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 전 나는 작은 수술을 받고 마취에서 깨어나면서 수술 부위에서 오는 통증을 느끼는 순간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린 상태로 옆구리를 창으로 찔린 고통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분은 지금 나의 이 아픔을 아신다.’ 이 생각이 나에게 큰 힘이 되었습니다. 죄송한 말씀이지만 그때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고통을 받으셨다는 사실이 나에게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그 예수님이 바로 나의 주님이시라는 것이 힘이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깊이 묵상하면서 그의 아픔을 가슴 속으로 간절하게 느끼는 만큼 은혜가 넘쳐납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은 우리에게 커다란 선물이 됩니다.

예수님의 아픔이 나에게 은혜가 된다는 말을 다시 이렇게 설명하고 싶습니다. 내가 병원에 입원하여, 수술을 받고, 회복하는 시간 동안 아내는 내 곁에 서서 온갖 시중을 다 들어주었습니다. 아내로부터 내 평생에 그런 서비스를 처음 받아보았습니다. 아픈 사람은 ‘나’입니다만 나 못지않게 아내는 내 어려움에 공감하며 동참하였습니다. 그러면서 아내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건강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새삼 느끼며 감사드리고, 내가 부족한 것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사랑스럽고 귀하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내가 통증으로 신음할 때 아내는 더욱 순수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고,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넘쳐 기도하게 되는 것입니다. “긍휼이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요)”(마 5:7). 그래서 내가 아픈 것이 아내에게 축복이 됩니다.

하나님은 종종 목사를 병원에 눕혀 놓고 일을 하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건강할 때보다 아플 때 더 많은 것을 성도들에게 줄 수 있는지도 모릅니다. 내가 교통사고로 병원에 누워있을 때 성도들은 더욱 열심히 교회에 나와 기도하였습니다. 나의 강함이 아니라 나의 약함을 통하여 성도들이 더욱 은혜를 받습니다. 나도 때때로 신문을 읽다가, 책을 읽다가, 라디오를 듣다가,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어려움과 아픔을 겪고 있는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감동이 되어 혼자 흐느껴 울 때가 많습니다.

그들 때문에 내가 부끄럽기도 하고, 내가 너무 못됐다고 회개하기도 하고,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다짐도 해봅니다. 그들의 아픔을 생각하면 내 완악했던 마음이 부드러워지면서 그들을 돕고 싶은 마음까지 생기니 내가 은혜 받고 있는 것 아닙니까? 나는 강한 자 앞에서가 아니라 연약한 사람들 앞에서 더 한없이 약해지고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들의 아픔에 마음으로 공감하며 참여하다가 내가 은혜를 받는 것입니다.

나는 종종 어려운 사람들을 도울 때 아이들과 함께합니다. 도움에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저들에게 오히려 내 아이는 “아빠, 감사해야 할 사람은 우리예요. 도울 수 있는 것도 있고, 그럴 마음도 있으니, 우리가 얼마나 축복을 받고 있는지 알게 되고… 그리고 저분들이 우리 대신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지도 모르잖아요”라고 말합니다. 나와 저의 아픔이 별개가 아니라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내가 건강한 것은 누군가 내 대신 아프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것, 내가 부유한 것은 누가 내 대신 가난하기 때문인지 모른다는 것, 내가 행복한 것은 누가 내 대신 불행을 겪기 때문인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예수님의 크신 대속적인 고난 말고도,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작은 대속적인 고난, 가난, 아픔이 있다고 믿습니다. 장애를 가지고 사시는 분들, 가난한 생활을 하면서 어렵게 사시는 분들, 인생사의 아픔을 가지고 사시는 분들 모두가 나를 위한 작은 대속적인 고난을 받고 있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분들의 고난과 내가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고난을 통하여 내가 은혜를 나누기 위해서는 그들과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나는 어떤 식으로든지 그들의 고난에 참여하고, 그들과 더불어 살아야 합니다. 그때 그들의 고난이 나에게 축복이 됩니다.

사순절은 이런 고난에 대한 생각을 하는 기간입니다. 예수님의 수난은 성금요일 하루에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외롭고, 배척당하고, 모함당하고, 배신당하고, 감옥에 갇히고, 채찍으로 맞고, 모욕을 받고, 재판 받고, 자기가 달릴 십자가를 지고 가고, 십자가에 매달려 서서히 죽어가다, 결국 창으로 찔리기까지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한 순간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고난의 긴 과정을 거쳐 죽으셨습니다. 그 모든 과정들을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한다면 그의 고난은 우리에게 커다란 축복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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