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순영 목사(본지 편지위원. 장충단교회)

29세의 나이에 시 한 편 발표해 본 일도 없이 무시무시한 고독 속에 죽은 윤동주의 슬프고 아름답기 한이 없는 유고 시집을 펴낸(1948) 정지용은 “내가 시인 윤동주를 몰랐기로서니 윤동주의 시가 바로 ‘시’고 보면 그만 아니냐? 그의 ‘시’로 그의 시인 됨을 알기는 어렵지 않은 일이다.”라고 하였습니다. 

목회 수기의 제목 『서시 2019』를 포착하는 순간 “이런~”, “감히…” 하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습니다. 윤동주에 대한 나의 경외심에 심각한 상처를 입는 느낌이었습니다. 
점입가경이라더니. 도입부터 헤겔을 들먹이는가 하면 굵은 글씨의 소제목 코로나 시대의 대안 ‘몰기도’, ‘선교적 식사’, ‘원정 예배’, ‘공유 교회’ 등 나오는 단어마다 그리고 이어지는 문장이 눈에 거슬렸습니다. 

드디어 “뭐야~” 하는 혼잣소리가 나오고 말았습니다. “에이~” 일단 접어두고 다른 글들을 읽었습니다. 여러 편의 수기에서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수상작을 선정하려다가 ‘그래도 다시 한번’ 접었던 글을 펼쳤습니다.

“글은 곧 그 사람이다.”(Style is the man himself)라는 뷔퐁(Buffon)의 말처럼 그의 문체뿐 아니라 그의 사역도 도전적이었습니다. 그리고 목회의 본질을 충실하게 붙잡고 흔들림 없이 교회를 세워나가기 위한 의지를 읽었습니다. 

모두 두려워하는 시간에 그는 당당했고, 합리적인 이유로 타협하는 상황에 그의 발상의 전환은 빛났습니다. 이 사람이 아니면 누가 코로나 시대에 개척에 도전했을까 하며 읽는 가운데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 걸어가야겠다.” 라는 서시(序詩)의 구절이 내 입술에서 흘러나왔습니다. 

잊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걷는 이 길이 선택한 길도 밀려난 길도 아닌 그분으로부터 나에게 ‘주어진 길’이었음을.

기도하였습니다. 그의 사역이 서시에서 시작하여, 슬프도록 아름다운 시 “행복한 예수 그리스도에게처럼 / 십자가가 허락된다면 / 모가지를 드리우고 / 꽃처럼 피어나는 피를 / 어두워 가는 하늘 밑에서 / 조용히 흘리겠습니다.”하는 ‘십자가’의 길로 이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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