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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 절기, 올해도 성탄트리가 높이 설치됐고 맨 위에는 세상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는 별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촛불은 빛으로 오신 예수님을 상징하며 대림절기 동안 켜두고 있습니다. 이렇듯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그 날을 축하하고 기념하는 문화와 상징들은 교회의 역사에서 매우 다양하게 나타납니다. 성탄의 상징에 얽힌 이야기와 의미에 대해 교회사로 풀어봅니다. 아드벤트크란츠(Adventskranz)성탄절에 앞서 대강절 기간에는 대강절 촛불을 밝히는 문화가 있었습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고대하며 눈금이 그려져 있는 대강절 초를 태웠습니다. 이러한 관습은 화환 위에 4개의 초를 놓아 장식한 아드벤트크란츠로 다르게 표현되기도
특집
황훈식 박사(서울신대)
2016.12.21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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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기는 상이용사의 신분으로 육군 중위로 의병제대를 한 후 몇 년간 몸을 정양하면서 오직 사명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에서 열심히 주일학교 교사와 집사로 봉사했다. 그리고 나이 서른이 되자 성결교 신학교에 입학하여 열심히 신학을 공부했다.1965년 11월 27일, 성결교신학교를 제2회로 졸업한 이원기 전도사는 1969년까지 전북 익산의 남창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다가 1969년 4월 30일, 예성교단 제8회 총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안수 받을 때 그는 감격에 벅찬 눈물을 흘렸다. 안수 받은 이원기 목사는 1972년까지 전북 완주의 용진교회를 3년 반 동안 섬기며 붉은 벽돌로 45평 성전을 건축하고 헌당을 했다. 그리고 임지를 서울로 옮겨 개척교회 같이 어렵고 힘든 운양교회를 열심히 섬겨 조금씩 부흥하는
일화이야기
지왕근 목사(대신교회)
2016.12.14 1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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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성막훈련원에는 성막뿐만 아니라 옛 추억의 세계로 인도하는 근대사 체험관도 있다. 성막 체험을 위해서는 반드시 한국 근대사 체험관 관람을 거쳐야 한다. 그 이유는 성막 체험 전에 알게 되는데, 분명한 것은 풍성한 볼거리와 추억거리를 준다는 것이다. 체험관에는 농기구부터 잡지, 만화, 전화기, 텔레비전 등 수천 점의 소품들이 준비되어 있다. 또 공예실, 옛날 부엌 이야기. 병영의 추억, 베틀방, 안방 이야기, 혼례방, 추억의 영화와 음악 등 민속품도 전시해 아련한 추억을 되새기게 한다. 운동장에도 민속품들이 주제별로 전시돼 있어 당시의 생생한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한 시간 가량 걸리는 체험관 관람을 통해 어른들은 과거의 아련한 추억을 기억하고, 아이들은 한국 근대사의 산교육을 배우게 된다.체험관
특집
황승영 기자
2016.12.07 14: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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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막은 구약시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모세가 만든 이동식 성전이었다. 하나님은 모세를 시내산으로 불러 성막 건축을 명령하셨고 성막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의해 완성된다. 성막의 길이는 100규빗(약 50m), 너비는 50규빗(약 25m)인 장방형이었다. 성막은 이스라엘 민족이 율법에 따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장소였다. 그래서 성막은 신약 시대의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었다. 성막은 없어졌지만 우리에게 성막 신앙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최근 문을 연 국제성막훈련원(원장 김종복 목사)에서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만들었던 광야의 성막을 온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충북 괴산군 소수면에 위치한 국제성막훈련원은 폐교를 리모델링해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이 세웠던 성막을 완벽하
특집
박종언 기자
2016.12.07 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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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예수 탄생을 미리부터 축하하는 크리스마스 트리 불빛이 전국을 환하게 밝히고 있다.서울에서는 CTS기독교TV(회장 감경철, 이하 CTS)와 예장대신(총회장 이종승)이 주최한 ‘2016 대한민국 성탄축제’가 지난 11월 27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렸다. 이번 성탄트리는 높이 18m로 파란색 계열의 크리스마스 조명과 아름다운 아기예수께 드리는 보화를 상징하는 다이아몬드 조명으로 연출되었으며 특별히 트리 주변에 LED 장미정원 설치로 포토존을 구성하여 많은 시민들이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준비했다. 트리는 내년 1월 8일까지 50일간 불을 밝힐 예정이다. 또 지난 11월 21일 서울 남산에서는 2016 하트베어 나눔트리 캠페인의 첫 점등식이 열렸다. 이 캠페인은 국내외 소외아동을 후원하기 위한 행사
특집
김가은 기자
2016.11.30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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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목을 장식하는 예식은 먼저 찬송가 104장(곧 오소서 임마누엘)으로 시작한다. 그런 다음 아담과 하와의 타락장면을 기록한 창세기 3장 1~21절을 봉독한 후 사과를 성탄목에 매단다. 이 사과는 생명나무의 열매 곧 금단의 열매를 상징하며, 우리에게 아담의 타락과 그로 인한 죽음을 생각나게 한다.이어서 찬송가 101장(이새의 뿌리에서)을 다함께 부른 후에 “속된 나무 이새의 줄기에서 이 추운 겨울에 한 싱싱한 가지가 솟았도다 굳은 땅 위에 고요하고 청명한 이 밤에 한 송이 장미가 피었도다”라는 내용의 이사야 11장 15절, 이사야 35장 1~2절을 봉독한 후 장미꽃을 성탄목에 매단다. 사막에서 피어나는 장미는 어둠과 절망을 뚫고 생명을 피어내시는 소망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그 다음에는 찬송가
특집
김가은 기자
2016.11.30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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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장미꽃이 활짝 피고,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성탄 트리를 본적이 있는가? 지난 11월 23일 서울신학대학교 백주년기관 로비에 이런 특별한 성탄트리가 설치됐다. 장미와 사과 그리고 빵과 양초로 장식된 트리이다. 다른 성탄 트리에 비해 화려하거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적인 성탄목 설치운동을 벌이고 있는 조기연 교수(서울신대 예배학)는 “이것이 바로 성경적 성탄트리이다”라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교회의 성탄목조차도 백화점 입구에 설치된 여느 성탄트리와 차이가 없는 의미 없는 온갖 장식물로 뒤덮이고 있는 현실이다”면서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진짜 목적, 바로 ‘구원의 이야기’를 학습할 수 있는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상징들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성
특집
김가은 기자
2016.11.30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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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기 소위는 심장 밑에 박힌 포탄 뇌관 수술을 마치고 삼일 만에 마취에서 깨어났다. 온 몸이 너무나 아팠지만 위생병에게 수요일 저녁이라는 말을 듣고 비틀거리며 침대 곁에 있는 목발을 잡았다. 위생병이 말렸지만 그는 가다가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교회로 가야한다고 외치며 발걸음을 떼어놓기 시작했다. 그는 순교자 주기철 목사가 지은 ‘서쪽 하늘 붉은 노을’ 찬송을 부르며 눈물이 범벅이 된 얼굴로 3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40분이 걸려 군인교회에 도착했다. 이미 예배가 끝나서 천막교회는 조용했다. 비 오듯이 쏟아지는 눈물 속에서 주의 음성이 그의 마음을 채찍질 했다. “나는 너를 위해서 십자가에서 피 흘려 고통을 당하고 죽음으로 너를 살려주었는데 고통스럽다고 예배시간에 내 앞에 나오는 것이 그렇게 힘들었
일화이야기
한국성결신문
2016.11.30 1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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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부인 카타리나 폰 보라는 대여섯 살에 수녀원에 보내졌고, 열살 때 님브센(Ninbs chen)에 있는 마리엔트론 시토회 수녀원으로 옮긴 후 수녀가 됐다. 하지만 그녀는 1523년 부활주일 전날 밤 11명의 수녀들과 함께 수녀원을 탈출해 비텐베르크에 정착했다. 그녀는 1525년 42세인 루터와 결혼했고 수도원(현 루터하우스)에서 살다가 1552년 전염병을 피하던 길에 부상을 입어 토르가우에서 죽음을 맞았다.한 청년과의 결혼이 어긋나 슬퍼하는 그녀를 루터가 구제한 것인지, 아니면 종교개혁에 몸을 바친 루터를 그녀가 구한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은 스캔들이었다. 더욱이 결혼 시점이 시끄러운 농민전쟁 때여서 루터는 세상보다 자신을 위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그러나 루터는 결혼을 통해 생활이 안정
기획
조재석 기자
2016.11.23 1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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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름스 제국의회(1521년)에 당당히 섰던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 10개월 동안 ‘융커 요어그’라는 기사로 살면서 신약성서를 독일어로 번역했다. 하지만 그가 없는 동안 비텐베르크는 급진적인 종교개혁으로 몸살을 앓았고 루터는 결국 시 지도자들의 요청으로 귀환했다. 귀환 직후 루터는 시교회에서 사순절 설교(1522년 3월 9~16일)를 통해 온건한 개혁 방향을 제시했다. 도시가 안정을 찾자 루터는 저술을 통해 종교개혁의 방향을 하나둘씩 제시했고, 인근 도시를 방문해 설교를 통해 종교개혁을 확산시켰다. 루터는 각 지방 시찰관을 통해 교회의 실태를 파악했는데, 이를 통해 1530년대 독일 중부인 작센과 튀링겐, 헤센을 중심으로 독일의 종교개혁을 든든히 세웠다.온건한 개혁 공고히 한 ‘바이마르’
기획
조재석 기자
2016.11.23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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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가족들을 만날 수 있도록 이제까지 저를 눈동자처럼 지켜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립니다.이 감사의 편지를 쓰면서 감사할 제목이 참으로 많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허락하신 하나님 아버지에게 먼저 감사하는 마음으로 편지를 시작하고 싶습니다.사랑하는 남편! 당신도 알겠지만 저는 언제나 만남의 축복을 위해 기도해왔답니다.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이 당신이라는 것도 알고 있나요?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고 저를 사랑해주는 당신을 만나게 해주신 하나님께 지금도 감사드린답니다. 앞으로 서로 더 사랑하고 아끼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하고 있어요. 얼마 전까지 제2의 직업을 찾느라 쉽지만은 않은 시간을 보내기도 했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학원을 개원하게 되어 얼마나 좋아
특집
김가은 기자
2016.11.16 19: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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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희 권사(하저교회·사진)에게 2년 전 추수감사주일은 ‘불’로 기억된다. 토요일 저녁까지 교회 주방에서 추수감사주일 만찬을 준비하고 딸과 함께 잠시 외출했다 돌아와보니 집이 온데간데없이 타버리고 없어졌던 것이다. “가진 거라곤 입고 나갔던 옷밖에 없었어요. 다행히 가족들이 모두 외출했을 때라 다친 사람은 없었지만 집 안에 있던 물건들은 모두 타버린 후였습니다.”그렇게 망연자실한 상태로 가만히 앉아 있는데 자신도 모르는 사이 “하나님 너무 감사합니다. 비록 집은 타서 없어졌어도 온 가족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기도가 나왔다고 한다. 옆에 있던 딸이 ‘어떻게 이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할 수 있냐’고 했지만 그 감사는 이정희 권사의 진심이었다. 다음날 교회에 가서도 간밤의 이야기를 쉽사리 할 수 없
특집
김가은 기자
2016.11.16 1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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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심교회(정문수 목사)는 설립 초기부터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정 목사는 부교역자로 오라는 곳이 없어 개척에 뛰어들었다. 아내와 어린 두 자녀와 함께 맨 바닥에서 개척을 했다. 첫 예배당은 작은 상가교회였다. 수중에 한 푼도 없이, 성도 한명 없이 시작했는데, 기적처럼 하나님이 필요한 전세금과 월세를 채워주셨다. 정 목사는 “첫 단독목회지였는데, 이곳에서 경제적인 훈련을 제대로 받았다”면서 “돈 없고, 빽 없고, 성도없는 설움을 겪으며 개척교회의 어려움을 제대로 체험했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이 때 변치않을 목회 원칙을 세웠다고 했다. ‘절대 사람 손을 빌리지 말자’는 것.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면 어떻게든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을 여실히 체험하며 목회했던 어렵지만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말했
특집
문혜성 기자
2016.11.16 1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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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0년 6월 25일, 북한 인민군이 소련의 지원을 받아 38선을 넘어 불법으로 남침을 했다. 한국의 청년들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군인이 되어 공산군과 싸웠다. 이듬해 이원기 청년은 국민병 소집 영장을 받고 군대에 입대한 이후, 장교 모집에 응하여 소대장이 되었다. 1953년 4월, 동부전선 가칠봉에서 아군과 적군이 서로 차고, 때리고, 찌르는 백병전이 펼쳐졌을 때 그는 소대장으로 열심히 싸웠다. 어느 순간 그는 왼쪽에서 터진 포탄의 화염에 휩싸여 절벽 아래로 곤두박질쳐졌다. 그가 의식을 잃고 쓰러진 후 겨우 정신이 돌아 왔을 때 전방 임시 위생소에 누워 머리에서부터 다리까지 계속 피를 흘리고 있었다. 그러나 금방 온몸이 뒤틀리는 고통이 계속 찾아왔다. 그는 숨이 막히는 고통 속에서 신음하며 하나님
일화이야기
지왕근 목사(대신교회)
2016.11.09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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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7년 10월 31일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교회 정문에 면죄부에 대한 95개조의 반박문을 내걸면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 루터의 개혁은 교회의 개혁에 머물지 않고 잠들었떤 중세사회를 깨우는 커다란 울림이었다. 내년이면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다. 한국교회와 각 교단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한국교회와 사회를 깨우는 기회로 삼기 위해 다채로운 기념사업을 벌인다. 종교개혁기념주일을 맞아 내년 종교개혁 500주년 사업을 미리 살펴본다.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총회(총회장 김선규 목사)는 종교개혁500주년기념사업위원회를 구성했다. 종교개혁의 정신을 계승하고 의미를 살리기 위한 것으로 단위별 기념대회 추진, 장로교단 연합기념강좌와 실천대회, 한국교회 개혁선언문 발표 등을 계획 중이다. 예장통합총회(
특집
박종언‧김가은 기자
2016.10.26 1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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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루터는 공의회에서 자신의 생각을 밝히고 싶었다. 교황보다 공의회에 더 권위를 둔 것이다. 하지만 공의회는 열리지 않았고 루터는 1521년 보름스 제국의회에 서게 된다. 황제로 선출된 카를 5세는 첫 제국의회를 열면서 루터 문제를 정리하려고 시도한다. 독일 제후들로부터 군대와 재정을 지원받으려는 황제는 우호적 태도로 루터의 안전을 보장했고, 루터 또한 비굴하게 숨는 것보다 죽더라도 자신의 입장을 밝히겠다면서 보름스로 향했다.보름스에서 처음 찾은 곳은 루터의 종교개혁 기념상(Lutherdenkmal)이다. 1868년 세워진 기념상은 루터를 포함하여 종교개혁 인물 9명과 역사를 담은 기념상, 부조, 인물과 도시국가의 문장 등이 담겨 있다. 자신의 신념을 대내외에 선포하고 그의 신념이 독일 전역으로 확
기획
조재석 기자
2016.10.26 1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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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신학’을 발표한 하이델베르크교황청의 첫 반응은 루터가 속한 아우구스티너 수도회를 통한 문제해결이다. 루터는 1518년 4월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수도회 총회에 참석, 자신의 입장을 설명한다. 루터는 이 총회에서 자신의 입장을 정리해 ‘하이델베르크 논제’를 발표했다. 40여 개의 신학적, 철학적 논제를 통해 루터는 중세 교회의 신학을 ‘영광의 신학’으로 규정하고, 그것에 반대해 ‘십자가 신학’을 강조한다. 수도회원들은 루터를 지지했고 종교개혁의 횃불이 타오를 때 속속 종교개혁 대열에 동참했다.하이델베르크에서 루터의 흔적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강의한 장소나 참석자 등의 기록이 없기 때문이다. 다만 루터가 성서학 교수란 점, 내용이 학문적인 내용이란 점에서 하이델베르크 대학 강의실이 유력하다.
기획
조재석 기자
2016.10.26 1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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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구 을지로 4가 산림동에 살던 그의 아버지는 혹시 가족들이 월남하면 함께 살기 위해서 적산 가옥 한 채를 마련해 놓고 있었다. 그 집에는 먼저 월남한 친척들 몇 가정이 살고 있었다. 친척들의 정보에 따라 그의 가족은 모두 영락교회에 다니기 시작했다. 신의주제2교회를 섬기던 한경직 목사가 월남한 후 세운 ‘영락교회’는 처음 이름이 ‘베다니교회’였다. 이 소식에 월남한 사람들은 영락교회로 몰려들었다. 특히 정주, 선천, 신의주 등 평안북도 쪽 사람들은 영락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다. 영락교회에 가면 고향사람들을 만날 뿐 아니라 고향소식을 전해들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하여 평안도 쪽 경의선 부근에서 월남한 사람들은 영락교회를 통해서 서로 만남을 갖고 고향을 떠난 설움을 달래며 낯선 이남에서의
일화이야기
지왕근 목사(대신교회)
2016.10.19 14: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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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낙원은 서울 등 수도권에 가깝고 교통입지가 좋다는 것이 장점이다. 영동과 중부고속도로가 교차하는 지점이라 어디서나 접근성이 좋다. 영동고속도로 덕평 IC에서 에덴낙원까지는 약 6km 거리이며, 중부고속도로 서이천 IC에서는 약 3km로 5분이면 충분히 도착할 수 있다. 이번 달 개통되는 경강선을 이용하는 경우 신둔역이나 이천역에서 내리면 차로 약 15분이면 도착한다. 교통정체로 이동이 어려운 명절 같은 때에도 부담이 적고, 평소에도 오고 가며 언제든지 들릴 수 있는 좋은 위치에 있다. 에덴낙원 주변에는 기독교순교자기념관, 총신대 신학대원 등이 있고, 이천의 명소 이천 롯데프리미엄 아울렛에서 5분 내외 거리에 있다.
기획
황승영 기자
2016.10.12 1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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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낙원은 장지나 묘지를 마련하지 못해 고민하는 교회에게는 희소식이 될 수 있다. 어느 한 교회가 소유, 운영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유 개념으로 한국교회 전체에 개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에덴낙원은 어느 교회든지 회원으로 가입하면 해당 교회의 장지로 부르며 이용할 수 있다. 실제로 다양한 교단의 여러 교회들이 이미 회원으로 가입해 부활소망가든을 교회 장지로 이용하고 있다. 납골당과 묘지를 구하기 힘든 요즘 장지에 대한 걱정을 단숨에 해결 할 수 있어 관심을 받고 있다. 회원 가입도 쉽고 절차도 비교적 간단하다. 가입 신청서와 함께 교단 소속 증명서와 주보만 첨부하면 교단연합으로 구성된 운영이사회의 결의에 따라 회원교회로 인정되며 별도의 교회예산 부담 없이 에덴낙원을 이용할 수 있다. 일
기획
황승영 기자
2016.10.12 1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