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길에서 만난 성령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프랑스 생장에서부터 걷는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30~34일 정도의 일정으로 걷는다. 모든 길은 성당으로 연결되어 있다. 성당에서 제공하는 물과 식품, 잠자리 등의 편의를 얻을 수 있었다. 스페인이 가톨릭 국가이고, 야고보 순례길이 가톨릭에 의해 조성되었기 까닭에 각오한 것이었지만 개신교 목사의 눈에 비친 모든 마을의 모든 성당의 모습은 신학의 여부를 떠나서 못마땅한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길을 걸으면서 만났던 여러 가톨릭 신자들은 그들이 결코 마리아를 비롯한 여러 성인들을 숭배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다. 깊은 존경을 표현할 뿐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내 눈에는 지나치게 보인다. 까미노를 걷는 중에 만나는 모든 마을은 수호성인이 있었다. 그리고 그 마을의 성당에는 수호성인이 가장 돋보이게 그려져 있거나 만들어져 있었다.

내가 선입견을 가지고 보아서일지는 모르지만 성당을 들어서는 가톨릭 신자들이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보다 성인들의 성상에 더 관심을 가지고, 더 존경심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단순한 존경심의 표현을 훨씬 뛰어넘는 숭배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었다.

‘이 길의 주인이 누구인가’에 대한 질문을 계속하게 된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는 야고보 순례길이라고도 부른다. 종교적 이유로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은 야고보 사도를 존경하며, 그의 헌신과 희생을 묵상하며 그의 발자취를 따른다. 그렇다면 야고보가 야고보일 수 있었던 것은 무엇 때문인가? 예수님이시다. 그가 예수님을 만났기에 주님과 주님의 나라에 헌신하였다.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스페인을 찾았다. 순교하기까지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 때문이었다. ‘이 길을 걷는 많은 사람들이 이 길이 왜 생겨났는지, 야고보가 왜 이곳에 왔고, 이곳에 그의 시신이 있는지 그 근원적 이유를 깨닫게 하소서’ 기도하며 걷는다.

5일째 되는 날 나는 시라우키(Cirauqui)에서 몬하르딘(Monjardin)까지 걸었다. 이 날은 토요일이었고, 무척 더운 날이었다. 이미 나는 걷는 것에 익숙해졌고, 발은 속도를 낸다. 가이드북에 제안하는 거리보다 조금씩 더 걷기 시작한다. 몬하르딘에 도착했을 때는 씨에스타(낮잠으로 원기를 회복하는 시간으로 보통 오후 1~4시) 시간이었다.

알베르게 앞에 가니 사람들이 배낭으로 줄을 세워놓았다. 알베르게가 체크인 하는 시간이 1시인데 아직 시간이 되지 않아 사람들은 그늘에 앉아 쉬고 있고, 배낭이 대신한다. 나도 배낭에 줄을 세우고 조금 남은 그늘 끝자락에 앉아 발바닥을 주무른다.

1시가 되자 조금 전 내게 인사했던 중국인 아가씨가 등록을 받는다. 그녀는 그 알베르게의 오스피딸레라(hospitalera, 알베르게에서 봉사하는 여주인이나 여자 자원봉사자. 남자는 hospitalero)였다. 그녀는 능숙한 영어와 스페인어로 순례자들의 등록을 돕는다. 친절한 미소와 격려하는 말이 끊이지 않는다. 나이가 지긋한 한 여인이 자신은 불어만 한다고 하자 자신의 불어가 서툴다며 불어로 응대한다. 그런데 불어로 농담까지 한다.

저녁식사 시간에 30명쯤 되는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함께 식탁에 앉는다. 내 식탁에는 나 포함 7명이 함께 식사하는데 독일인 부부, 캐나다인, 미국인, 그리고 네덜란드에서 온 젊은 커플이 함께 앉았다. 네덜란드 커플은 그 알베르게에서 자원봉사하는, 결혼을 약속한 20대 초반의 젊은이들이었다. 스페인어, 영어, 독일어 등을 서로 통역해주며 서로를 알아간다.

식사가 마무리될 즈음 중국인 오스피딸레라가 와인잔을 가볍게 두드려 주의를 끈다. 선물을 주겠단다. 아주 작고 가벼운 선물이어서 짐이 되지 않을 것이란다. 그리고 쪽복음 요한복음을 거기 앉은 모든 사람들에게 주는데 각자 사용하는 언어로 된 것이다.

그 책이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고 간증을 곁들인다. 자신에게 나타난 변화를 알고 싶은 이는 언제든 찾아오라고 한다. 내 앞에 앉은 독일인 부부는 가톨릭 신자라고 하였다. 미국에서 온 팸(Pam)이라는 내 또래의 여인은 구세군 교회의 성도인데 독일어로 그들과 대화를 나눈다.

독일어로 된 요한복음을 받은 그들 부부는 곧바로 4쪽 정도를 읽어 내려간다. 대충 훑는 것이 아니라 정독한다. 팸이 그들에게 요한복음을 읽어보지 않았냐고 물으니 성경을 읽어본 적이 없다고 하여 나를 놀라게 했다. 그 알베르게는 저녁 9시에 ‘묵상 모임’(Meditation meeting)이라는 특별 순서가 있었다.

주제가 ‘Jesus’다. 혹시 이단이 운영하는 것은 아닌지 참석했다. 영어 찬양을 듣고 인도자가 말씀을 낭독하는 것이 전부다. 성령은 독일인 부인으로 눈물을 흘리게 했다. 묵상의 모임 전 한 젊은 커플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었다. 여자 친구가 남자에게 왜 참석하려느냐고 물었고, 그는 ‘예수를 더 알고 싶다’고 대답했다.

중국인 오스피딸레라는 그 알베르게가 네덜란드 개신교 단체에서 선교를 위해 운영하고 있으며, 자신은 자원봉사자 중의 하나라고 하였다. 순례길을 걷는 내내 이런 알베르게와 자원봉사자가 더 많아져서 산티아고 가던 사람들이 주님을 만나길 기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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