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길로 돌아가니라

별로 드러나지 않는 일을 성실하게 감당하는 것은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만일 작은 일임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감당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소명의 사람이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 일이 크든지 작든지 남이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상관없이 그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의 모습은 아름답습니다. 

예수님 당시 별을 따라 온 박사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이동경로는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 다만 추측만 할 수 있을 뿐입니다. 그들은 동쪽에서부터 서쪽으로 진행하여 아마도 여리고를 거쳐 35㎞를 더 서쪽으로 진행하여 예루살렘으로 왔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에서 극진한 환대를 받은 동방박사들은 별을 따라서 약 남쪽으로 15㎞ 정도 더 진행하여 베들레헴에 도착했을 것입니다. 그곳에서 동방 박사들은 예수님께 3가지 예물을 드린 후 다시 고국으로 향하는 채비를 합니다. 그들이 고국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다시 왔던 길로 돌아가는 것이 이상적이었을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헤롯에게 예수님 탄생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또 그에게서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는 충분한 금전적 보상과 칭찬을 받는다는 것은 생각만 해도 신나는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천사를 통해 그 길로 돌아가지 말도록 꿈에 지시하심을 받습니다. 난감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기 때문입니다. 굳이 다른 길이라고 한다면 그들이 가야 하는 방향과는 정 반대인 남쪽으로 내려가서 한참을 우회하는 길인데, 그 길은 그들이 원래 이용하려고 했던 길보다 4~5배나 더 먼 길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될 경우 동방박사들을 비롯한 혹 그들과 함께 했다고 여겨지는 수행원들 모두는 헤롯에게서 얻을 수 있는 보상은 고사하고 경제적인 면에서 엄청난 타격을 감수해야 할뿐 아니라 생명의 위험도 감수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다른 길’이란 광야길로서 얼마나 위험한지 모릅니다. 즉 동방 박사들 일행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다른 길을 택했다는 것은 목숨을 걸고 가야만 했던 길이었습니다. 

성경에 의하면 동방박사가 “… 다른 길로 고국에 돌아가니라(헬.아낙소레오)”(마 2:12)고 국어성경에 번역하였습니다마는 헬라어의 아낙소레오는 ‘돌아가다’ (헬.아낙소레오)라는 말보다는 ‘고국으로 향하였더라’는 의미에 더 가깝습니다.

성경은 동방의 박사들이 고국으로 무사히 돌아간 것에 주안점을 두거나 혹은 그들이 무사히 고국에 도착했다는 정보를 주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택할 수 밖에 없었던 다른 길은 목숨을 내놓고 손해를 감수해야 갈 수 있는 길로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그 길을 향해 갔다라는 말씀에 주안점을 두고 싶었던 것입니다. 동방박사는 예수님을 만난 후 나름대로 사명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한 페이지를 장식하였던 것입니다. 

동방박사들의 모습은 교회 안에서 묵묵히 십자가를 감당하는 무명의 신실한 성도들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합니다. 비록 그들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으나 ‘다른 길’을 주저하지 않고 묵묵히 걸어간 그들의 순종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에 잊혀질 수 없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좋은 일군들이었습니다. 정말로 훌륭한 일군들이었습니다.

교회 안에도 이름이 드러나지 않는 일에 묵묵히 충성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묵묵히 제 할 일을 해 나갑니다. 이는 교회를 존재하게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됩니다. 교회와 하나님을 위하여 희생과 헌신할 각오를 가지고 소명으로 가득 찬 사람들이 있는 교회야말로 우리가 꿈꾸는 교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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