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척 후 수많은 고난 이기고 희망 싹틔워

 

 

한국교회(강춘근 목사)는 국가부도 IMF사태가 일어난 직후인 1998년 4월 5일 ‘한국에서 이스라엘까지 평화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라는 모토로 인천의 서구 심곡동 지하빌라에서 가정교회로 시작됐다.

개척자 강춘근 목사는 이스라엘과 영국에서 진행되던 선교사 훈련을 잠시 내려놓고 귀국한 상황에서 막 결혼한 아내와 두 명의 여학생과 함께 교회를 개척했다.

개척 후 1년 6개월의 시간을 보낸 후 비로소 1999년 10월 20여 평의 2층 공간을 임대하여 개척설립예배를 드렸다. 경제적으로 충분하지 않은 상황에서 맨손으로 강대상을 만들고 책꽃이를 톱질해가며 교회에 필요한 용구와 용품들을 손수 만들었다.

사역 초기에는 청소년기에 받은 영적 은혜를 경험삼아 청소년 사역에 초점을 맞추며 청소년 선교 중심의 목회사역을 펼쳐갔다. 청소년 꿈터에서 학생들과 만나고 소장하고 있던 도서 4000여 권으로 도서관 사역도 시작했다. 교회 개척 후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안정되고 부흥의 동력을 마련해가고 있던 시기에 뜻하지 않은 고난이 찾아왔다.

2001년 아내가 ‘간담도암’이라는 3개월 시한부 판정을 받았은 것이다. 이미 수술을 할 시기도 지났고 더욱이 경제적 여유도 없었다. 그렇게 2002년 1월 아내가 주님 품에 안겼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아내의 장례를 치른 지 두 달이 채 되지 않아 재개발 문제로 교회를 비워줘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교회를 어렵게 이전하고 예배공간을 공사하던 중 유리액자가 떨어져 이마를 28바늘 꿰매는 사고를 당했고 2002년 12월에는 건강검진을 받다가 갑상선암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받고 40일간 제대로 된 목소리를 낼 수 없었지만 강단을 비우지 않았다.

이런 고난 가운데 강 목사는 2003년 4월 목사안수를 받았고 미래목회에 대한 방향을 새롭게 정립했다. 전공했던 기독교사회복지를 통해 지역의 신학교와 대학에서 강의와 연구활동을 병행하며 교회를 꾸려갔다.

또 청소년과 지역주민을 위한 도서관 공간을 꾸며 2004년 2월 교회 부설기관인 ‘한국민들레도서관’을 설립했다.

매월 독서모임 및 독서동아리 활동, 다양한 인문학적 독서 프로그램을 개발해 지역사회에서 가장 모범적이고 우수한 도서관으로 평가 받았다. 2005년에는 사회선교단에 가입하여 특수전도기관으로 인정을 받았다.

2008년에는 한국노인복지센터(재가장기요양기관)를 부설 협력기관으로 세우고, 2015년에는 세 번째 부설기관으로 ‘한국웰다잉교육문화연구원’을 설치해 사역의 폭을 넓혀갔다. 그렇게 왕성한 사역을 하던 강 목사는 2016년 제21차 사회선교단장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강 목사는 사별 후 5년간 홀로 사역하다가 2006년 7월 신학교에서 만난 탈북민 출신 여학생을 소개 받아 새 가정을 꾸렸다. 아내는 노인복지센터와 도서관 사역의 중요한 파트너가 되었으며 통일선교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일깨워주었다.

강춘근 목사는 “지난 20여 년간의 여정을 돌아볼 때 힘들고 어려웠지만 동시에 특별한 은총과 행복한 사역의 길이었다”고 고백했다. 강 목사는 이제 앞으로의 20년 후를 바라보며 더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한국교회와 교단의 성장동력이 되고 싶은 마음으로 부풀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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