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37:1~4)

요즈음 코로나19 감염확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의 구별이 없는 듯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으로부터 피 뿌림을 받은 자들입니다. 주님으로부터 거룩하게 구별된 자들입니다. 구별된 자들은, 구별된 삶을 살기위해 노력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작금의 상황에 조심은 해야 하지만 두려워 떨 필요는 없지 않겠습니까? 

본문말씀의 초점은, 성경시대 히브리인들을 통하여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예배의 중요성'을 깊이 깨닫게 해주려는 의도에 있습니다.

본문에 소개되는 노래는, 히브리 노예들이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가 주의 날에 강가에서 부른 합창곡 입니다.  지난 날 자신들의 삶을 후회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자신들을 머나먼 이국땅까지 끌고 온 자들을 저주하며 부르는 노래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만 보아도 당시 히브리인들이 처한 상황이 어떠한가를 조금이나마 짐작할 수 있습니다. 본문에 나타나는 히브리 노예들의 애가는 주일을 잘 지킨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는 노래입니다.

특히 본문에서 우리들의 마음에 크게 와 닿는 가사가 있습니다. 1절에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다” 하는 내용입니다. 이는 예배에 대한 사무침이 묻어 있는 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지킨 것이 아니라, 주일이 우리를 지켜주었다’는 사실을 바벨론 강가에서 깨닫고 뒤늦게 후회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히브리 민족이, 바벨론에 강가에 포로(노예)로 끌려가, 강변에 앉아 무엇을 기억하고 있는지 잘 들어 보십시오. 가나안을 기억한다고 하지도 않습니다. 무엇을 기억한다고 합니까? 시온을 기억한다고 말합니다.

본문 1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바벨론의 여러 강변 거기에 앉아서 시온을 기억하며 울었도다”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타국에서 ‘이스라엘을 기억한다! 가나안을 기억한다!’ 이렇게 말하지 아니하고, 왜 ‘시온을 기억한다’고 고백하였을까요? 그들이 시온이라는 단어를 의도적으로 언급한 것은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시온을 예배와 연관 지어 말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히브리인들의 생각 속에는, 지금 이 순간 뼈저리게 사무치며 후회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선택받은 히브리인들에게만 주어진 특권이 예배인데, 그럼에도 그 예배를 소중히 여기지 못하여, 예배가 무너졌기 때문에 바벨론에 포로가 되었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당시 바벨론 강가에서 히브리인들이 불렀던 시편 137편 1절에서 4절의 애가는 결코 남의 노래가 아닙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노래가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도 예배가 무너지면, 언제 히브리인들과 같은 애가를 부르게 될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찬송은 시온에서 드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히브리인들이 예배가 중단된 후에, 여호와께 찬송을 부르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나타납니다. 4절입니다.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꼬!” 이런 안타까운 일들은, 예배를 소홀히 여기고, 주일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던 결과로 나타난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히브리 노예들의 애가를 들어보면서 새로운 도전이 있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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