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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순례기 <3>
우리 모두는 몸의 지체이다
[1102호] 2017년 08월 30일 (수) 16:10:29 이선학 목사(주사랑교회) webmaster@kehcnews.co.kr

   
또 27일 동안 걸어 10월 2일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도착했다. 사흘을 더 걸어 피니스테레에, 하루를 더 걸어 무시아에 도착했다.

까미노 데 산티아고를 걷는 사람들은 크게 세 가지를 염려한다.
첫째가 발에 생기는 물집이다. 나는 새 깔창에 덧신까지 신어 예방하고 매일 저녁 잠자리에 들면서 발바닥을 잘 주물러주어 발을 달랬다.

둘째는 베드 버그(빈대)다. 값싼 숙소 알베르게의 침대는 빈대들의 좋은 안식처가 된다. 나는 침낭 안에 빈대가 싫어한다는 계피를 사서 넣고 다녔고, 베드 버그를 방지할 수 있다는 액체를 아마존에서 구입하여 미리 침낭에 뿌렸다.

셋째는 날씨다. 이는 어떤 예방책도 없다. 그저 대비책만 있을 뿐이다. 배낭용 방수 커버, 사람과 배낭을 함께 덮을 수 있는 판초 우의를 준비했다. 물집이 하나도 생기지 않았고 베드 버그에 한 번도 물리지 않았다. 방수 커버를 덮어야 할 비조차 한 번도 없었다. 잠깐의 이슬비를 두 번 정도 만났을 뿐이다.

준비를 잘 해서? 나보다 준비를 훨씬 철저하게 했던 많은 사람들이 물집으로, 베드 버그로, 그리고 비로 인해 고생했다는 이야기들을 듣고, 볼 수 있었다. 나는 날씨가 좋다고 말하는, 중간에 만났던 순례자들에게 ‘다 내 덕인줄 아십시오’라고 말했다.

의아해 하는 그들에게 ‘지금 나를 위해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해주곤 했다. 사람들은 우연히 날씨가 좋은 때 순례길을 걷고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하지만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우연’이 없다. 좋은 날씨는 우연이 아니라 기도의 결과였다.

31일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걷는 것은 내게 무척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하루 하루를 묵묵히 걸었다. 내 마음 속으로 한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는 순례를 떠나며 기도했다. ‘완주하며 사도행전 사도들의 마음을 느끼게 해 주십시오. 그들의 열정을 배우게 해 주십시오. 그들의 헌신이 갖는 의미를 알게 해 주십시오.’

31일의 힘든 여정 중 두 번의 큰 고비가 있었다. 첫 번째 고비는 둘째 날 찾아왔다. 가이드북들은 제안하기를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까지 가는 것과, 라라소아냐까지 가는 것을 추천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라라소아냐까지는 27.6㎞이며 수비리에서 5.5㎞ 정도 더 가는 길이다. 우리나라에서 출판된 책들은 대개 수비리까지 갈 것을 추천하고, 외국 서적들 중에는 라라소아냐까지 갈 것을 추천한 것이 많다. 나는 조금 더 가서 후반의 일정을 여유롭게 하기 위해 라라소아냐까지 갈 계획을 세웠다.

가이드북의 지도를 보니 론세스바예스는 해발 953m, 라라소아냐는 497m이다. 전반적으로 내리막길이다. 어제 1,447m를 넘은 것에 비하며 쉽다고 여겨진다. 짐을 꾸리면서 등산용 폴을 과감하게(?) 배낭에 넣었다. 아침에 출발할 때 스페인 청년과 함께 걷게 되어 그와 보조를 맞췄다. 엄청나게 빨리 걸었다. 중간에 그와 헤어졌지만 오버 페이스했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수비리까지 가는데 오르막길과 내리막길이 반복됐다. 폴을 사용하지 않고 걸었다.

내 머리, 이성은 폴을 꺼내서 짚으면서 걸으라고 계속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내 감성은 자존심을 강조했다. 이 정도는 걸을 수 있다고…. 수비리에 12시 30분 쯤 도착했다. 내 몸의 형편으로 보면 쉬어야 하는데, 내 마음은 계획한 대로 라라소아냐까지 가라고 충동질한다. 라라소아냐를 500m 쯤 남겨두고 땅바닥에 주저앉았다. 지나치던 외국인 모녀가 걱정스러운 눈으로 괜찮냐고 묻는다. 거의 탈진했기 때문이다. 과신이요, 교만 때문이었다.

16일째 되는 날은 엘 부르고 라네로라는 곳에서 레온까지 걸었다. 38.6㎞의 먼 길을 걸어야 해서 새벽 일찍 출발했다. 다른 사람들이 거의 잠들어 있는 시각에 간단히 씻고 미리 꾸려놓은 배낭을 메고 출발한다. 잠자리에 폴을 들고 가지 못하도록(흉기가 될 수 있으니) 따로 보관한 곳에서 내 폴을 집어들고 출발한다.

시작은 평탄한 길이어서 호기롭게 걷는다. 언덕길에 이르러 짚으며 걷기 위해 접어두었던 폴을 펼친다. 그때 폴이 바뀌었다는 것을 알았다. 서서 10분 여를 고민한다. 다시 알베르게로 돌아가서 바꿔 올까? 이미 4㎞ 이상을 걸었다. 즉 한 시간 정도를 걸은 것이다. 왕복 8㎞를 희생해야 한다. 기도하며 가던 길을 간다. ‘주님, 내가 실수했습니다. 출발하며 자기 폴이 없어진 것을 보고 당혹해 할 그 순례자의 마음을 다스려주십시오.’

나는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머무는 레온에서 혹시 다시 만나면 돌려주려고 역시 폴을 짚지 않고 걷는다. 손의 도움을 받지 못한 발은 이렇게는 더 이상 갈 수 없다고 아우성친다. 그냥 주저앉아 포기하겠다고 협박한다. 이 날이 두 번째이자 마지막 고비였다.

나 자신을 과신하고 교만했던 것이 나를 궁지로 몰아넣었다. 손으로 폴을 짚으며 걸어 손의 도움을 받지 못했을 때 발목에 이상이 생기고, 급기야 절뚝거리며 걸어야 하는 형편에 이르렀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다. 주님은 우리 모두를 몸의 지체라고 하였다. 도움을 받는 일을 주저하지 말자. 다른 지체의 도움을 받기를 거절한 지체는 몸 전체를 망가뜨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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