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사역과 ‘사’자 목회철학

이원기는 상이용사의 신분으로 육군 중위로 의병제대를 한 후 몇 년간 몸을 정양하면서 오직 사명을 위해 기도하고 교회에서 열심히 주일학교 교사와 집사로 봉사했다. 그리고 나이 서른이 되자 성결교 신학교에 입학하여 열심히 신학을 공부했다.

1965년 11월 27일, 성결교신학교를 제2회로 졸업한 이원기 전도사는 1969년까지 전북 익산의 남창교회 전도사로 시무하다가 1969년 4월 30일, 예성교단 제8회 총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안수 받을 때 그는 감격에 벅찬 눈물을 흘렸다. 

안수 받은 이원기 목사는 1972년까지 전북 완주의 용진교회를 3년 반 동안 섬기며 붉은 벽돌로 45평 성전을 건축하고 헌당을 했다. 그리고 임지를 서울로 옮겨 개척교회 같이 어렵고 힘든 운양교회를 열심히 섬겨 조금씩 부흥하는 기쁨을 맛보았다. 

1973년 1월, 이원기 목사는 대전으로 내려가 교회를 수습하고 부흥시키라는 총회의 뜻을 전달받아 이계섭 목사의 뒤를 이어 대전교회 제4대 목회자로 부임하여, 28년 동안 일취월장하는 부흥의 역사를 감당했다. 근 30년 동안 성역을 잘 감당한 이원기 목사는 2001년 3월 11일, 대전교회 원로 목사로 추대되었다. 나라를 위해 전투하다 죽을 뻔한 목숨을 하나님이 기적적으로 돌려주셨기에 남은 생명을 하나님께 돌려드린 이원기 목사는 은퇴 후 1년여 만에 2002년 2월 1일 하나님의 나라로 부르심을 받았다.

이원기 목사의 목회 철학은 네 가지 ‘사’자 목회적 소신으로, 이미 많이 알려져 유명하다.

첫째, 스승 사(師)자 목회: 강단에서 복음을 전하는 한 그는 하나님이 보내신 사자(使者)이며 동시에 말씀의 스승이기 때문에 담대해야 한다. 구약의 선지자처럼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심정으로 권위 있게 목회의 사명을 감당한다.

둘째, 사과할 사(謝)자 목회: 당회나 직원이나 개인적으로나 찾아와서, ‘이것은 잘못되지 않았습니까?’하며 끝까지 고집할 때는 양보하고 사과할 줄 아는 것이 좋다. 목회 중 중요한 순간에 “내가 도의적 책임을 지겠습니다. 제 잘못입니다.”하고 교회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사과했다. 이 목사는 그런 후에는 그들이 더 미안하며 후회하고 도리어 내게 사과하고 모든 게 더 잘되었다고 말했다.

셋째, 이사할 사, 옮길 사(徙)자 목회: 교인 30% 정도가 ‘우리 목사님 다른 곳으로 가셨으면 하고, 생각하면 거침없이 말하십시오. 나는 지체하지 않고 이삿짐을 쌀 테니까 염려하지 말고 말 하십시오’ 이런 뜻을 교인들에게 몇 번이나 이야기 했다. 교인이 원하지 않으면 목회자는 지체 않고 교회를 떠나야 한다고 생각한다. 교인이 싫어하면 서로에게 덕이 되지 않는다.

넷째, 죽을 사(死)자 목회: 교인들이 담임목사 보고 떠나라 하고 정작 갈 데가 없다면 죽어야 된다는 심정으로 목회를 한다. 자살이 아니다. 가족들 모두 데리고 기도원에 가서 기도할 것이다. 기도하다가 먹을 것이 없으면 굶어 죽으면 되고, 하나님의 뜻이 있으셔서 목회의 길을 다시 주시면 그 길로 순종하면 된다. 그래도 마지막에 오갈 데가 없으면 죽는 걸로 하자 하여 죽을 ‘사’자의 목회 지침을 명심하였다. 이원기 목사는 평생, 이런 목회의 소신과 철학을 가지고 성실하게 목회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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