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적들이 마구잡이로 배들을 납치하고 몸값을 요구해도, 인명 위해의 위협이 있어도, 끝까지 참아야 한다는 말인가?” “아닐세, 해적도 사람이니 인명 살상은 최대한 피하는 방법을 모색했어야 한다는 말이지.” “더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하려는 노력이 빚은 결과이니, 당연하잖은가?” “그것은 우리 입장이고 해적의 가족 입장에 서 보면…” “그런 식으로 말을 이어가면 정의란 애초에 불가능한 것 아닌가?”

▨… 지난 21일에 벌어진 최영함의 소말리아 해적 소탕 작전을 두고 두 목사가 아웅다웅 설전을 펼쳤다. 인질 구출 작전이니 해적사살은 정의로운 행동이라는 평가에 대해, 사랑은 해적의 생명까지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이라는 조금은 비현실적인 주장을 반론으로 전개해 말이 말을 낳고 있었다. 그러나 종국에는 막스 호르크하이머의 말을 인용해 결론을 내리고 있었다. “살인자가 죄 없는 희생자를 이겨서는 안 된다는 열망을 포기해선 안 된다.”

▨… 교단 안에서 자신은 억울하게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수가 점증하고 있다. 성결원 때문에, 선교사 훈련원 때문에, 소속 지방회 변경 때문에, 지방회 분할 때문에 누군가는 억울하다는 것이다. 총회 임원 선거에 쓸 돈이 없어서 억울하고, 공정치 못한 보도 때문에 억울하다. 선배라서 억울하고, 후배라서 억울하다. 목사라서 억울하고, 목사가 아니라서 억울하다. 평생 씨름해도 퇴직금 한 푼 받을 수 없을 자신의 목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무엇보다 억울하다.

▨… 지적인 사고, 학습, 복잡한 의사소통의 능력은 인간이 동물과는 다름을 증명해주었지만 그 능력은 한편으로는 인간을 사악하게 만드는 도구로도 이용되었다. 인류학자들의 보고에 의하면 원시문화상태의 타이티와 이누잇족의 전통사회에서는 반사회적 공격성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인간이 인간을 공격하는 사악함은 ‘선악을 판단하는 지혜’로 부터 비롯된 것일까?

▨… 성결한 신앙은 사랑이란 열매를 맺고, 정의와 평화라는 가지를 갖게 된다. 억울한 사람이 늘어나는 것은 정의가 무너지고 있는 증좌이고 정의의 함몰은 사랑이 병들고 있다는 증표이다. 교단을 어지럽히는 세력에 대해 해적 소탕하듯 할 수 야 없겠지만 언제까지 호도할 수만은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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