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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이 세상에 살면서 그래도 성공했다고 하는 사람들을 보면 한 가지 특징이 있는데 누구를 봐도 자기가 하는 일에 아주 기뻐하고 즐거워 한다는 것이다. 자기 일이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그 일에 도취되어서 기뻐하는 그런 인생을 사는 사람이 성공하는 사람인 것이다. 최고경영자들은 자기 맡은 일을 기쁘고 즐겁게 하며 감사하는 직원을 요구한다. 하나님도 우리가 행복하고 즐겁게 살기를 원하신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씀했는데 한두 번 기뻐하라고 말하지 아니하고 항상 기뻐하라고 말하고 한두 번 기도하라는
말씀
김이겸 목사(온누리교회)
2017.11.15 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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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가 만일 성경에 기록된 대로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하신 최고의 법을 지키면 잘하는 것이거니와”(약 2:8)‘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이 말씀은 레위기 19장 18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사도 야고보는 이 말씀을 ‘최고한 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그 당시에는 로마의 황제가 제정한 법은 절대적인 구속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 누구도 감히 황제가 제정한 법은 어길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만왕의 왕 되신 하나님,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니 감히 이 세상에 그 누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길 수 있겠습니까? 성경에 기록된 말씀은 최고한 법입니다. 최고의 법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누구도 이 말씀을 어긋나게 할 수가 없습니
말씀
김이겸 목사(온누리교회)
2017.11.08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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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본문과 관련하여 두 가지 질문이 있을 수 있다. 하나는 이 구절의 의미가 무엇인가이고, 다른 하나는 왜 새끼 염소를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아야 하는가이다. 첫 번째 질문인 이 구절의 의미는 새끼 염소를 그 어미의 젖으로 요리하지 말라는 것으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두 번째 질문인 왜 그렇게 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찾는 일은 쉽지 않다. 그래서 이 본문에 대하여 주석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나누어진다. 지금까지 제기된 의견들을 종합해 보면 다음과 같다. 1)이교들이 행했던 우상숭배와 관련된 관습이다. 2)토지를 더욱 비옥하게 만들기 위해 실시했던 일종의 주술적 행위이다. 3)어미의 젖으로 그 새끼를 삶는 것은 잔인한 행동이다. 4)젖과 고기를 함께 먹으면 소화하기가 어렵다. 5)그
말씀
권혁승 교수(서울신대 구약학)
2017.11.08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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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를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고난을 맛보지 않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실패를 싫어하고 고난을 두려워합니다.만사형통, 무병장수만이 복이 아닐진대 우리는 만사형통을 구하며 무병장수를 소원합니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우리는 어릴 때부터 이미 수많은 실패와 고난을 경험하며 살아왔습니다. 엄마, 아빠라고 말하기 전에 수많은 옹알이를 하였고 두발로 걷기 전에 수도 없이 넘어지고 또 넘어졌습니다. 그런 수많은 실패와 고난을 겪고 나서야 짧은 한마디 말이어도 바로 말할 수 있게 되었고 한 걸음이더라도 똑바로 걸을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그런데 이런 사실을 잊어버리고서는 우리는 항상 실패 없는 삶, 고난 없는 인생을 꿈꾸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고
말씀
차승환 목사(선화교회)
2017.09.20 1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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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4일 주일예배를 드린 후 출국하여 9월 6일 새벽 프랑스의 생장(Saint Jean Pied de Port)에 도착, 이후 27일만인 10월 2일 산티아고(Santiago de Compostela)대성당 광장에 도착했다. 아쉽게도 필자에게는 일행이 없다. 따라서 광장의 여기 저기에서 터져나오는 함성소리는 내 몫이 아니다. 어디선가부터 먼 까미노를 걸어 광장에 도착한 동료들을 환영하고 축하하는 외침이다. 순례길을 마친 순례자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뒤풀이를 한다. 어떤 이들은 광장의 바닥에 드러누워 긴 여정을 마감한다. 어떤 이는 감격의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서로 부등켜안고 뛰며 좋아한다. 혹은 열심히 셀카를 찍어 그 감격을 남기기 위해 노력한다. 나는 눈물도 흘리지 않았다. 걷는 중에 주님과 교
말씀
한국성결신문
2017.09.20 1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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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2,700년 전에 이스라엘은 앗수르로부터 공격을 당해서 국가적인 위기를 겪습니다. 이미 첫 번째 침공 때 성전기둥에 있는 금까지 긁어다가 조공을 바치며 굴욕적인 항복을 하였음에도 만족하지 못한 앗수르 왕 산헤립에게 2차 침공을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 히스기야는 인간적인 수단과 방법으로는 위기를 극복할 수 없음을 알았습니다. 만약 극복한다고 하더라도 임시방편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깊이 깨닫습니다.그래서 2차 침공을 받아서 예루살렘 성이 포위되었을 때 그는 성전으로 올라갑니다. 히스기야는 그곳에서 하나님께 간절한 기도를 올려 드립니다.하나님은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사자를 보내셔서 하룻밤 사이에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던 앗수르 군사 18만 5,000명을 송장이 되게 하십니다.
말씀
차승환 목사(선화교회)
2017.09.13 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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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가장 좋았던 것은 새벽 시간이었다. 한국에서도 날마다 새벽에 기도한다. 내가 신학교를 간다고 했을 때 목사 사모였던 모친은 아들이 새벽에 일어나 기도회를 인도하여야 할 것을 가장 걱정할 정도로 아침 잠이 많은 나인데, 1년에 몇 번의 실수를 제외하면 거의 매일 새벽 기도를 하였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의 30일은 30여 년 목회의 어떤 특별새벽기도회보다 은혜로운 시간의 연속이었다.날이 밝지 않은 이른 새벽부터 해가 떠올라 사람들의 눈을 의식해야 하는 순간까지는 온전히 주님과 나만의 시간이었다. 다른 사물들이 잘 보이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눈을 의식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어두움이 주는 유익일 것이다. 헤드 랜턴으로 겨우 내 앞만 비추며 시골길을 걸으면서 주님만 생각할
말씀
이선학 목사(주사랑교회)
2017.09.13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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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심한 그리스도인은 분별의 힘이 있습니다. 사울이 회심하는 장면은 행 9장 17~18절입니다. “형제 사울아 주 곧 네가 오는 길에서 나타나시던 예수께서 나를 보내어 너로 다시 보게 하시고 성령으로 충만하게 하신다 하니 즉시 사울의 눈에서 비늘 같은 것이 벗어져 다시 보게 된지라” 여기서 비늘은 그리스어 λπει′ 입니다. 이는 ‘꽃봉오리의 겉 깍지’입니다. 꽃봉오리를 둘러싸고 있는 겉 깍지가 벗겨져야만 꽃이 피고 향기도 나고 결국에는 열매를 맺게 되겠지요. 사도바울같이 회심하여 분별의 힘을 얻는 것은 오직 성령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있어야만 가능합니다. 갈 6:1에는 회심한 그리스도인을 ‘신령한 너희는’이라고 표현하는데 ‘신령한’ 이는 그리스어로 πνευματικο′로서 ‘성령에 의한’, ‘성령으로 나
말씀
한상균 목사(부평현대교회)
2017.09.06 14: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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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걷는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30~34일 정도의 일정으로 걷는다. 모든 길은 성당으로 연결되어 있다. 성당에서 제공하는 물과 식품, 잠자리 등의 편의를 얻을 수 있었다. 스페인이 가톨릭 국가이고, 야고보 순례길이 가톨릭에 의해 조성되었기 까닭에 각오한 것이었지만 개신교 목사의 눈에 비친 모든 마을의 모든 성당의 모습은 신학의 여부를 떠나서 못마땅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길을 걸으면서 만났던 여러 가톨릭 신자들은 그들이 결코 마리아를 비롯한 여러 성인들을 숭배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깊은 존경을 표현할 뿐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내 눈에는 지나치게 보인다. 까미노를 걷는 중에 만나는 모든 마을은 수호성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의 성당에는 수호성인이 가장 돋
말씀
이선학 목사(주사랑교회)
2017.09.0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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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유(praυ′thV)는 ‘명문가에서 태어나다’, ‘가문이 좋다’는 뜻이 있습니다. KJV, NIV는 ‘gentleness’로 번역해서 ‘①기질, 본성이 점잖고 부드럽다’, ‘②행동, 몸가짐이 예의 바르고 질서가 있다’라고 이해를 돕습니다. 술주정이나 도박, 쌍욕 등 폭력적인 언동은 가정의 내력과 무관치 않습니다. 학습된 것이어서 목회자나 평신도 구분 없이 때마다 일마다 심통을 부리고 교회, 가정, 교단, 사회와 국가에 분란을 일으킵니다.‘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에서 ‘이 세계’는 본문인 그리스어 ‘bι′bloV genε′sewV’ 인데 이는 성경적인 가계(계보)를 뜻합니다. KJV, NIV도 ‘世界’(지경계, the world)가 아니라 이을 ‘계’를 써서 ‘世系’(
말씀
한상균 목사(부평현대교회)
2017.08.30 1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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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27일 동안 걸어 10월 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 사흘을 더 걸어 피니스테레에, 하루를 더 걸어 무시아에 도착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는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를 염려한다. 첫째가 발에 생기는 물집이다. 나는 새 깔창에 덧신까지 신어 예방하고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면서 발바닥을 잘 주물러주어 발을 달랬다. 둘째는 베드 버그(빈대)다. 값싼 숙소 알베르게의 침대는 빈대들의 좋은 안식처가 된다. 나는 침낭 안에 빈대가 싫어한다는 계피를 사서 넣고 다녔고, 베드 버그를 방지할 수 있다는 액체를 아마존에서 구입하여 미리 침낭에 뿌렸다. 셋째는 날씨다. 이는 어떤 예방책도 없다. 그저 대비책만 있을 뿐이다. 배낭용 방수 커버, 사람과 배낭을 함께 덮을 수 있는 판초 우의를 준비했다
말씀
이선학 목사(주사랑교회)
2017.08.30 14: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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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에 보면 길가에서 살던 바디메오는 길이신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이 계신 낙원에 들어가 영원한 안식을 누리며 살고 있습니다.인간은 길에서 필요한 것을 얻어서 살아갑니다. 길은 사람이 걷다가 앉아 쉬기도 하며, 사람들이 모여 대화를 나누는 현장이기도 하고, 때로는 물건을 사고파는 현장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그 길가에 앉아 왕래하는 이들에게 구걸하여 생명을 연장하기도 합니다.(막10:46~52) 본문 말씀에 길가에서 구걸하며 나날을 사는 바디메오는 모든 인간의 길을 잘 보여 줍니다.바디메오는 나면서부터 맹인이었고, 아비 디메오에게서 태어나 나면서부터 구걸하며 살았습니다. 이와같이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계획하심 따라 어미 모태에서 지음 받아(시139:13~16) 빈손으로 태어나 평생을 주변에서
말씀
이영식 목사(벧엘교회)
2017.08.23 1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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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주일과 마찬가지로 새벽, 1,2부, 오후예배를 마친 후 아내와 공항으로 향한다. 혼자서 장기간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아내의 걱정 어린 눈길을 느끼며 배낭을 메고 출국장에 들어선다. 절약을 위해 배낭을 메고 비행기를 탄다. 지금은 등산용 폴을 휴대하고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비행기에 올라 기도한다. “하나님, 나의 앞길을 순적하게 인도하소서!” 파리에 도착한 후 버스를 타는 곳까지 30분을 걸었다. 공항에서 TGV를 타는 몽파르나스 역까지는 지하철, 버스, 공항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는데 한 번에 갈 수 있는 공항버스를 한국에서 예약했다. 아이패드에 담아간 티켓을 스케너로 ‘삑’, 좋은 세상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몽파르나스 역에 도착하니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예
말씀
이선학 목사(주사랑교회)
2017.08.23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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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35장의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서 무시하는 유다민족을 향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레갑 족속의 이야기를 통해 시드기야와 고관들이 풀어주었던 노예들을 다시 잡아들여서 노예로 삼는 잘못을 행한 이후에 예레미야를 통해서 레갑족속들의 삶을 보여주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불순종 가운데서도 이름도 빛도 없이 유목 생활을 하면서 조상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던 레갑 족속을 하나님은 지켜보고 계셨던 것입니다.본문에서 하나님은 예레미야에게 “레갑 족속들을 데려다가 성전의 한 방에서 그들에게 포도주를 주면서 마시게 하라”고 하십니다. 이 말씀을 들은 예레미야는 레갑 족속들을 데려다가 하나님께서 시키는 대로 합니다. 그러나 레갑 족속들은 포도주 마시기를 거부하면서 그들이 왜 마시지 않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
이승연 목사(푸른들교회)
2017.07.14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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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옆에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축복이고 행복인지 모릅니다. 서로를 신뢰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는 동역자의 관계, 얼마나 아름답고 큰 축복이며 행복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교회 안에서 목사님과 장로님이, 목사님과 모든 성도님들이, 또 성도님들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는 환상적인 동역자의 관계가 되기를 원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본문을 보면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자기가 쓴 편지와 함께 빌립보 교회로 보내면서 디모데가 어떤 사람인지를 쓰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보면 서로 신뢰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충해 주는 환상적인 동역자의 관계가 되려면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하는지 몇 가지 교훈을 받게 됩니다. 첫째는 뜻을 같이 하는 사람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빌립보 교회로
말씀
안상준 목사(좋은만남교회)
2017.07.14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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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말씀의 삭개오는 어린 때에는 모든 것이 정상으로 기대와 희망 속에 양육되었는데 어느 순간부터 또래 아이들보다 키가 자라지 않는 장애가 나타났습니다열등감은 모자람에서 시작합니다. 삭개오에게 생긴 열등감은 키의 저성장에서 시작되었듯이 삶의 현장의 모자람이 열등의식으로 발전하게 되고 각종 신음으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열등감에 빠지면 정상적인 삶의 길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삭개오는 나이가 더해 가면서 키의 저성장으로 인해 사회 생활에 여러 모로 벽을 느끼며 깊은 열등감에 빠져 들었습니다. 살기 위해 죄인이라 칭함 받는 세리의 삶으로 많은 재물을 얻어 부자가 되었고, 세무서 소장의 지위까지 얻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신체적 장애는 벗어날 수 없었고 그로 인한 열등감은 계속되었습니다. 세상 지위와 재
말씀
이영식 목사(벧엘교회)
2017.07.12 1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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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지난해 9월 4일부터 31일 동안 까미노 데 산티아고(Camino de Santiago)를 걸었다. ‘까미노’는 ‘길’을, ‘산티아고’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이하 산티아고)를 뜻한다. 즉 ‘산티아고로 가는 길’이라는 말이다. 산티아고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사도 중 최초로 순교한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있는 곳으로 알려졌다. 전승에 의하면 야고보 사도는 배를 타고 스페인의 갈리시아 지방(파드론과 피니스테레로 추정)으로 와서 이교도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했다고 한다. 그의 포교활동은 실패에 가까워서 소수의 제자만 얻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고 한다. 결국 그는 헤롯에 의해 참수형을 당했고, 제자들은 그의 시체를 수습하여 이교도 여왕과 로마 사절
말씀
이선학 목사(주사랑교회)
2017.07.1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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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인생은 선택의 연속입니다. 전공, 진로, 직장, 배우자 등 모든 것이 선택이며 결단의 문제입니다. 인생 자체가 선택의 연속이기에 선택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결과가 달라집니다. 우리 신앙 역시 선택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곧 선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신30:19) 대충 주일만 지키는 교인이 될 것이냐, 아니면 주중에도 진실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것이냐.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모든 영역에 적용할 것이냐, 아니면 필요에 따라서 말씀을 적용할 것이냐. 신앙생활은 이와 같이 선택의 연속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말씀
안상준 목사(좋은만남교회)
2017.06.07 1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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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에서 가장 유명한 길 세 개를 말하라면, 첫 번째는 ‘비아돌로로사’라는 예수님의 십자가 길입니다. 두 번째는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의 순례길로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헤롯에게 순교를 당하고 그 시신을 배에 실어 보냈는데 후에 이곳에서 유해가 발견되면서 생겨난 길입니다. 세 번째는 터어키의 드로아(트로이)에서 앗소까지의 50km 남짓의 바울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울길은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럽 선교의 교두보였던 드로아에서 일주일간을 머물며 마지막 밤을 새우며 강론할 때, 유두고가 졸려서 3층 누각에서 떨어져 숨지자 바울이 기도하여 살려낸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일행을 앗소에서 재회키로 하고 배를 태워 보내고 자신은 앗소까지 50km를 도보로
말씀
장석규 목사(서대구교회)
2017.04.19 1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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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은 2000년 전 금요일에 십자가에서 고난 받아 돌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목요일에 제자들과 성만찬을 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 밤새우며 기도하시고 붙잡힘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천군천사를 동원해 피할 수 있었지만 하나님의 뜻을 위하여, 성경말씀을 이루시려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붙잡힘 당하셨습니다.예수님은 금요일 새벽에 대제사장 앞에 끌려 가 갖은 모욕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무서운 채찍을 맞으며 쓰러지고 넘어지시며 골고다 언덕에 올라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셨습니다. “다 이루었다” 하시고 세상을 떠난 예수님은 물과 피를 모두 쏟아내고 완전히 죽으시어 요셉의 무덤에 장사지내고 인봉되었고 병정들이 그 무덤을 철저히 지켰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사흘 후 주일에 사망권세를 이기고 다시 사셨습
말씀
한국성결신문
2017.04.12 1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