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6:22~27)

윤창섭 목사
오늘 말씀은 구약시대의 예배 시에 사용한 축도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복을 주실 수 있습니다만 하나님은 대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축복의 도구로 쓰시고 그들에게 축복의 언어를 주시고 그 두 가지를 도구를 통해 자기 백성들을 축복하십니다.

대제사장 아론과 그의 아들들의 축복의 언어는 내용 없는 공허한 언어가 아닙니다. 반드시 현실적인 실체로 나타납니다. 아론의 축복이 반드시 현실적인 실체로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증하는 이유는, 첫째로 축복의 도구가 하나님이 직접 택하신 도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아론과 그의 아들을 부르셨고 하나님이 그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축복의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두 번째로 그들의 축복의 언어도 그들 스스로가 고안해낸 언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입에 그 언어를 집어넣어 주신 것입니다. 실제로는 “그들에게 복을 주리라” 이렇게 단언적으로 선언하신 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대제사장의 축복은 현실적으로 반드시 성취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축복하신다고 할 때 우리는 아마 물질적인 축복과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자녀들이 잘 되기를 또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인정받고 좋은 평판을 누리시고 건강과 장수의 축복을 받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축복은 그 색깔이 조금 다릅니다.

첫 번째 축복은 보호의 축복(Blessing of protection)입니다. 여기서 지킨다고 하는 것은 목자가 양을 지키듯이 울타리를 치고 갖가지 위험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축복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참으로 얼마나 위험한 세상입니까?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참으로 기적이고 얼마나 큰 축복입니까?

두 번째 축복은 은혜의 축복(Blessing of grace)입니다. 은혜의 개념은 여호와께서 얼굴을 우리를 향해 돌리시고 환한 빛을 비추어 주고 있는 것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얼굴빛을 비추어 주신다면 우리 피조물들은 얼마나 용기를 얻고 얼마나 생기를 얻고 얼마나 새 힘을 얻겠습니까? 죄가 있는 자는 죄사함을, 슬픔이 있는 자는 기쁨, 무능력한 자는 능력을, 소망 없는 자는 소망을, 망한 자는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용기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세 번째 축복은 평강의 복(Blessing of peace)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부요를 누리고 아무리 존귀를 누려도 심령의 평안이 없으면 그것은 큰 폐단입니다. 평강의 복은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대제사장이 축복기도를 할 때에 이스라엘 백성 여러 명을 놓고 축복합니다. 그런데 이 축복의 말씀은 언제나 단수로 기록이 되었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며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단수입니다. 너희들에게 복을 주시고 너희들을 지키시기를 원한다고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놓고 축복할 때에 단수를 사용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 전체를 하나로 보셨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 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가 될 때에 하나님은 우리에게 축복을 주시되 보호의 축복과 은혜의 축복과 평강의 복을 내려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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