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 좇아 말씀만 붙들고 성장 일궈

부르심교회 성도들.

부르심교회(정문수 목사)는 설립 초기부터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다. 정 목사는 부교역자로 오라는 곳이 없어 개척에 뛰어들었다. 아내와 어린 두 자녀와 함께 맨 바닥에서 개척을 했다. 첫 예배당은 작은 상가교회였다. 수중에 한 푼도 없이, 성도 한명 없이 시작했는데, 기적처럼 하나님이 필요한 전세금과 월세를 채워주셨다.

정문수 목사와 김지형 사모
정 목사는 “첫 단독목회지였는데, 이곳에서 경제적인 훈련을 제대로 받았다”면서 “돈 없고, 빽 없고, 성도없는 설움을 겪으며 개척교회의 어려움을 제대로 체험했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이 때 변치않을 목회 원칙을 세웠다고 했다. ‘절대 사람 손을 빌리지 말자’는 것. 그는 “하나님이 원하시면 어떻게든 길을 열어주신다는 것을 여실히 체험하며 목회했던 어렵지만 행복한 시절이었다”고 말했다.

개척 초기에는 어렵고 힘든 일 투성이었지만 정 목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사람찾지 않고 살아계신 하나님만을 의지했다. 그러나 아무리 전도해도 성도 한 명 찾아오지 않자 실망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1호 성도가 찾아왔다. 김연근 권사였다. 그때 ‘한 사람이 이렇게 귀하구나’ 하는 것을 알게됐다고 했다.


이후로 전도를 위해 축구하고 볼링치며 청소년들의 관심을 끌었다. 시간을 들이자 자연스럽게 아이들이 교회에 왔고, 이 때문에 개척 초기에는 청소년들이 많았다. 성도 40명이 함께 예배드린 적도 있었다.

그러나 거품은 금새 사그러들었다. 예배당 계약이 끝나 이사를 해야할 때는 교회에 남았던 사람은 1호 신자 김연근 권사와 청년 3명, 교회학교 어린이 5명이 전부였다.

보증금도 다 까먹고 돈 한 푼 없이 나온터라 두번째 교회는 남의 사무실에서 6개월을 더부살이로 예배 드렸다. 어렵게 세 번째 예배당으로 옮겨갔다. 그런데 어린이들을 위한 공간이 없어 또 다시 이사를 가야했다. 다음 성전은 허름한 창고였는데 몇 안되는 성도들과 맨손으로 예배당을 만들어갔다.


정 목사는 “우리가 페인트칠하고, 장의자도 서울에 가서 직접 사오고 청년들하고 리폼해서 예배당을 꾸몄다”면서 “이때부터 예배당에 애정이 커져 어렵게 은행 대출을 받아 첫 예배당을 매입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예배당이 안정되고 나자 정 목사는 ‘말씀이 존재로 나타나는 교회’를 목회 비전으로 세우고 교회에서 말씀훈련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설교도 유머와 사례를 빼고 깊이있는 강해설교에 집중했다.

주일 낮 예배시간에 강해설교하는 정문수 목사.

기자가 교회를 찾아간 어느 주일 낮 예배시간에도 정 목사는 강해설교를 하고 있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내 죄를 깨끗하게 씻어주셨습니다. 당당하고 뻔뻔하게 주의 자녀됨을 누리며 사세요. 주님께서 책임져 주십니다.”
주일 낮 예배인데도 정 목사는 유머 하나 없이 진지하게 강해설교를 했다. 성도들은 이곳저곳 성경구절을 찾아 함께 읽고, 저마다 볼펜을 손에 쥐고 메모하며 설교에 집중했다. 초등학생, 중고등학생들도 익숙한 듯 설교말씀에 귀를 기울였다. ‘말씀의 본질’에 집중하는 정문수 목사의 목회스타일을 그대로였다.

주일 낮 예배 설교로 강해설교를 한다는 점이 특이해 물었더니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정문수 목사는 “모든 예배 설교를 강해 설교한다”면서 “오직 말씀을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데 집중하고 있고, 성도들 제자양육도, 새신자 교육도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새신자들은 반드시 새신자양육 코스에서 말씀훈련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엄숙한 분위기의 예배가 끝나자 다 함께 모여 왁자지껄 식사를 하며 교제하는 모습은 여느 교회와 다를 바 없이 활력이 넘쳤다.
그도 개척 초기에는 사람들을 끌어 모으기 위해 교제에 중점을 두고 관계를 쌓으려고 노력했지만 성도들이 모였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하자 본질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오직 말씀’이라는 본질로 돌아간 목회로 부르심교회는 개척 7년 만에 천안시 동남구 아파트 단지 앞에 마당 넓은 2층 짜리 교회당을 짓고, 이후 단층으로 성결채플과 교육관 2채를 지어 건물 3개가 오밀조밀 모여있는 정겨운 풍경의 아담한 교회로 자리 잡았다.

매주 예배가 끝나면 정문수 목사와 성도들은 함께 식탁교제를 나눈다.

교회 성장의 동력을 ‘말씀’과 ‘양육’에서 찾아낸 것이다. 처음에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체질화하는 게 어려웠지만 교육이 계속 진행되자 성도들이 믿음으로 세워지고 제자훈련의 열매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 목사의 마음속에도 담대함이 생겨 목사 사례비도 받지 못하는 교회 사정인데 성전을 지어야겠다는 배짱이 생겼다.

2010년 교회 건축의 뜻을 품고 부르심교회는 첫 해외선교사를 중국으로 파송했다. 당시 대출금 갚기도 벅차고, 목회자 사례비도 못 주는 상황에도 해외선교를 시작한 것이다. 교회건축은 계획처럼 잘 풀리지 않아서 어려움을 겪기도 했지만 하나님은 연단을 통해 예비하신 지금의 교회당 건축을 허락하셨다.

2013년 우여곡절 끝에 512㎡(55평)의 건축용지를 마련해 2층으로 첫 예배당을 지었는데 입당할 때 성도가 20명에 불과했다. 건축하며 성도들이 많이 떠나갔기 때문이다. 그러나 입당한 그 해에 새로운 성도들이 전도되어 현재는 60여 명이 예배드리고 있다. 물론 건축과정에 말로 할 수 없는 어려움이 많았지만 하나님은 결국엔 이뤄주신다는 것을 성도들과 체험하며 모두 함께 신앙이 성장했다.

‘믿고 맡기면 해결해 주신다’는 믿음으로 이듬해에는 578㎡(175평)의 용지를 지난해 교육관과 성결채플(소그룹실 3개)을 완공했다. 이제 교회건물이 3채나 된다. 성도들이 옥합을 깨뜨려 이룬 결실이다. 5번이나 예배당을 이전한 후 얻은 지금의 교회에서 부르심교회는 지난 6월 감격스러운 10주년 예배를 드렸다.

매월 마지막주 주일 오후에 진행하고 있는 전교인 노방전도.

또 10주년을 기점으로 선교사역에 지경을 넓혔다. 단독으로 인도네시아에 두 번째 해외선교사를 파송하고, 후원하는 선교사 등 총 4가정을 매달 지원하고 있다. 국내에도 작은교회와 기관을 합쳐서 매달 9곳을 돕고 있다.
이제 부르심교회는 전도의 기지개도 펴고 있다. 매주 전도기획부를 중심으로 한 전도뿐만 아니라 매달 한번씩 온 성도가 주일 오후에 노방전도를 펼치고 있다. 또 지역사회와의 접촉점을 마련하기 위해 기타교실과 오케스트라 교육도 진행하는 등 다채로운 전도 활동을 시작하고 있다.

“교회 개척하는 것 힘들죠. 하지만 개척만 하면 하나님이 방패가 되시고, 강한 산성이 되어 주셔서 걱정할 것 하나 없이 말씀 전하고 영혼 구원하는데 만 집중하게 하십니다.”
개척 10년차를 맞은 정문수 목사의 외침은 작지만 건강한 교회를 이끌고 알찬 영혼 구원의 열매를 맺고 있다는 점에서 큰 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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