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적이 분명하면...> 온유한 삶 위에 그려진 굵직한 발자취

정진경 목사의 인생 자서전 '목적이 분명하면 길은 열린다'는 목회자의 진솔한 삶의 고백으로 다가온다.  한마리 학처럼 유유자적한 세월을 보낸 듯하면서도 굴곡 많은 현대사의 질곡을 견뎌내야 했던 아픔과 고뇌도 찾을 수 있다. '큰 열매는 없지만 후회없는 삶을 살았다'는 그의 고백에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원로의 겸손함과 온유함을 배우게 된다. 구술을 기록한 자서전이지만 간결한 어휘와 온유한 표현은 영락없는 정진경 목사의 문체 그대로다

그의 자서전에서 가장 궁금한 것은 국가조찬기도회와 관련된 부분이다. 5.18광주민주화운동을 피로 진압한 후 교계 지도자들이 모여 당시 최고 실권자인 전두환 씨를 위해 기도한 것을 어떻게 기록하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이 있었기 때문이다.

역시 정진경 목사의 평소 성품이 그대로 묻어 나왔다. 차분하고 진솔하게 그 때의 일을 말하고 있다. 사실 많은 이들은 이 부분을 정 목사의 가장 큰 오점 중 하나로 아쉬워한다. 일부에서는 입장 표명을 요청한 것 또한 사실이다. 정 목사는 이 책에서 다른 어느 곳에서보다 자세하게 그 과정과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그는 국가를 위해 기도한 것, 홍보용 기도모임으로 철저히 이용당했다는 불쾌감이 팽배했던 것, 많은 사람들로부터 항의와 수모를 당한 것 등을 고백한다. 하지만 새로운 입장표명보다는 “권력과 종교는 다른 것이며 논쟁보다 묵묵히 수모를 받아들였고 기도하는 것이 (우리의) 몫 이었다”는 말로 갈음한다.

정진경 목사는 온유함 자체다. 작년 초 본지 신년대담에서도 시종 조용하고 솔직함으로 자신이 평소 생각해 온 목회와 성결교회에 대한 입장을 피력했다. 예민한 질문도 살짝 피해가기 보다는 그 질문을 아우르는 답변으로 질문 자체를 포용했다.

그는 평안남도 안주 산골에서 태어나 부모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서산리장로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신의주 동부성결교회에서 중생을 체험한 그는 자그마한 죄에도 이웃에게 사죄를 청했고 성결한 삶을 살고자 노력했던 전형적인 성결인 그대로였다. 생계를 위해 취직을 했다가 폐결핵과 늑막염으로 그만둔 그는 신유를 체험한 후 목회자의 길에 들어섰으며 주님을 닮은 삶을 살기 위해 최선을 경주했다.

졸업 후 혜화동교회에서 사역하던 그는 6.25 한국전쟁 때 기적적인 생환을 체험했다. 35세 때는 단돈 15달러를 들고 도미해 오렌지 농장에서 일하며 4년 동안 유학생활을 했고, 자율적인 교육방법을 강조한 유학파 교수로 서울신학대학교에서 14년간 후학을 양성하기도 했다. 학문과 목회현장의 접목을 고민해 온 그 고민을 부여잡고 신촌성결교회에 부임한 그는 신촌교회가 성결교회를 대표하는 교회로 성장되는 일에 온전히 헌신했다.

이후 그는 교단총회장, 서울신대 이사장, 한국기독교총연합회장,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사업협의회장, 한국세계선교협의회 대표회장, 월드비전 이사장 등 성결교회와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기구의 책임자로 한국교회 성숙과 발전을 위해 일하게 된다. 그의 뜻이 아니었다. 그의 온유함과 고고한 인품, 사심 없는 그의 성품이 그 일을 가능케 한 것이다.

그럼에도 정 목사는 “어려운 시대 한복판에서 살아야 했지만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몸소 체험하면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했다. 큰 열매를 맺지는 못했지만 후회 없는 삶을 살게 하시고 보람 있는 일을 맡겨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고 고백한다.

사실 정진경 목사의 삶과 생애는 성결교회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고매한 인품을 닮고자 노력하는 목회자들 또한 적지 않다. 한경직 목사 사후 그만큼 한국교회로부터 사랑받는 목회자 또한 없다고 단언하더라도 결코 과장이라 여기는 사람은 결코 많지 않을 것이다.

글을 읽으며 ‘직접 쓴 글이라면’ 하는 아쉬움을 갖는다. 하지만 정 목사가 평소에 쓴 글의 어투와 어감이 그대로 살아 있고 평소 발표했던 글이나 여러 모임에서 말씀한 내용이 담겨있어 좋았다. 짧게 구술한 그의 진솔한 고백에 담긴 삶의 궤적과 특유의 온화함과 겸손함은 이 시대를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향한 도전을 주고 있다.
<정진경 구술, 이유진 글/홍성사/270쪽/1만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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