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석규 목사
기독교에서 가장 유명한 길 세 개를 말하라면, 첫 번째는 ‘비아돌로로사’라는 예수님의 십자가 길입니다. 두 번째는 스페인에 있는 산티아고의 순례길로 예수님의 제자 야고보가 헤롯에게 순교를 당하고 그 시신을 배에 실어 보냈는데 후에 이곳에서 유해가 발견되면서 생겨난 길입니다. 세 번째는 터어키의 드로아(트로이)에서 앗소까지의 50km 남짓의 바울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바울길은 바울이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길에 유럽 선교의 교두보였던 드로아에서 일주일간을 머물며 마지막 밤을 새우며 강론할 때, 유두고가 졸려서 3층 누각에서 떨어져 숨지자 바울이 기도하여 살려낸 곳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의 일행을 앗소에서 재회키로 하고 배를 태워 보내고 자신은 앗소까지 50km를 도보로 가게 됩니다. 아마도 일행들은 왜 힘들게 걸어서 가시려냐고 만류했겠지만 바울의 확고한 뜻을 꺾지는 못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일행은 배를 타고 가고, 바울은 적어도 나흘이나 걸리는 길을 홀로 걷게 됩니다.

왜 바울은 이 길을 홀로 걸으려고 했을까요?
첫째 바울길은 자신의 삶과 사역을 되돌아보는 길입니다.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되돌아가는 길이 그의 마지막 전도의 길이 됨을 성령 안에서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자신이 행한 모든 전도사역을 되돌아보면서 자신에게 주신 주님의 말씀을 생각하며 되돌아보는 퇴수(退修)의 길을 걸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 주님이 공생애의 사역을 하신 것을 자신의 사명에 오버랩하여 자신이 주님이 원하시는 사명을 잘 감당했는지를 되돌아보았을 것입니다.

둘째 바울길은 마지막까지 주님의 인도와 도우심을 간구한 길입니다. 지금 예루살렘으로 가는 마지막 여정이 성령에 매여 가고 있음과 그곳에서 결박과 환난 당할 것을 잘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같은 일을 앞두고 피할 길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는 일로 간주했습니다. 그래서 남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길을 걸어간 것입니다.

우리는 대개 쉬운 길, 편한 길이 좋은 길이라고 생각하지만 바울은 주님의 말씀처럼 좁은 길을 가며 주님을 따르려고 했습니다. 우리도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성령 안에서 고난의 길을 선택하는 결연한 사명자로 살아갑시다.

셋째 바울길은 주님과 교제를 위한 길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과 제자들을 양육하는 일에 혼신의 힘을 쏟았습니다. 그래서 바로 직전 드로아에서 일주일간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면서까지 복음의 열정을 쏟아낸 것입니다.

오병이어의 이적으로 수많은 무리들이 주님이 찾을 때 주님은 밤을 새워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한 것처럼 바울도 주님과 단둘이 동행하며 교제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주님과의 교제는 새 힘으로 충전되는 시간입니다. 자신의 너무 많은 일들이 오히려 주님과의 교제를 방해하는 이유가 되는 것을 간과하지 말아야 합니다.  

지금은 나만의 바울길이 필요할 때입니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남은 사명의 길을 위해 주님의 도우심을 바라면서 내 인생의 주인 되시고 친구 되시는 주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는 나만의 바울길을 걷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