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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터의 부인 카타리나의 흔적 ‘님브센 수녀원’
카타리나 폰 보라, 수녀 11명과 함께 수녀원 담 탈출
[1066호] 2016년 11월 23일 (수) 15:59:06 조재석 기자 chojaeseuk@gmail.com

   
▲ 토르가우-루터 부인의 방
루터의 부인 카타리나 폰 보라는 대여섯 살에 수녀원에 보내졌고, 열살 때 님브센(Ninbs chen)에 있는 마리엔트론 시토회 수녀원으로 옮긴 후 수녀가 됐다. 하지만 그녀는 1523년 부활주일 전날 밤 11명의 수녀들과 함께 수녀원을 탈출해 비텐베르크에 정착했다. 그녀는 1525년 42세인 루터와 결혼했고 수도원(현 루터하우스)에서 살다가 1552년 전염병을 피하던 길에 부상을 입어 토르가우에서 죽음을 맞았다.

한 청년과의 결혼이 어긋나 슬퍼하는 그녀를 루터가 구제한 것인지, 아니면 종교개혁에 몸을 바친 루터를 그녀가 구한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두 사람의 결혼은 스캔들이었다. 더욱이 결혼 시점이 시끄러운 농민전쟁 때여서 루터는 세상보다 자신을 위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그러나 루터는 결혼을 통해 생활이 안정되자 종교개혁에 더욱 헌신할 수 있었음은 분명하다.

루터와 결혼한 후 카타리나는 목회자의 아내로서 딸 셋과 아들 셋을 포함한 친척 등 30여 명의 경제를 책임졌고 자녀를 키우며 많은 손님을 접대했다. 루터는 이런 아내를 사랑했고 ‘나의 주인 캐티'라고 불렀다.
카타리나가 살았던 님브센 수녀원을 방문했다. 수녀원의 터를 덮은 잔디밭과 벽만 있는 수녀들의 공간, 중세시대부터 있었던 우물 등만 남아 있었다. 남겨진 건물 벽에는 카타리나의 탈출과 결혼 이야기가 새겨진 작은 기념판이 있었다.

사실 카타리나는 어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재혼 등으로 수녀원에 ‘맡겨진 것’이었다. 가족들에게 돌아갈 수 없는 그녀에게 수녀원은 생계 걱정이 없는 곳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와 11명의 수녀들은 수녀원 담을 넘은 것이다. 알 수 없는 미래지만 당시 그녀들을 부르는 종교개혁의 외침에 충실히 응답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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