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란을 일으킨 미실은 백제 전선을 방어하고 있는 속함성 여길찬의 부대가 합류하기 위해 이동을 시작했다는 보고를 받는다. 이제 선덕여왕을 꺾고 권력을 얻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다. 그러나 미실은 여길찬의 부대에게 전선으로의 회군(回軍)을 명령한다. 권력을 얻는 승리보다 진흥제와 함께 세운 신국(新國)이 더 소중했기에… 삼한일통(三韓一統)의 대업은 선덕의 정치나 유신의 군사력보다 미실의 결단이 먼저였다. 적어도 드라마에서는.   

▨… 산상수훈을 통한 주님의 명령은 ‘먼저’와 ‘나중’이란 말로 꿰어 읽을 수 있다. 먼저란, 비교 우위나 중요도가 아닌 순서의 우선권을 말한다. 주님께서는 종교적 의례보다 화목한 관계가 먼저이며(마 5:24), 먹고 입는 것을 구하는 일보다 하나님의 나라가 우선이며(마 6:33),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보다 자신의 눈 속에 들보가 있음을 깨닫고 빼는 것이 먼저라 하셨다(마 7:5).

▨… 신국(新國)을 위해 자신의 야망을 이루고 권력을 잡을 수 있는 승리의 기회를 스스로 포기하고 회군을 명한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신라 여인의 기개와 대의가 우리를 부끄럽게 한다. 오늘의 그리스도인은 우리의 신국(神國)을 위하여, 자신을 드러냄 보다 먼저 그리스도의 몸인 건강한 교회를 세워가고 있는지, 교회는 교세 확장보다 빛으로 소금처럼 착하게 살라(마 5:16)하시는 하나님의 다스림(Basileia)을 따르고 있는지 대답해야 할 것이다.

▨… 조선 후기 실학자인 위백규(1727-1798)는 “남을 살피느니 차라리 스스로를 살피고 남에 대해 듣기보다 오히려 스스로에 대하여 들으라.”(與基視人寧自視  與基聽人寧自聽)고 하였다. 진실한 수행자의 눈은 안으로 향해 열려있는 법이다. 평생을 “너 자신을 알라!’라고 한 소크라테스는 사형선고를 받고 아테네 시민에게 말했다. “나는 죽으러 가고, 여러분은 살러 간다. 누가 더 행복한 것이냐, 오직 하나님만이 안다.”

▨… 모든 것을 초토화 시킨 지진처럼 폭로와 비판, 정치적 대립의 균열이 예사롭지 않다. 신국이 무너져도 내가 이겨야만 하고 우리가 권력을 잡아야 한다는 것일까? 죄가 없으면서도 죄인의 세례를 받기 위해 요단강 밑바닥까지 낮아지신 주님의 겸비를 닮아가야 할 사순절이다. 파국으로 치닫는 위기 앞에, 이기려고만 하는 이들이여“회군하라!” 오늘 우리에게 “내 탓이요”라고 먼저 가슴을 치는 이,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지도자는 없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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