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기를 꿈꾸며

 

 

양촌비전교회를 개척 설립한지 8년째 접어들면서 어려움도 있었지만 지금까지 인도 해 주신 에벤에셀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드린다. 요즘 미자립교회도 하는 일에 따라 큰 교회 못지않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다는 자부심으로 목회하면서 성도들에게 우리교회는 “작은 교회지만 큰 교회다!”라고 강조한다. 

현재 출석하는 성도들은 이주노동자, 탈북민, 사할린교포, 중국동포, 알코올중독자, 지적장애인, 시각장애인, 생활능력이 없는 홀몸노인들이지만 그동안 한국인과 외국인이 우리교회에 다녀간 인원만 해도 4백 명이 넘고 세례를 받은 외국인은 30명이 넘는다. 

나의 목회를 뒤돌아보면 하나님께 서원한 것을 이행하기 위하여 2012년10월7일 박광표 전도사와 양촌비전교회를 개척 설립예배를 드렸다. 교회를 설립하고 열심히 전도했는데 첫 번째 성도가 33세 된 알코올중독자였다. 이 청년은 나의 간증을 듣고 “저도 목사님처럼 술을 끊고 열심히 살아 보겠다”고 교회 나와서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 3개월 만에 하나님 품으로 갔다. 첫 열매가 갑자기 심장마비로 떠난 것이다.

나는 그의 주검을 안고 통곡 했다. “하나님! 우리교회 첫 열매입니다. 술을 끊고 열심히 신앙생활 하겠다는데 왜 이렇게 빨리 데려 가셨습니까?” 하나밖에 없는 성도를 데려가시면 어떻게 합니까?”라고 하소연하며 기도 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 그의 어머니와 온 가족이 다 예수님을 영접하게 된 것이다. 그 일로 인하여 10명 20명 30명 성도들이 계속 늘어나 금방 자립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호사다마라 할까? 고난이라는 어둠의 그림자가 나에게 찾아왔다.

고난을 믿음으로 이겨내다
 같이 개척했던 박 전도사는 6개월 만에 다른 사역지로 떠나 그의 빈자리가 너무 컸지만 부흥되는 교회를 보면서 즐거움으로 사역을 감당했는데 어둠의 그림자가 서서히 드리웠다.

대학을 졸업하고 9급 공무원 시험 준비하던 건강했던 딸이 암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이 나왔다. 나는 하나님께 엎드려 “하나님 저희 딸을 주님의 손길로 치료하여 주옵소서! 죽은 자도 살리신 주님께서 저희 딸을 고쳐주실 줄 믿습니다.” 아내와 같이 금식하며 눈물로 간구하자 하나님께서 기도를 들으시고 딸을 완전히 고쳐 주셨다. 엎친 데 덮친다고 이번에는 아들이 기흉으로 한양대 병원에서 6시간동안 대 수술을 받았다. 

“하나님 제가 하나님나라 확장을 위하여 열심히 기도하고 전도하면서 열심을 다 했는데 ”왜 이런 고난과 고통을 주십니까?”라고 기도했더니 “야! 이놈아! 그래야 내 심정을 알 것이 아니냐! 나는 내 아들을 너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았다. 네가 목회하려면 아픈 사람들의 심정을 헤아려야 할 것이 아니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 앞에 엎드렸다. 이렇게 우리가정에 우환이 겹치자 성도들은 하나둘 다 떠나가고 우리가족만 남게 되었다.  

교회 운영자금이 없어 건축현장에 일주일에 3-4일씩 나가 일하면서 하나님께서 나에게 고난을 주신 이유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다.” “고난당하는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를 배웠나이다(시119:71)”라는 시편기자의 고백이 나의 고백이 되었다.

하나님께서 고난을 축복으로 바꾸어 주시어 우리가정이 한마음 한뜻이 되었고 아내는 찬양인도와 주방일로, 딸은 피아노 반주와 행정 간사로, 아들은 영상과 물질로 봉사하고 있다. 

다시 부흥을 꿈꾸며
교단에서 실시하는 2.3.4 부흥운동에 참여하여  전도 4시간 중 2시간을 읍내를 다니면서 쓰레기를 주우며 “이 읍내를 밟고 다니는 사람마다 성령의 능력으로 변화시켜 주옵소서! 술과 향락 속에 빠져 있는 어둠의 세력을 물리쳐주옵소서! 주님! 쓰레기를 하나 담았습니다. 한 영혼 보내주옵소서!”라고 기도하면서 쓰레기를 주우며 노방전도를 했다. 이제 주위사람들이 “쓰레기 줍는 목사님 나오셨어요.” 라고 먼저 인사를 한다. 또한 자기가게 앞에 쓰레기를 줍는 주인들이 늘어나고 동네와 상가주변이 많이 깨끗해졌다. 나는 그들의 심령도 깨끗해져서 예수님 믿고 구원받게 해 주실 것을 믿으며 기도하고 있다. 

 

2.3.4운동을 하면서 한 분, 한분 성도가 늘어났지만 세분이 하늘나라 하나님 품에 안겼다. 33세 밖에 안 된 알콜 중독자였던 청년과 예수님을 모르던 32세 된 젊은 새댁이 암 말기로 하나님 품에 안기고 68세 된 여자 성도님이 주님 안에서 열심히 식당봉사를 하다 소천 하셨다. 우리교회가 없었다면 이 분들은 영원한 지옥 불에서 고통을 받을 것이 아닌가? 한 영혼 귀중함을 다시 깨닫고 전도를 통하여 한 사람씩 진리에 서 가는 것을 보며 다시 한 번 하나님께 감사하며 오늘도 강냉이를 들고 나간다.

 

이주민 사역의 시작
 이주민 사역을 시작하게 된 것은 2012년 10월7일 경기도 김포시 양촌읍에 엘리베이터 없는 3층에 42평을 임대해서 설립예배를 드리고 처음에는 부흥의 꿈을 안고 열심히 전도해서 10명, 20명, 30명 금새 100명이 넘어갈 것 같았다. 그런데 딸과 아들이 갑자기 어려움을 당하고 교회학교 학생들을 다 이웃 교회로 보내고 성도들도 한 사람 한 사람  다 떠났다. 

한동안 실의에 빠져있을 때 성락성결교회 동역교회 모집에 선정되어 1개월에 한번 주일예배로 동역하였다. 그때 당시 우리교회에는 정신병원에 수시로 들락거리는 알코올중독자만 10여명 있었는데 다른 교회 교인들이 예배드리러 오신다고 하니 한명도 나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무릎을 끊고 기도했다.

“하나님 아버지 한 사람이라도 보내주세요. 제발 제 체면 좀 세워 주세요!”라고 기도하고 밖에 나가니 몽골에서 온 한 청년이 지나가기에 그 청년 붙잡고 지금 우리교회 오면 점심도 주고 한국어도 가르쳐 준다고 하니 순순히 따라와 예배를 함께 드렸다. 이 몽골청년이 따라와 예배드리는 것을 보고 이주민선교회를 만들어 중점적으로 이주민 선교하기로 작정 했다. 재정도 어려운 미자립교회가 이주민 사역을 한다는 것 쉽지는 않았다. 

그러나 주님의 지상명령에 따라 외국인이나 장애자나 가난한자나 고아나 과부나 오직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복음을 전하자! 라는 마음가짐으로 노방 전도하고 틈만 나면 그들의 기숙사를 찾아가 기도해주고 아프다고 하면 밤중에도, 새벽에도 쫓아가서 병원에 데리고 간다.

또 임금을 못 받으면 고용안전센터와 노동청을 찾아가고 법률문제가 생기면 법률구조공단에 찾아가서 상담하여 해결해 준다. 타향살이에 외로운 이들을 위하여 생일은 꼭 잊지 않고 생일잔치를 해주면서 그들이 감동을 받도록 최선을 다해 사랑으로 섬긴다.

캄보디아 죽어가는 영혼을 위하여(캄보디아 선교회)
노방전도를 하다 캄보디아청년 림과 스탑을 처음으로 만났다. 림하고 스탑과  한국어를 매주 토요일 1시간 한국어 공부, 1시간 성경공부를 하고 공부가 끝나면 태권도를 한 시간 수련하고 이 청년들과 함께 노방전도를 했다. 이렇게 해서 20명이 넘는 캄보디아 청년들이 주축이 되어 캄보디아 선교회를 이끌어가면서 매주 이주민 청년들이 등록을 했다. 

29세 된 헹챈디는“목사님 저는 목사님처럼 목사님이 되고 싶어요!” 라고 말하면서 따로 떨어져 사는 아내와 매일 우리 교단 묵상 집을 가지고 묵상 나눔을 하며 동료들에게 한국어와 성경도 가르치고 캄보디아 선교회를 관리하는 동역자가 되었다. 그는 교회를 지을 부지도 마련해 놓고 2년 후에 서울신학대학에 들어갈 계획을 가지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교회를 섬기다 캄보디아에 돌아간 친구들은 현지 선교사님을 통해서 그곳 교회에 출석하고 70여명이 매일 페이스 북을 통해 성경말씀을 보내주며 소통하고 있다. 또한 우리교회에 출석하고 있는 캄보디아 친구 가족들이 현지교회에 등록하고 섬기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으니 이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역사이고 은혜이다

은혜의 밥상이 구원의 밥상이 되다(중국교포선교회)
우리 양촌비전교회가 운영하는 수요일 무료급식 “은혜의 밥상”를 통하여 오시는 중국동포가 10여명 된다. 그 중 한분은 당뇨가 심해 몸도 아프고 돈이 없어 살아갈 길이 막막해서 번개탄을 피어 놓고 죽으려고 마음을 먹었는데, “양촌비전교회에 가면 점심을 공짜로 준다.”는 이웃주민의 말을 듣고 “그래 이왕 죽는 것 밥 한 번 배불리 먹고 죽자!” 라는 생각으로 생전처음 우리교회에 나오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은혜로 자살하려던 마음을 버리고 새 가족공부 8주 과정을 마치고 세례도 받고 열심히 신앙생활하다 중국 길림성 고향으로 돌아갔는데 5개월이 지난 후에 그분의 따님한테 전화가 왔다. “목사님 감사합니다. 우리 아버지가 아주 평안하게 하늘나라 가셨습니다. 아버지가 꼭 목사님한테 고맙다. 라는 말을 유언으로 남기셨습니다.”란 감사의 소식을 받았다. 따님도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는 연락도 받고나니 참으로 감사한 일이요 은혜의 밥상이 구원의 밥상에 된 것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이주민 선교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분들을 위해 이 공장 저 공장 찾아다니면서 심방을 하기란 쉽지 않다. 재정이 부족해서 제가 인력에 나가 건설현장에서 일용직으로 일을 하고 아내가 인터넷 판매를 하면서 보태고 있다. 사역하기 힘들 때도 있지만 한 영혼을 전도해서 잘 양육하고 훈련시켜서 평신도 선교사로 보내겠다는 소망이 있기에 힘들어도 인내하며 즐겁게 사역하고 있다.

또한 캄보디아청년들이 “목사님! 저 교회가고 싶은데 사장님이 주일날에도 일을 많이 시켜요, 다음 주에 일 안하면 꼭 갈께 요!” 라는 소리를 들으면 그들에게도 구원의 희망이 보인다. 교회에서 10킬로 이상 떨어진 곳에서 “목사님 교회 가고 싶은데 차가 안 와요” 라고 말하면 신바람이 나서 달려간다.

강도만난 이웃을 돕다(미얀마 선교회)
  2016년 9월 강도만나 지갑도 다 빼앗기고 돈 한 푼도 없이 불법체류자인 미얀마청년 두 명이 찾아왔다. 교회 근처 마트 사장님이 양촌비전교회 가면 도와줄 것이라고 해서 찾아온 것이다. 없는 돈에 저녁을 대접하고 5만원을 주면서 우선 여관에서 숙식하며 인력회사에 나가 돈을 벌어 갚으라고 인력회사까지 소개해 주었다.

그런데 다음날 일이 없어서 일을 못 나갔다고 하면서 다시 찾아왔다. 줄 돈도 없고 교회에서 당분간 숙식을 하면서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 유아 방에서 숙식하게하고 그들에게 한국어와 새 가족 교재를 통해서 성경도 가르쳤다. 이들은 새벽예배를 비롯해서 모든 예배에 참석하고 성경도 통독하고 열심히 신앙생활하면서 우리부부를 보고 부모님 같다고 할 때 보람도 느낀다.

이주민 선교는 꼭 해야 한다. 보내는 선교도 중요하지만 이제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을 “품는 선교”도 중요하다. 이주민 선교는 국내에 들어온 이주노동자, 유학생, 다문화 가정 등등 이들을 잘 양육하고 훈련시키면 아주 효과적이란 생각이 든다. 또한 신앙생활 하다가 근로기간을 마치고 돌아가는 이주민들을 각 나라 선교사님과 연결시켜 그들이 지속적으로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도와주면 그들 역시 훌륭한 전도자가 될 수 있다.

노인복지 사역과 장애인 사역을 꿈꾸며(은혜의 밥상- 실버행복학교)
은혜의 밥상을 통하여 지역에 있는 홀몸 어르신들과 장애인들에게 매주 수요일 점심 대접해 드리면서 이 은혜밥상을 더 활성화 시켜 실버 행복학교로 발전하기를 소망하고 있다. 우리교회에 출석하는 70세 이상이 15명이 넘고 시각장애인 3명과 지체, 지적 장애인이 있다. 

알콜중독자였던 우리교회 집사들이 홀몸 노인들을 담당하여 수시로 전화 드리기, 교회 모셔오기, 병원에 모셔가기 운동으로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돕고 있다.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커서 2018년 4월 첫째 주부터 매주 수요일 12시 지역주민들을 위한 “은혜의 밥상”이란 타이틀로 무료급식을 하는데 정성을 드려 최고의 밥상으로 귀빈 모시듯이 대접한다. 이 “은혜의 밥상”을 통하여 매주 25명-50명 정도 식사대접을 하고 있다.

이 무료급식을 통하여 한 분 한 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교회에 등록하시 분들이 많아졌으나 우리교회가 엘리베이터 없는 3층이어서 올라오기 힘들어 못 오시 분들 때문에 3층이 아닌 1층으로 하루속히 이전하기를 기도하고 있다.

또한 70세 이상 어르신들에게는 어버이날과 명절에는 용돈도 작지만 드렸더니 눈물을 글썽이며 “목사님 고맙습니다. 내 평생 처음 용돈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참 좋으신 분이야!” 라고 고백을 하는 분도 계신다.
  복지사각지대에 있어서 의료혜택도 못 받고 다 죽어가는 사람을 병원에 데려가 살리고 시각장애인들의 눈이 되어서 보살펴 주고 지난가을에는 배추 260포기를 김장해서 7년째 김장 나눔을 하고 추석과 설날명절에는 홀몸가정들을 초대하여 점심을 대접해 드리고 있다. 

교회를 개척하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지만 하나님만 아시면 된다면서 우리가족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오직 주님만 바라보며 헌신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교회 같은 작은 교회가 어떻게 이주민 사역과 무료급식과 소외된 이웃을 위하여 봉사할 수 있느냐고 하지만 이 모든 일이 내가 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하시는 것이기 때문에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일용직 노동자들에게는 개척초기부터 새벽기도 나오면 아침을, 퇴근하고 들르면 저녁을 해 주었지만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나이 드신 분들에게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전할까 생각한 것이 바로 “은혜의 밥상”이다. 이 “은혜의 밥상” 통해서 교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긍정적으로 바뀌고 2018년 4월17일부터 현재까지 13명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5명이 세례를 받았다. 

우리교인들이 알코올 중독자들이었고 가족과 사회로부터 냉대를 받았지만 이제 자존감이 높아지고 열심히 봉사하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변화 되어가고 있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우며
고난을 이기고 부흥을 꿈꾸며 올 한해 자립의 해로 정하고 열심히 전도를 하고 있는데 코로나19 바이러스라는 위기가 다가왔다. 우리교회는 전염병이 확산되기 직전 사순절을 앞두고 3일간 금식하고 40일간을 한 끼 금식하며 이 나라와 이민족과 교회를 위하여 기도하며 코로나19 바이러스와 싸워나가고 있다.

기저질환이 있거나 아프신 분들은 CTS TV 방송과 유튜브를 통해서 예배를 드리도록 권면하고 건강한 성도들을 1,2,3부 분산해서 모든 예배를 다 드리고 “은혜밥상”도 밥을 굶는 분들을 위해서 계속 실행하고 있다. 교회안과 교회주변을 철저하게 방역을 하고 체온체크, 마스크, 손 소독, 거리두기, 출석체크를 한다. 

사명이 있기에 전도도 쉴 수 없었다. 인근상가와 홀몸가정을 찾아다니며 방역봉사를 하며 전도도하고 인근 작은 교회를 찾아다니며 방역봉사를 한다. 몸이 아파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성도들은 전화로 심방하며 기도해 드리고 이 주민 노동자들은 일이 끝나는 시간을 맞추어 찾아가서 마스크와 손 소독제를 나누어주고 기숙사 방역을 해주고 심방예배를 드리고 있다.

끝으로 이 자리를 통해서 내게 고난당한 것이 오히려 구원의 사역을 하게 되어 하나님께 감사를 올리며, 나의 사랑하는 아내가 적극적으로 동역하기에 고맙고 신대원을 졸업하고 동역하는 나의 딸  묵묵히 영상을 담당하며 물질로 동역하는 나의 아들에게 정말 감사하다. 그리고 우리교회를 위하여 기도해주시고 물질로 동참 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또한 우리교회를 아름답게 소개한 한국성결신문과 CTS 기독교 방송에 진심으로 감사하다.

이제 우리 교회가 더욱 더 건강한 교회로 성장해서 더욱 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고 절망과 실의 빠진 분들에게 소망과 도움을 주며 주님이 다시 오시는 그 날 까지 계속해서 복음을 전하고 나눔과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칭찬받는 건강한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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