.03.02 15:12
-
기업(heritage)이란 부모로부터 물려받는 유산 또는 축복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이 기업을 물려주시는 주체가 부모가 아닌 하나님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이사야 54장을 통해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종들이 얻을 기업을 네 가지로 선포합니다. 첫 번째 기업은 ‘급격한 변화의 축복’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여호와의 종들이 얻는 변화가 얼마나 좋은 것인지, 이사야 54장 1절은 ‘노래할지어다’라는 선포로 시작됩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백성은 여인으로 비유되는데, 이 여인은 1~3절에서 잉태하지 못하고, 출산하지 못한 대단히 비참한 여인으로 묘사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변화 받아 집을 넓히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자녀를 얻게 되었습니다.(2절) 4~8절에 등장하는 여인은 세계에서
말씀
윤창섭 목사(강릉중앙교회)
2017.02.22 18:33
-
오늘 말씀은 구약시대의 예배 시에 사용한 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대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축복의 도구로 쓰시고 그들에게 축복의 언어를 주시고 그 두 가지를 도구를 통해 자기 백성들을 축복하십니다. 대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축복의 언어는 내용 없는 공허한 언어가 아닙니다. 반드시 현실적인 실체로 나타납니다. 아론의 축복이 반드시 현실적인 실체로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증하는 이유는, 첫째로 축복의 도구가 하나님이 직접 택하신 도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론과 그의 아들을 부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그들의 축복의 언어도 그들 스스로가 고안해낸 언어가 아니라는 것입
말씀
윤창섭 목사(강릉중앙교회)
2017.02.08 14:58
-
독일성서공회(Deutsche Bibel Gesellschaft)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여 그동안 독일어권에서 가장 많이 보급되고 사랑받는 루터성경(LB) 1984년 판을 개정하여 2017년 판을 선보였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이상 성직자의 전유물이 아니라 모든 신자들의 것이며 누구나 쉽게 자신에게 편한 언어(당시 루터는 독일어)로 읽어야 한다는 종교개혁가의 정신을 오늘에 되살린 것이라 생각한다. 성경은 이처럼 시대의 요청과 변화의 옷을 입을 줄 아는 유연함의 총체이다. 더구나 성경이라는 말의 어원인 Βι?βλι?α(비블리아)는 단순히 ‘책의 모음, 책들’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이 비블리아라는 말은 한편으로 성경(Bibel, 비벨[독어])이라는 말의 어원이 되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책을
말씀
김영인 교수(서울신대)
2017.02.08 14:55
-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교회력은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어떠한 위대한 일을 행하셨는가를 생동감 있게 표현하기 위해 자연스럽게 생성된 것이다. 교회력은 한마디로 말해서 1년을 그리스도의 생애 주기에 맞춘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력의 중심은 단연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교회력을 성실하게 지킬 때 우리는 1년 내내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를 드리게 된다. 그러면서도 교회력은 우리의 예배를 다양하게 만들어 주는 좋은 수단이다. 매주 반복되는 예배가 단조롭고 지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우리는 예배에 변화를 주기 원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예배형식을 ‘파괴’하기도 한다.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예배의 형식에는 예배의 내용이 담겨있기 때문에 형식을 파괴하면 내용까지 파괴될 가능성이 크다. 그러므로 예배
말씀
조기연 교수(서울신대)
2017.01.24 17:04
-
예수님은 우리 모든 사람들의 삶의 본질을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진 자’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이 수고와 짐의 핵심은 무엇입니까? 미시적으로 보아서 우리의 직업이나, 주어진 스트레스 정도는 아닐 것입니다. 더 근원적으로 살펴볼 때 ‘죄’를 발견합니다. 우리는 죄로 인해 수고롭고 무거운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는 이런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의 모습을 언론 보도를 통해 매일 마주칩니다. 청문회, 재판석 등에서 자신의 거짓을 들키지 않으려고 수고로이 애쓰는 사람들이 많음을 보게 됩니다. 자신의 죄와 잘못을 토설하면 그 마음이 자유를 얻고 용서의 기회를 얻을 것인데, 진리와 사실 앞에서 결단을 하지 못하고 언제 들킬까 조마조마하면서 힘겨워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봅니다. 그들을 미워하기보다 연민
말씀
이성준 목사(성산교회)
2017.01.24 16:59
-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 맡은 자에게 언제나 가슴에 불을 붙여 주는 힘이 있습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그를 모태에 짓기 전부터 알았고, 그를 성별하여 여러 나라의 선지자로 세웠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유다 말기의 영적으로 혼란스러웠던 시기에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로서 나라의 경계를 넘어서 귀하게 쓰임 받는 사명의 자리에 초대받은 것입니다.그런데 하나님께서 부르신 자리에 서기 위해서 그는 먼저 자기 자신 안의 열등감을 넘어서야 했습니다. 주님의 분명한 음성을 들었음에도 그는 자신을 표현하기를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 하나이다’라고 하나님 앞에 고백합니다. 이 고백은 그의 겸손함의 표현일수도 있지만, 그의 솔직한 심정을 대변해 주는 듯합니다. 그는 아직 자신을 아이로 여기고 있습니다.
말씀
이성준 목사(성산교회)
2017.01.11 15:15
-
2016년 12월 29일에 재미있는 문자를 선물로 받았습니다. “매년 저희 택배회사를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문하신 ‘나이 한 살’은 연말인 관계로 주문이 폭주하여 배송이 늦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2017년 1월 1일 자정까지는 도착할 것입니다. 이 상품은 본인을 꼭 찾아가는 고성능 칩이 내장되어 끝까지 추적합니다. 그리고 나이 한 살과 더불어 사은품으로 똥배와 흰머리, 눈가 주름살도 배달됨을 알려드립니다. 반품, 수령거부, 양도, 그리고 양수는 절대 불가한 상품이오니 착오 없으시기 바랍니다. - 주식회사 한 살로부터” 연말을 마무리하느라 복잡하였던 머리가 재미있는 글 때문에 잠시 맑아졌습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답장을 보냈습니다. “경비실에 맡겨주세요.^^” 두 밤을 자고 나니 한 살
말씀
<말씀> 노성용 목사
2017.01.04 14:12
-
송구영신 (送舊迎新)의 뜻은 ‘묵은 해를 보내고 새 해를 맞음’이란 의미입니다. 송구영신예배의 유래는 이렇습니다. 초대교회의 부활절이나 오순절, 혹은 순교자의 날과 같은 때, 전날 밤에 모여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영국의 열성적인 감리교도들은 1742년 브리스톨 근교의 킹우드(Kingwood)에서 신년 전날 자발적인 모임을 가졌는데, 이들은 신년 전날 밤에 모여 하나님께 기도하고 찬양을 드리며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밤을 보냈습니다. 이들의 열정적인 모임을 본 웨슬리가 이것을 채택하여 ‘언약의 예배’(Convenant Service) 혹은 '언양 갱신 예배‘(Convenant Renewal Service)라 부르며 예배를 공식화 했습니다. 후에는 야성회(Watch Night Worship)라고 불려
말씀
조종환 목사(오류동교회)
2016.12.28 14:47
-
야곱이 세상을 떠났을 때, 요셉의 형들은 걱정을 했습니다. 야곱이 살아있을 때는 요셉이 형들에게 함부로 하지 못하였지만, 야곱이 세상을 떠난 후에는 형들에게 복수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당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명령하여 이르시기를 네 형들이 네게 악을 행하였을지라도 이제 바라건대 그들의 허물과 죄를 용서하라 하셨나니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 죄를 이제 용서하소서.(17절)” 이것은 형들이 지어낸 말이었습니다. 요셉은 형들의 말을 듣고서 울었습니다. 요셉이 복수할 것이라는 오해를 가지고 걱정하고 염려하고 두려워하는 형들의 심정을 생각하니 안타까웠기 때문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말하기를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
말씀
노성용 목사(필그림교회)
2016.12.28 14:43
-
다윗은 하나님이 창조주 하나님이며, 만왕의 왕임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하나님께서 살아 계심과 상 주시는 왕임을 믿는 것입니다.(히 11:6) 이 믿음 때문에 다윗은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죄를 미워할 뿐 아니라 낙심과 좌절에서 승리의 삶을 감당했던 것입니다. 정말로 여러분들은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만왕의 왕 되심을 믿습니까? 믿는 사람이라면 삶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야 합니다. 왕이신 하나님을 믿는다면 쉽게 죄를 짓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어야 성전에 올라갈 때마다 하나님의 임재와 은혜를 경험하는 복을 받습니다.(5절) 물질의 축복도 누릴 수 있습니다. 다윗이 엄청난 축복을 받았던 것은 하나님을 왕으로 믿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것입니다.(대상 29장) 하나님을
말씀
김경두 목사(새소망교회)
2016.12.21 14:37
-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빛이신 그 분이 생명이십니다. 예수님은 빛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성탄절이 되면 성탄 트리에 불을 켜고, 또 불빛 장식을 많이 하는 것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축하하기 위함입니다.빛은 혼돈과 무질서를 물리칩니다. 태초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습니다. 빛이신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명하시니 빛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혼돈과 무질서가 물러가고, 질서와 가치가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어두움은 죄와 혼돈과 무질서와 악의 세력을 상징합니다. 요한1서 1장 5절에 보면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다”라고 선포 하십니다. 우리가 빛 가운데 거하지 아니하면, 어두움의 세력에 삼킨바 됩
말씀
안용식 목사(김해제일교회)
2016.12.21 14:21
-
성경을 보면 분명히 더 큰 은혜가 있습니다.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가장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전 12:31) 야고보서 4장 6절에도 “더욱 큰 은혜를 주시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에도 분량이 있습니다.(롬12:3) 즉 신앙이 성장하는 단계가 있습니다. 물론 성장의 목표는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는 것입니다.(엡4:13)오늘 본문에서도 우리는 영성의 단계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머물러 있는 시내산에는 3가지의 영성이 나타납니다. 1단계 영성은 산 아래의 평지 영성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 아래에 머물러 있습니다. 평지에 머물러 있는 백성들은 모세가 전해 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김경두 목사(새소망교회)
2016.12.14 15:42
-
로마서 13장 본문은 아주 명확하지만 이중 의미를 가지고 있어 매우 난해하다. 몇 가지 해석들이 제시되었다. 첫째로 모든 사람들은 위에 있는 로마의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 둘째로 이 명령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기보다는 바울의 자기 변증이다. 셋째로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권세에 순복하는 동시에 그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의 권세에 더 복종해야 한다는 기독교인의 저항권을 함축하고 있다. 넷째로 이 본문은 드러난 의미와 감춰진 의미의 이중 의미로 작성되었다. 드러난 의미로는 모든 사람들은 로마의 권세에 순복해야 한다. 감춰진 의미로는 기독교인들은 우상인 황제숭배를 근간으로 박해하는 로마의 권세에 저항해야 한다. 어느 것이 옳은지 살펴보자.문학양식을 보면, 본문이 속해 있는 단락(롬 13:1~7)은 1절과
말씀
김희성 목사(길벗교회)
2016.12.14 15:39
-
별로 드러나지 않는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만일 작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감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소명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 일이 크든지 작든지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없이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예수님 당시 별을 따라 온 박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동경로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진행하여 아마도 여리고를 거쳐 35㎞를 더 서쪽으로 진행하여 예루살렘으로 왔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은 동방박사들은 별을 따라서 약 남쪽으로 15㎞ 정도 더 진행하여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동방 박사들은 예수님께 3가지 예물을
말씀
이성훈 목사(임마누엘교회)
2016.12.14 15:34
-
성탄절이 다가오면 예수님의 탄생이 함의한 구원사적 의미와 함께 동정녀 탄생(수태)의 신비감에 자연스럽게 몰입하게 된다. 예배 때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라는 사도신경을 암송하기에 더욱 친숙한 내용이다. 메시아의 탄생과 관련된 성탄의 이미지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탐색하면 믿음생활과 성경읽기에 매우 유익할 것이다. 예수님의 경이적인 탄생을 천사가 고지하는 내용은 마태복음(1:18~25)과 누가복음(1:26~38)에 생동감 넘치게 묘사되고 있다. 이것은 두 복음서의 기록당시 동정녀 탄생(수태)이 초기기독교공동체의 삶과 예배자리에 이미 확고하게 정착되었음을 반증한다. 마태와 누가가 천사의 탄생고지를 동정녀 탄생 이야기와 함께 기록한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된다. 실제로 천사의
말씀
윤철원 교수(서울신대)
2016.12.14 1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