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릴없이 먼 산만 바라보듯 의장석을 응시하던 어느 대의원이 휴대폰을 꺼내어 만지작거렸다. “뭐하세요?” 질문에 대답은 삼켜버린 채로 빙그레 웃으며 쪽지를 내밀었다. A후보 100회, B후보 88회, C후보 65회. 선거운동기간에 그 대의원이 부총회장 후보들과 운동원들에게서 받은 문자 메시지는 총 253회였다. 가히, 문자 메시지 폭탄세례였다. 많이 보내야 뇌리에 각인된다는 신념의 표현이었을까.

▨… 대부분의 문자 메시지에는 ‘존경하는…’이라는 문구가 밤하늘에 빛나는 별처럼 박혀있었다. 그러나 총회기간 내내 발언 한마디 할 엄두도 내지 못했던 그 대의원은 자신이 결코 존경받을 만한 그릇이 못 된다는 것을 모를 만큼 바보스럽지는 않았다. 그는 파스칼이 팡세에서 이미 갈파한 것처럼 “우리는 지성을 가진 인간이라기보다는 자동화된 기계”라는 사실을 이미 확인하고 있었던 것이다.

▨… “당신이 목사야?”, “니(너)가 장로야? 당신 나한테 성희롱 했어!” 여인의 고함 소리가 앙칼졌다. 자칫하면 봉변당하겠다는 두려움이 둘러선 모든 사람들에게 목덜미를 파고드는 한기처럼 소리 없이 번지고 있었다. 선거법 위반의 혐의가 있든 말든, 그녀의 행위가 목적하는 바가 무엇이든 모두들 자리를 피하기에만 급급했다. “피레네 산맥 이쪽에서의 진실이 저쪽에서는 진실이 될 수 없음을”(파스칼·팡세)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에.

▨… 그 대의원이 물었다. “앞으로 누가 교단 일을 하려고 할까, 가만히 있었으면 그런 봉변은 당하지 않았을 것 아닌가!” 목사에게, 장로에게 봉변은 치명상이다. 범인들에게도 체면과 염치는 얼굴을 붉히면서까지 라도 지켜내야 하는 것이지만, 존경받아야 함이 생명인 목사님, 장로님들에겐 봉변은 가시어낼 길 없는 상처로 남을 수밖에 없다.

▨… 적어도 성결인이라면 부총회장 후보자까지 된 목사를 존경까지는 몰라도 마음으로 아끼고 감싸주어야만 했던 것 아닐까? 하나님의 일을, 교단의 일을 맡아 하겠다고 나서는 사람들인데. 피레네 산맥 저쪽 사람이라는 이유로 봉변을 안기자고 작심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인가? 누가 봉변당하든 나와 상관만 없다면 모르는 체하려는 생리가 성결인 사이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이 들불이 종국에는 성결교회마저 삼키는 사태를 빚지 않을까, 두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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