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에 있는 권세에 복종하라?(롬 13:1)

로마서 13장 본문은 아주 명확하지만 이중 의미를 가지고 있어 매우 난해하다. 몇 가지 해석들이 제시되었다.

첫째로 모든 사람들은 위에 있는 로마의 권세에 복종해야 한다. 둘째로 이 명령은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기보다는 바울의 자기 변증이다. 셋째로 로마의 기독교인들은 로마의 권세에 순복하는 동시에 그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의 권세에 더 복종해야 한다는 기독교인의 저항권을 함축하고 있다. 넷째로 이 본문은 드러난 의미와 감춰진 의미의 이중 의미로 작성되었다. 드러난 의미로는 모든 사람들은 로마의 권세에 순복해야 한다. 감춰진 의미로는 기독교인들은 우상인 황제숭배를 근간으로 박해하는 로마의 권세에 저항해야 한다. 어느 것이 옳은지 살펴보자.

문학양식을 보면, 본문이 속해 있는 단락(롬 13:1~7)은 1절과 7절의 권면에 상세한 이유들이 붙어있어서 그 앞뒤의 권면들과는 뚜렷하게 구별된다. 또 보통 권면은 2인칭 복수를 사용하는데 여기서는 일반적으로 유효한 3인칭으로 시작하고, 그 다음에 직접 독자를 향한 2인칭(3b 이하)으로 말한다. 이 단락은 단순히 연결된 교훈이 아니라 도덕설교의 상세한 논쟁이다.

문맥을 보면, 이 단락은 ‘화목’(12:18), ‘원수사랑’(12:19), ‘선의 악 극복’(12:21) 등과는 잘 연결되지 않는 독립적인 단위이다. 넓은 문맥에서는 본문의 권세 복종의 주제와 대조적인 연결이 가능해지는 것이 있다. 그것은 로마서에서 배음의 후렴처럼 등장하는 박해와 순교(롬 8:35 이하; 12:14)이다. 이 박해적인 상황이 사회적인 맥락에서도 드러난다.

유대인들과 유대기독교인들 사이의 신앙적인 갈등의 표출로 AD 49에 클라우디우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 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다. 네로 황제(AD 54~68) 때 세금징수 강화에 대한 항의가 점증하였고, 기독교인들은 ‘새로운, 해로운 미신’을 섬기는 자들이라고 하여 박해를 받았다.  

갈등이 고조되는 로마를 향한 글쓰기에서 반드시 고려되어야 할 사항은 조직화된 검열이 아니라 할지라도 정치적인 감시가 있다는 사실이다. 로마 당국은 어떤 단체의 형성이나 새로운 운동을 의심의 눈초리로 주목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까다로운 주제를 다룰 때 가능하면 보통은 이중 의미를 갖도록 하거나 계시록처럼 상징과 은유의 글을 쓴다.

바울은 자기가 세우지 않은 로마교회에 서신을 쓸 때 특별히 조심했을 것이다. 그는 다는 아니라도 부분적으로는 이중 의미의 글을 쓸 수도 있다. 본 단락은 이중 의미를 갖는 글로 읽을 수 있다. 네 번째 해석이 가장 올바르다. 다음의 사실들이 그 점을 확증한다.

“각 사람은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복종하라.” 이 명백한 명령에 부정문과 긍정문으로 작성된 두 개의 짧은 신학적인 이유가 따른다. 두 이유가 다 권세의 신적인 기원을 천명한다. 그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 “하나님으로부터”가 두 번 사용되었다. 여기서 다신을 믿는 로마의 엘리트들은 “하나님”을 쥬피터로 읽는다.

그러나 단수로 사용된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에게는 유대교적인 성서의 하나님을 지시한다. 여기서 연결된 ‘국가 권세의 하나님을 통한 제정’ 사상은 유대교에서는 하나님의 우주적인 통치에 관한 보증을 의미하는 동시에 통치자에 대한 비판의 기능을 갖는다.

이중의 의미가 7절에도 들어있다. 거기에 나오는 4개의 주어가 두 번 씩 등장해서 강조되고, 다음처럼 정교하게 작성되었다: 글놀이 ‘조세’(포론)-‘관세’(포본)와 두운법 ‘텔로스’(두려움)-‘티메’(영예)로. 전자는 구체물을 지시하고, 후자는 추상물을 지시한다. 전자는 지향해야 할 대상이 로마의 통치자들로 분명한 반면에 후자는 그 대상이 애매하게 이중적이다.

후자에서 두려움의 대상은 로마의 통치자들이다. 그들에게는 나쁜 행동을 한 주체들을 벌함으로써 두려움을 야기시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기독교인에게 두려움의 대상은 하나님이다. 영예의 대상도 로마 엘리트에게는 신적인 로마 황제인 반면 기독교인들에게 영예의 대상은 오로지 하나님 한 분 뿐이다. 

이렇게 이 단락은 분명히 이중의 의미로 읽을 수 있다. 특히 우상숭배를 가장 혐오하는 바울(롬 1:23-25)이 황제숭배를 근본으로 하는 로마의 권세에 저항권이 없이 그대로 복종하라고 했다는 것은 잘못된 해석이고, 예수님의 가르침(참조. 마 12:13~17 병행구들)에도 위배된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 단락을 기독교인을 위해 감춰진 의미로 읽어야 한다. 특히 황제가 주권자인 시대에도 기독교인들이 수행했던 비판적 기능 없이 그대로 강조할 수 없는 이 구절을 국민이 주권자가 된 시대에는 절대로 그렇게 강조할 수 없다. 권세의 좌표가 뒤집혀졌고, 국민이 주권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국민은 이제 이중 역할을 한다.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최고·절대의 권세를 가진 주권자로서 하나님의 사역자 혹은 하나님의 일꾼의 역할과 동시에 그 권세를 위임한 그들에게 순복하는 백성의 역할이다.

국민은 일정기간 권세를 위임받은 정치가들이 그 권력을 잘 사용하는지 감시하면서 악을 행하거나 법질서를 교란할 때에는 하나님의 사역자처럼 징치해야 한다. 절대 주권을 위임한 주권자 국민에게는 저항권과 징치권이 주어져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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