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함보다 의미가 더 중요
예수 구원의 이야기 담아야 진짜

빨간 장미꽃이 활짝 피고, 사과가 주렁주렁 달린 성탄 트리를 본적이 있는가?

지난 11월 23일 서울신학대학교 백주년기관 로비에 이런 특별한 성탄트리가 설치됐다. 장미와 사과 그리고 빵과 양초로 장식된 트리이다. 다른 성탄 트리에 비해 화려하거나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나 성경적인 성탄목 설치운동을 벌이고 있는 조기연 교수(서울신대 예배학)는  “이것이 바로 성경적 성탄트리이다”라고 주장했다.  

조 교수는 “교회의 성탄목조차도 백화점 입구에 설치된 여느 성탄트리와 차이가 없는 의미 없는 온갖 장식물로 뒤덮이고 있는 현실이다”면서 “아기 예수가 이 땅에 오신 진짜 목적, 바로 ‘구원의 이야기’를 학습할 수 있는 성경적이고 신학적인 상징들이 회복되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수님이 보이지 않는 성탄트리는 던져 버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메시지로 가득한 성탄트리를 다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탄목의 유래와 의미
예수 복음이 드러나는 성탄목은 어떻게 세워야 하는가. 성경적인 성탄목을 설치하기 위해서는 우선 성탄트리의 유래와 의의부터 알아야 한다고 조 교수는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성탄트리는 주후 6~7세기 유럽에서 비롯됐다. 당시 사람들은 교회 안팎에서 성경 내용을 소재로 만든 연극을 보면서 일종의 성탄 전야제 행사를 열었다. 전야제 장소 한가운데에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상징하는 나무를 세웠다. 이 나무가 성탄목의 시작이었다. 나무는 겨울에도 잎이 살아있는 전나무를 사용했다. 이 나무에 구약에서 언급된 메시아에 관한 예언과 그 예언의 성취인 예수에 관한 신약의 기록 등을 낭송하면서 주님을 상징하는 네 가지 장식물, 즉 사과, 장미, 빵 모양의 과자, 촛불 등을 매달며 감사와 찬송을 드렸다. 이것이 성탄트리의 시작이었다. 

성탄목 설치 예식
조기연 교수는 이날 이런 기원에 근거해 성탄트리 설치 예식을 직접 시연했다. 조 교수의 수업인 ‘절기와 예배’ 과목을 통해 학생들과 직접 성탄목 설치 예식을 공개적으로 거행한 것이다. 이날 예식은 경건한 오르간 연주로 시작됐다. 예식에서는 대림절 찬송을 불렀다. 이때 주의할 것은 캐롤은 불러서는 안 된다. 대림절에는 캐롤이 아니라 대림절 찬양을 부르며 경건하게 보내야 한다는 것이 조 교수의 설명이다.

이렇게 대림절 찬송가 한 장을 부르고 관련 말씀을 봉독한 후 한 가지의 장식을 성탄목에 다는 방식으로 예식은 엄숙하게 거행됐다. 네 가지 상징물 즉 사과와 장미꽃, 과자빵, 초 등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우선, 사과는 생명나무의 열매인 금단의 사과를 상징한다. 이 사과는 인간의 타락과 그로 인한 죽음을 생각나게 한다. 장미는 이사야 35장에 나오는 장미꽃(백합화)을 의미한다. 사막에서 피어난 장미꽃은 어둠과 절망을 뚫고 생명을 피워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빵 모양의 과자는 생명의 양식인 예수 그리스도를, 촛불은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각각 의미한다.

네 가지 상징물을 모두 성탄목에 장식한 후에는 공동기도를 드렸다. 높고 아름다우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의 구원을 사모하는 내용이었다. 회중들은 인도자의 기도 사이사이에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를 여섯 번 반복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는 대림절의 의미를 되새기고 되새겼다.

예수가 있는 성탄목 다시 세우자
조기연 교수는 “성탄목은 에덴동산의 생명나무이며 또한 예수께서 달리신 십자가 나무를 상징하고 거기에 매달린 모든 장식물 또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낸다”면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성탄목을 볼 때 하나님의 구원사를 떠올리며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 감사와 경배를 드려야 한다”고 예식을 마무리 했다.

예수 그리스도가 다시 오실 것을 기다리며, 우리의 삶을 돌아보고 삶을 재정립하는 기간인 대림절. 화려하게 반짝여도 정작 그 안에는 그리스도가 없어 의미 없는 크리스마스 트리보다는 덜 화려해도 구원을 상징하는 장식물들이 달린 성탄목으로 꾸며보는 것은 어떨까. 모든 성도들이 사과, 장미꽃, 과자빵, 초가 가득한 성탄목을 볼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이유를 되새기며 또 다시 오실 그리스도를 사모하고 기다릴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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