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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기 <2>
천천히 걸어야 끝까지 간다
[1101호] 2017년 08월 23일 (수) 15:42:42 이선학 목사(주사랑교회) webmaster@kehcnews.co.kr

여느 주일과 마찬가지로 새벽, 1,2부, 오후예배를 마친 후 아내와 공항으로 향한다. 혼자서 장기간 여행하는 것은 처음이다. 아내의 걱정 어린 눈길을 느끼며 배낭을 메고 출국장에 들어선다. 절약을 위해 배낭을 메고 비행기를 탄다. 지금은 등산용 폴을 휴대하고 비행기를 탑승할 수 있다. 기대 반, 걱정 반으로 비행기에 올라 기도한다. “하나님, 나의 앞길을 순적하게 인도하소서!”

파리에 도착한 후 버스를 타는 곳까지 30분을 걸었다. 공항에서 TGV를 타는 몽파르나스 역까지는 지하철, 버스, 공항버스 등을 이용할 수 있는데 한 번에 갈 수 있는 공항버스를 한국에서 예약했다. 아이패드에 담아간 티켓을 스케너로 ‘삑’, 좋은 세상이라는 것을 새삼 느낀다.

몽파르나스 역에 도착하니 비가 추적추적 내린다. 예약한 표를 기계에서 뽑는다. 역 안 가게에서 샌드위치를 사니 열차가 플랫폼에 들어오고 내 자리를 찾아 간다. 10분의 여유도 없는 정확한 타이밍이다. 유럽의 열차들은 장거리를 운행하므로 자기 자리를 잘 찾아야 한다.

중간 역에서 객차가 분리되어 다른 곳으로 가기도 한다. 객차와 좌석을 확인, 또 확인하여 가니 스페인 사람이 짐을 선반에 얹고 있다. 표를 보이며 내 자리가 맞는지 물으니 대뜸 자리를 바꿔달란다. 늦게 구입했더니 자기 아내와 자리가 떨어졌단다. 그들이 내민 좌석은 통로쪽이다. 나는 창쪽에 앉아 경치를 구경하며 가려고 한국에서 4개월 전부터 예약하고 왔는데….

어쩔 수 없이 양보하면서 속으로 투덜거린다. 다행(?)인 것은 가는 내내 하늘이 우중충하여 경치가 별로다. 유리를 닦지 않아서 사진을 찍을 수도 없었다. 맑게 개인 날에 경치가 아름다웠다면 그들을 많이 원망했을 것 같다.

생장에 도착하여 까미노 데 산티아고협회에서 운영하는 사무실에서 순례자 여권을 발급받는다. 인적 사항을 말하고 한국 여권을 보여주니 순례자 여권을 발급해 준다. 산티아고까지 가는 동안 매일 묵을 알베르게에서 확인 도장(스페인어로 ‘세요’)을 받도록 된 작은 수첩이다.

생장에 도착하는 시간이 늦어 혹시 자리가 없을까 봐 생장의 알베르게 역시 한국에서 예약했다. 등록하고 2층 침대를 배정 받는다. 드디어 시작이다. 저녁을 먹고 생장의 밤거리를 잠시 산책한 후 일찍 침대 안으로 들어간다. 알베르게의 침대는 대부분 철제의 2층이다. 베드 버그(빈대)가 서식하는 것을 막기 위해 철제 침대를 사용한단다.

매트리스는 저렴한 것으로 수많은 사람을 재워주느라 지치고 낡았다. 대부분의 알베르게는 1유로에 1회용 베갯잇과 매트리스 커버를 판매한다. 이 역시 베드 버그를 피해를 줄이기 위함이다. 순례자들은 자신의 침낭을 가지고 다니며 침구를 대신한다.

알베르게에서 제공하는 간단한 아침 식사를 먹고 배낭을 들쳐 업는다. 드디어 출발이다. 첫째 날은 프랑스의 생장에서 출발하여 스페인의 론세스바예스까지 걷는 일정이다. 이 길을 걸었던 많은 순례자들은 오늘이 프랑스 길에서 가장 힘든 날이라고 한다. 걷기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 10kg에 이르는 배낭을 메고 공식 거리 25.3km를 갔다.(실제로는 30km이상 걸었다) 생장은 해발 170m이며 론세스바예스는 950m다. 유명한 피레네 산맥 중 1,450m의 봉우리를 넘어야 한다.

이날 하루를 걷고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왜? 항상 우리의 적은 내부에 있다. 길이 험하고 힘들어서 낙오하는 경우보다 과욕이 문제다. 야고보 순례길을 걷기로 마음먹은 사람들은 대단한 열정을 가지고 출발한다. 까미노에 익숙해지지 않은 순례자들은 첫째 날 무리하는 경우가 많다. 나도 그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이른 새벽 기분 좋게 출발한 나는 앞서 걷던 이들을 추월하기 시작한다. 원래 걸음걸이가 빠른 편이기도 했지만 한 사람씩 따라잡는데 재미를 붙였다. 아침 안개가 피어오르는 전원 풍경을 즐기며 걷는데 2시간이 지나지 않아 다리에 쥐가 난다. 벌써? 컨디션을 조절하며 천천히 걷는다.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했다.

초반에는 의기양양, 다른 사람들을 모두 추월하며 걸었는데 산의 중턱 쯤에 있는 오리손 알베르게에 이르러서는 속도가 현저히 떨어진다. 그런데 주마간산(走馬看山)이라고 했던가? 발이 느려지니 눈이 호사를 한다.

여전히 남아 있는 아침 안개와 푸른 초지, 듬성하게 박혀 있는 농가들과 가축들은 자꾸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게 한다. 무게를 줄이느라 가져오지 못한 DSLR카메라에 대한 미련은 까미노 내내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오르막 후 급한 경사의 내리막은 발목에 힘을 더하게 한다. 여기서 발목이라도 삐면 순례길 끝이다.

겨우 도착한 론세스바예스 알베르게는 이미 수많은 순례자들로 붐빈다. 생장에서 넘어온 사람들, 이곳에서부터 출발하는 순례자들로 등록하는 곳에는 줄이 길다. 순례자 여권, 한국 여권을 제시하니 세요(도장)를 찍어주고, 침대를 배정해 준다. 샤워, 세탁, 그리고 일기를 쓰고 말씀을 묵상한다.

이 일은 매일 똑같이 반복된다. 어제 순례자협회에서 7시간이 소요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9시간만에 왔다. 초반에 무리한 탓이다. 그래도 해냈다. 성당의 미사에 참석해 보고, 다양한 나라에서 온 외국 사람들 틈에 끼어 저녁식사도 한다. 왜 바벨탑은 쌓아가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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