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면 모든 것이 은총이었습니다

1987년 집안의 기둥이었던 장남(형님)이 주일 예배를 마친 후 출근했다가 사고를 당해 허리가 골절되었습니다. ‘평생에 한 번만 더 걸었으면 소원이 없겠다’는 소원을 가진 형님으로부터 장애인 사역의 씨앗이 던져졌습니다. 1998년 4살 때까지 말을 하지 않아 애를 끓게 했던 아이를 통해 장애인 사역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가게 되었습니다. 

2000년 10월 교회의 장의자를 치우고 본격적인 장애인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갈 곳 없던 장애아동들을 교회의 공간을 이용해 오전 시간이라도 돌보아 주고, 그 시간만큼 어머님들에게 쉼을 주어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처음 만난 아이가 용주였는데 지금 성인이 되어 주일 찬양 인도를 합니다.  

승훈이는 한 번 울기 시작하면 그칠 줄 몰랐습니다. 고함을 지르며 뒹굴고 난리가 납니다. 하도 소리를 지르고 울어서 아동학대로 신고를 받은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승훈이가 울기 시작하면 승훈이의 손을 잡고 기도합니다. ‘하나님, 승훈이가 너무 슬퍼합니다. 하나님이 위로해주세요.’ 하나님의 위로하심으로 승훈이가 울음을 멈춥니다. 

유성이는 식탐이 많은 아이입니다. 음식을 보면 이성을 잃고 달려듭니다. ‘유성아, 기도하고 먹어야지.’ 이제는 음식을 보고 기다릴 줄 압니다. 두손을 모으고 기도하고 먹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식사기도를 배우기까지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유성이와는 힘든 이별을 했습니다. 토요일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둘째를 임신한 엄마가 너무 피곤해서 유성이를 보기 힘들었습니다. 유성이가 혼자 나가지 못하도록 방문을 잠그고 눈을 붙였는데 창문을 넘어서 밖으로 나갔습니다. 유성이는 바닷가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혼자 나가지 못하게 그렇게 싸웠는데, 잠시라도 차가 멈추면 차창을 열고는 뛰어내려 기겁을 하고 쫓아다녔는데, 누구에게도 간섭받지 않고 맘대로 원대로 돌아다닐 수 있는 곳에 갔으니, 축하라도 해야 했을까요. 너무도 가슴이 아픈 기억입니다. 

다시는 유성이와 같은 친구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며 센터 건립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힘들 때, 가정에 일이 있을 때, 아이들 없이 혼자만 긴급하게 일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 생겼을 때, 맘 편히 아이들을 맡기고, 아이들도 불안한 상황에 당황하지 않고 편안하고, 충분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돌봄의 공간을 위해 오랜 시간 기도했습니다. 

 

2004년 어렵게 땅을 구해 설계를 마치고 건축허가를 준비하는데, 건축법 적용이 달라졌습니다. 건축허가가 나지 않았습니다. 2007년 제주시 인근에 건축허가를 받았는데 은행대출이 번번히 무산되어 건축을 할 수 없었습니다. 결국 그렇게 시간만 흘러 2015년 건물 주가 1억 원의 세를 요구해 교회를 비워야 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서둘러 제주시 오라동에 대지를 마련하고 건축을 시도했지만 건축비를 감당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버티기 어려운 지경이 되었는데 장애 자녀를 키우는 장로님과 어느 권사님의 헌신으로 건축을 지속할 수 있었습니다. 

모 교회의 사모님께서 헌금을 보내주시고, 이웃 태권도장에서 모금을 해서 보태주시고, 아이의 백일 기념 적금 통장을 가져오시기도 하고, 좋은 일에 써달라며 불전함에 모았던 헌금을 가져오시기도 하고, 은퇴하신 감리교 목사님께서 헌금을 보내오시고, 건축 중인 장로교회에서 건축비용의 십일조를 하시겠다며 앰프를 설치해 주시고, 어느 교회 사모님이 직장을 구했는데 첫 열매라며 헌금해 주시고, 반주자로 사역하시다 대구로 가신 사모님께서 아이들 돌반지를 팔아 보내주시고, 장애 아이들 부모님들이 헌신해주셨습니다. 

기공예배를 앞두고 성결신문에서 한면 전체에 기사를 실어주셨고, 기사가 나간 후 부산에서 또 다른 곳에서 귀한 정성을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체온을 느끼게 해 주신 귀한 분들의 사랑과 정성이 베데스다 연못가에서 기적을 바라는 많은 장애인들에게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임을, 아직도 세상에 기적이 일어날 수 있음을 알게 하였습니다. 

텔레비전에 아이가 소개되었습니다. 엄마와 아이가 이동하다가 잠깐 시선을 놓친 사이 아이가 사라졌습니다. 아들을 찾기 위해 장애아부모회, 센터식구들과 선생님, 그리고 경찰들이 동원되었고, 새벽녘이 되어서야 정반대쪽의 거리에서 활보하는 아들을 발견한 경찰의 연락으로 겨우 품안에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매일 매일 마음을 다잡습니다. 아이들에게, 또 이곳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안식처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좋은 쉼터가 되었으면 합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일이 안락한 일상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제 속에 익숙해 있던 폭력성을 덜어내고 열린 마음으로 아이들과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수요일 오전이면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모여 예배를 합니다.

주일보다 더 많은 인원들이 모여 찬송을 부르고, 말씀을 나눕니다. 예배 때마다 이렇게 축복의 말, 사랑의 말들로 서로를 위로하고 축복하며 즐거워하고 행복해 합니다. 혹여 내게 떠맡겨진 역할일지라도 기꺼이 함께할 수 있는 이들이 있어, 떠맡겨진 것이 아닌 내 의지로 선택한 역할로 여기고 부지런히 길을 걷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덕분입니다, 모든 것이 은혜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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