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지신 예수님 대신 십자가를 진 시몬

이스라엘 성서현장 5-비아돌로로사 (2)

십자가를 대신 진 구레네 시몬이 부럽다

제3처소와 4처소, 5처소는 바로 가까이에 자리하고 있다. 예수님이 첫 번째 쓰러지셔서 어머니를 만나고,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대신지면서 다시 골고다 행진이 시작된 곳이다. 세 가지 사건에 그리 오랜 시간을 걸리지 않았을 것이고 아주 가까운 지근거리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제3처소 정면
제3처소 : 예수님이 처음 쓰러지신 곳

채찍질 당한 예수님은 쓰러지실 수밖에 없었다. 채찍에 맞아 곤함도 아니요, 십자가 무게 때문이 아니다. 바로 우리의 죄, 인류의 죄가 그 십자가 위에 얹혀 있기 때문이다.

“그의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사 53:4~5) 그렇게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무거운 십자가를 지셨던 것이다.

처소 옆에 세워진 교회 입구에는 당시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시다 쓰러진 장면이 부조로 조각되어 있었다. 그 교회 입구를 통하여 지하로 내려가면 자그마한 공간이 나오는데 그곳에 교회 입구에서처럼 예수님이 쓰러진 장면이 강단 조각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곳을 거쳐 지하로 이동하니 순례객들이 함께 모여 예배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어 있었다. 이곳이 제4처소로 바로 예수님이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곳이라고 한다.

4처 지하에 있는 기도실

4처 지하에 있는 예수와 마리아 만남 작품
제4처소 : 마리아가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만난 곳

성서에는 예수님이 어머니 마리아를 만난 것에 대한 기록은 없다. 다만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어머니, 보소서 아들이니이다’(한국말로는 ‘여자여’로 번역했으나 ‘어머니’라고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해 그리 했다)라고 말한 것에서 확인되듯 마리아가 십자가까지 동행했다는 점에서 골고다 가는 중간에 만나셨을 것으로 추정이 가능하다. 가톨릭의 전승은 예수님이 마리아를 만나셨다고 정리하고 있는 듯하다.

강단에는 예수님과 어머니 마리아의 만남이 형상화되어 있고 양 쪽에는 순례객들을 위한 기도의자가 놓여 있었다. 그 의자에 앉아 기도도 할 수 있고 예수와 어머니 마리아의 만남을 상상해 볼 수 있다. \

계단을 올라 1층의 넓은 예배공간을 거쳐 마당으로 나온다. 4처소, 슬픔이 가득한 자리에 세워진 웅장한 교회의 모습이 슬퍼보였다. 3처소와 마찬가지로 교회 입구에 예수님과 마리아의 맞잡은 손이 슬퍼보였기 때문이다.

 제5처소 : 구레네 시몬이 십자가를 강제로 대신 지고 간 곳

제5처소 표지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막 15:21), (마 27:32, 눅 23:26).

제5처소에 있는 시몬 교회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자세히 언급된 것으로 봐서는 아마도 시몬은 이 사건 이후에 예수공동체에 속했을 가능성이 높다. 구레네(키레네)는 아프리카 리비아 북쪽에 있는 작은 마을로 파악된다. 시몬은 이곳에 사는 유대인이었고 아마도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을 방문했을 것이다. 그런데 군인들에 의해 십자가를 지게 됐고 골고다까지 십자가를 지고 갔을 것이다.

아마도 그는 골고다 행진 과정에 예수와 가장 가까운 인물 중 한사람이었고 십자가에서 죽는 예수의 모습을 목격했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이것이 그에게 큰 영향을 주었음은 롬 16:13에 사도 바울이 로마에 편지를 보내면서 시몬의 아들 ‘루포’를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자’라 하고, 또 시몬의 아내인 ‘루포의 어머니는 곧 나의 어머니’이니 꼭 안부를 전해달라고 당부한 것을 볼 때 확실해 보인다.

▲ 예수님이 쓰러지시지 않기 위해 손을 짚으셨다는 곳이다.
4처를 나와 정면 쪽에 5처가 있었고 그 옆으로 구레네 시몬을 기념하는 교회가 세워져 있었다. 문이 잠겨 안에는 들어가 볼 수 없었지만 입구 옆에 '예수님이 손을 짚으셨다'는 손 모양의 자국을 둘러봤다.

그리스도인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걸으신 고난의 길을 걷는 것 자체만으로 감격할 이유는 충분한 것 같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 바로 내 죄를 짊어지고 걸어가셨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죄의 무게만으로도 예수께서는 세 번 아니라 네 다섯 번 계속해서 쓰러지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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