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단의 부흥 환희 아픔 성장의 역사 고스란히 담아내


올해 우리 신문은 창간 30주년을 맞이했다. 지난 30년간 보도된 기사 중 가장 중요했던 이슈로 ‘뉴스 30선’을 선정했다. 교단의 30년 역사를 고스란히 간직한 본지는 그간 교단의 역사를 방증하고 있다. 때로는 성찰과 변화가 필요한 부분을 아프게 지적하기도 했지만 성결인들에게 희망과 소망을 주는 발전적인 뉴스가 더 많았다.

1. 1990년 한국성결신문 역사적인 창간

한국성결신문이 ‘세계에 성결의 빛으로 민족에 화해의 소금으로’라는 사시로 1990년 7월 2일 전격 창간했다. ‘한국성결소식’이라는 이름으로 창간호를 발행한 이래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초기엔 평신도들을 중심으로 시작됐지만 현재는 교단의 유일한 언론으로 성장했다. 한국성결신문은 총회와 기관, 지방회, 개교회 뉴스를 신속히 보도하고, 교단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교단 언론의 역할에 충실히 임하고 있다.

2. 서울신대 시험지 유출사건 -사회적 파장 커

1992년 1월 발생한 서울신학대학교 시험지 유출사건은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준 사건이었다. 1월 22일로 예정되어 있던 후기대 입시 전날 밤, 서울신대에서 시험지 도난 사건이 일어났고 이로 인해 입시 전체가 미뤄졌다. 입시문제지가 사전 유출돼 입시일자가 변경되기는 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이로 인해 당시 학장이었던 조종남 박사는 책임을 지고 사임했으며 총회 임원회도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했다.

3. 지역선교 발전 위한 6개 지역총회 창립

1995년 제89년차 총회에서 ‘지역총회’가 창립됐다. 지역총회는 고른 지역선교 발전과 인사적체를 해소하기 위해 결의된 대안책이었다. 제89년차 총회는 헌법을 개정해 지역총회를 신설하고 정기총회는 2년마다 개최하는 것으로 결정했다. 교단 내에서는 ‘지방화 시대’가 열렸다고 자축했다. 지역총회가 신설된 뒤 이듬해 4월 서울지역을 비롯해 경인, 중부, 충청, 호남, 영남 등 모두 6개 지역총회가 창립됐고 목사안수를 주관하는 등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했다.

4. 한미성결교회 통합 조인식 체결

미주성결교회는 1995년 제16회 총회에서 우리교단과의 통합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교단명칭도 한국성결교회의 지역총회 신분을 지칭하는 ‘기독교대한성결교회 미주총회’로 변경했다. 이후 양 교단은 유대관계 증진을 위해 노력했고 미주헌법 개정 등 실제적인 통합을 이루기 위한 작업을 이어 나갔다. 그러나 2004년 지역총회가 폐지됨에 따라 미주총회는 ‘기독교미주성결교회’로 공식명칭을 변경했고, 우리교단에서는 ‘미주선교총회’로 명명했다. .

5. 옛 서울신학교 건물 매입 환원 -현재 아현 성결학사로 운영
1997년 교단이 큰 유산인 우리교단 신학의 산실인 옛 서울신학교(서울신학대학교 전신) 충정로 건물과 대지 전체를 아현교회(조원근 목사)가 65억 원에 매입했다. 해당 건물과 대지는 1974년 서울신학대학이 경기 부천시로 이전하면서 새마음재단(당시 이사장 박근혜)으로 매각됐고 이후 학교법인 명지학원이 다시 매입해 병원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아현교회는 건물을 매입해 2000년부터 현재까지 ‘성결학사’를 운영 중이다.

6. 교단 창립 90주년 기념대회 개최 - 교단 정체성 확고히 하는 ‘선언문’ 채택도
1997년 5월에는 우리교단 창립 90주년 기념대회가 열렸다. 중앙교회에서 약 2500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회는 화해와 일치, 부흥과 성장, 성결한 삶의 회복을 이루자는 취지로 진행됐다. 특히 ‘성결인선언문’과 ‘윤리강령’을 채택하며 △한국교회를 화해케하는 교회일치를 이룰 것 △영적각성과 성결운동으로 진정한 부흥을 선포할 것 △성결성 회복으로 타락한 시대를 구원할 것을 다짐하는 등 90년 역사를 지닌 공교단으로서의 자세를 다졌다.

7. 총회 국내선교위원회 창립 - 작은교회 제도적 지원틀 마련
총회 국내선교위원회가 1997년 12월 11일 창립돼 역사적인 첫 출발을 했다. 교단 내 작은교회를 제도적으로 지원하기 위해 창립된 국선위는 전 총회장 고 이만신 목사가 초대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배포된 자료에 따르면 170개 지원교회가 921개 작은교회와 240개 기관을 지원하는 등 시작부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현재도 국내선교위는 매년 작은교회를 위한 부흥키워드 세미나를 열고 있으며 교회 재활성화 사업에 주력하며 작은교회 돕기에 주력하고 있다.

8. 제2회 영적대각성 구국금식성회 - 잠실에 3만명 모여 뜨겁게 기도
1998년 3월 25일 잠실 올림픽공원에서 성결인 3만명이 운집해 제2회 영적대각성 구국금식성회를 열고 함께 기도했다. 이날 성회는 당시 IMF 사태로 절망에 빠진 국가의 회복과 영적부흥을 위해 뜨겁게 부르짖는 자리였다. 성결인들은 민족의 영적각성과 교단의 시대적 사명 감당을 위해 기도하고 다짐했으며 총회는 교회갱신을 위한 회개운동, 소외된 이웃을 위한 사랑의 봉사, 세계선교와 인류평화 위한 노력 등의 대사회선언문을 발표했다.

9. 서울신학대학교 첫 동문대회 - 동문부부 400여 명 참석
서울신학대학교 총동문회의 첫 동문대회가 전국교역자 부부 초청수련회를 겸해 2000년 5월 30일~6월 1일 강원도 설악한화콘도에서 열렸다. 새 천년을 맞아 서울신대 동문의 화합과 친선을 위해 열린 총동문대회에는 총회장, 서울신대 총장, 현역 목회자, 타교단 동문 등 5개 학과, 5개 대학원, 동문부부 4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특히 미국에서 체류 중인 원로 동문들이 대거 참석해 축제의 분위기를 한껏 띄웠다.

10. 예성과 교류 본격화- 한국성결교회 교류협력위원회 구성
우리교단과 형제교단인 예수교대한성결교회는 2000년 12월 12일 양측 총회장이 만나 현 한국성결교회연합회(한성연)의 전신격인 ‘한국성결교회 교류협력위원회’를 구성키로 전격 합의했다. 당시 양 교단 총회장은 교류협력위 구성에 합의하고 각 교단에서 전 총회장, 교단총무, 선교담당자, 교육담당자, 평신도대표 등을 위원으로 파송키로 했다. 교류협력위는 이후 100주년 기념사업 등에서 협력하며 양 교단 화합과 발전에 기여했다.      

11. 서울신대 성결인의 집 완공 - 전 성결인 기도와 후원 동참
2000년 8월 서울신대 대성전 ‘성결인의집’이 완공되었다. 성결인의 집 공사는 1997년 12월 시작됐으나 IMF 경제위기로 공사중단의 어려움을 겪는 등 우여곡절을 거쳐야 했다. 그러나 성결인의 집 완공을 위해 전 성결인들이 기도와 후원에 동참하는 등 다양한 활동이 전개되어 완공할 수 있었다. 특히 교회 경상비 십일조 운동, 교역자와 교직원 1개월 사례비 반납, 평신도 1인 1만원 헌금 등  교단의 숨겨진 힘을 보여주기도 했다.

12. 여성안수 통과 및 여성 목사·장로 배출 - 교단 내 입지·활동 범위 등 점점 넓어져
2004년 제98년차 총회에서 여성 목사·장로 안수가 통과됐다. 오랫동안 교단 여성 사역자들의 숙원이었던 여성안수는 2/3가 넘는 압도적인 지지로 통과되었으며, 대의원들은 기립박수로 여성안수 통과를 축하했다. 여성안수 통과는 여성안수추진위윈회가 발족한지 10년 만의 쾌거로 여성 목사와 장로 안수가 함께 통과되어 더욱 의미가 컸다. 교단 첫 여성 목사는 이듬해인 2005년 3월 교단 창립 98년 만에 배출되었다.

13. 지역총회 9년만에 폐지 - 지방회 역할 축소 등 이유
지역총회는 2004년 창립된지 9년만에 폐지됐다. 지역총회는 창립 당시에는 균형있는 지역선교 발전과 인사적체 해소의 대안으로 큰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지방회의 역할이 축소된 점, 총회 업무 이관이 거의 불가능한 상황, 지방회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점 등이 문제로 지적됐다. 이 때문에 지역총회는 결의 이듬해인 1996년부터 폐지안이 논의되다가 결국 시행 9년만에 제98년차 총회에서 폐지되고 말았다.

14. 새번역 주기도문·사도신경 사용 결의 - 교계에서 첫 결정·정착에 견인차 역할
2005년 6월 제99차 총회에서 새번역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사용하자는 결의안이 통과되었다. 당시 대의원들은 신학정책연구위원회가 상정한 주기도문·사도신경 개정안은 원문을 훼손치 않고 현대어의 의미를 살린 것으로 평가하며 이견 없이 통과시켰다. 무엇보다 당시 교단에서는 처음으로 새번역 주기도문과 사도신경 도입을 결정했다는 점에서 교계의 주목을 받았다. 현재는 대부분의 교단이 새 번역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사용하고 있다.

15. 교단 창립 100주년 성결인 10만 명 운집
성결교회 창립 100돌을 맞아 이를 자축하는 기념대회가 2007년 5월 27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렸다.

성결교회 창립 100돌을 맞아 이를 자축하는 기념대회가 2007년 5월 27일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렸다.

이날 기념대회에는 전국 각지와 해외 등 총 10만 명이 참석해 지난 100년에 대한 축하와 감사, 100만 영혼 구원과 생명운동에 대한 다짐의 시간으로 진행되었다.

당시 성결인대회는 성결인에게 교단의 자긍심을 심어주는 귀한 경험을 제공하기도 했다. 100주년 기념대회에 앞서 교육, 학술, 선교, 음악회 등 각 분야별 대회도 열렸다.

16. ‘성결원’ 교단 애물단지로 전락 - 아직도 영업정지 중
교단 100주년 기념사업으로 2008년 건립된 천안의 성결원은 교단의 애물단지가 됐다. 초기부터 본래 취지였던 은퇴 교역자를 위한 쉼터 역할을 못하고 노인장기요양기관으로 운영되었는데, 이마저도 잠시였다.

운영 미숙과 가압류 사태, 법적 소송 등에 휘말리며 아직도 영업정지 상태다. 성결원은 운영상의 잘못으로 2014년 주무관청인 천안시로부터 영업정지 6개월 행정처분도 받았다. 성결원 정상화를 위해 애써왔지만, 아직도 정상화는 이루지 못하고 있다.

17. 서울신대 개교 100주년, 글ㄹ 비상

2011년 서울신학대학교가 개교 100주년을 맞았다. 1911년 3월 13일 서울 무교동 전도관 내 성서학원으로 출발한 서울신학대학교는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등 민족의 고난을 함께 딛고 정통 복음주의 신학교육의 요람 역할을 감당해 왔다.

당시 서울신대는 100주년 기념대회에서 ‘지성과 영성, 덕성이 조화된 기독교 명문 신학대학교로의 도약’을 천명했다. 특히 같은 해 시작된 100주년기념관 공사는 2013년 완공되어 서울신대의 상징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18. 송윤기 전 총무, 선거 불복 - 우순태 신임총무 ‘당선무효’ 파장
2011년 제105년차 교단 총회 총무선거에서 송윤기 전 총무가 재임에 실패하자 선거에 불복했다. 우순태 목사에 대한 ‘총무 직무집행정지 가처분’도 제기했다. 사건은 기각됐지만 이 사건을 계기로 교단이 갈등에 빠졌다. 선거관리위원회는 총무 선거 3개월이 지난 후 ‘총무 당선무효’를 결정하고, 헌법연구위는 선관위 결정의 불법성을 지적하는 등 총무선거로 인한 교단 분열이 심화되기 시작했다.

19. 총회본부 재정비리 사건 불거져 - 전권위 구성했지만 사태 해결 못해
우순태 총무는 취임 후 송 총무 재임 시절 일부 총회본부 직원들의 재정비리가 불거졌다. 결국 2012년 제106년차 총회에서 ‘총회본부 특별조사건권위 7인 위원회’가 구성돼 대대적인 조사에 착수했다. 그 결과 전·현직 총무에게 ‘2년 정직’이 똑같이 내려져 이에 반대 여론이 들끓었다. 이 때문에 교단 내 갈등은 골이 더 깊어지고, 사회법 소송도 계속됐다. 재정비리의 대부분은 직원의 비리로 드러나 파직당했지만, 횡령금액 환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20. 제107년차 총회서 분열 딛고 대통합 - 총무선거 시비 끝내
2013년 제107년차 총회에서는 ‘대통합’안이 결의돼 갈등과 분열이 해소됐다. 이로써 우순태 총무 복귀 문제는 법을 넘어선 대통합의 차원에서 일단락됐다. 우순태 총무는 8개월 여 만에 업무에 복귀했다. 전권위에서 징계를 받았던 전 총무와 총회본부 전·현직 직원 등 관련자 5명도 징계에서 풀려났다.

21. 부동산 실명제법 개정안 국회 통과 -교회 과징금 해결
2013년 6월 27일 열린 국회 본회의에서 부동산 실명제법 개정안이 통과됐다. 약 70여개 교회 과징금 부과를 통보 받은 우리교단은 유지재단을 중심으로 대책위원회를 구성해 지방자치단체에 교회의 특수성과 부과의 부당성 설명, 과징금 부과에 대한 행정심판 및 소송 등을 전개해 값진 결실을 거두었다. 특히 법개정안이 통과되어도 소급적용이 되기 어려운데, ‘종교단체’ 특례가 인정돼 개교회에 부과된 과징금 문제가 한순간에 해소될 수 있었다.

22. 작은교회 살리는 2·3·4 부흥운동 - 목회자들에게 용기와 희망 심어줘
2013년 제107년차 총회와 함께 시작된 2·3·4부흥운동은 전도 열매뿐만 아니라 목회자들에게 자신감을 심어주는 통로가 되었다. 무엇보다 큰 교회가 작은교회를 지원하는 교회들도 지원에 보람을 느낄 수 있어 호응이 높았다. 매일 ‘2시간 기도하고 3시간 성경공부하고 4시간 전도하자’는 목회 캠페인을 그대로 실천한 목회자들이 매일 기도하고 말씀 보고 전도하며 잃었던 초심을 되찾고 부흥할 수 있다는 열의를 되찾게 된 점이 가장 큰 결실이었다. 

23. ‘기성선교센터’ 선교 주춧돌 세워 - 선교사훈련원‧선교사안식관 개관
인천 계양구에 2013년 교단 첫 선교사 훈련원 ‘기성선교센터’가 세워졌다. 훈련원을 임대해 운영해 오던 해외선교위원회에서 선교사훈련을 시작한 후 대지와 건물을 매입해 선교사훈련원을 건립한 것은 25년 만의 일이다. 2015년에는 12세대가 동시 입주 가능한 선교사안식관이 4층 건물 2개 동으로 건축되었다. 해외선교를 염원하며 언젠가 꼭 이루고자 했던 가장 절실했던 해외선교 숙원사업이 성결인들의 관심과 후원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24. 문준경 전도사 기념관 개관 - 순교신앙 계승 및 신앙 전수 역할
문준경 전도사 순교기념관이 2013년 5월 21일 개관했다. 전남 신안군 증도에 세워진 순교기념관은 문 전도사의 생애와 삶, 성결교회의 역사 등을 담은 전시실과 예배실, 생활관 등으로 구성되었다. 당시 순교기념관 건립을 위해 교단은 2008년 순교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를 조직하고 교단적 모금운동을 전개하였으며 2010년 기공식을 시작으로 기념관과 생활관 건축, 내부 전시 콘텐츠 구성 등 건립추진위원회 조직 5년 만에 기념관을 개관하게 된 것이다.

25. 재판위원‧헌연위원 전원 소환 - 사상 초유 사태, 교단 역사에 오점
2015년 제109년차 총회에서는 총회 재판위원과 헌법연구위원 전원이 소환되어 해임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재판위원과 헌법연구위원 전원 소환 건은 안별로 투표를 실시했는데 재석 대의원 중 약 70%가 찬성해 소환이 이루어졌다. 재판위원회는 이미 확정 판결한 재판을 상소도 없이 재심해 재판 결과를 뒤집는 등 불법적인 재판으로, 헌법연구위원회는 헌법과 상충된 유권해석으로 교단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는 이유로 소환돼 전원 교체됐다.

26. 총회비 부과기준 새롭게 변경 - ‘경상비’에서 ‘세례교인 수’로
제109년차 총회에서 교단 총회비 부과 근거가 ‘세례교인 수’로 변경됨에 따라 2016년 제110년차 총회부터 ‘세례교인 수’에 근거해 총회비가 부과되기 시작했다. 새 부과기준이 적용되어 병폐였던 세례교인 수 확대보고는 급격히 줄어들었다. 시행 첫해 세례교인 수가 3만5133명 감소해 큰 충격을 주었는데, 이후로도 세례교인 수는 계속 줄어 2018년 통계에서는 세례교인수가 30만 명 이하로 내려갔다.

27. 교단 선교사 1000명 돌파 - 성결복음 해외 곳곳에 전해
우리교단 해외파송 선교사 수가 2018년 1000명을 돌파했다. 교단 파송 선교사는 1978년 교단 해외선교가 시작된 이래 2018년 처음 1000명을 넘어섰고, 누적 파송 집계는 총 73개국에 595가정 1093명이다. 현재는 57개국에 326가정 620명이 파송받아 사역하고 있다. 2017년엔 해외선교 40주년까지 필리핀, 네팔, 러시아, 카메룬, 케냐, 멕시코, 캄보디아, 베트남 등 8개국에 선교지 총회가 설립되었고 선교지 성도들만 해도 25만 명 이상으로 집계하고 있다.

28. 백영모 필리핀 선교사 구속과 석방 - 억울한 누명…20만 명 국민 청원 참여
우리 교단 선교사가 현지 경찰에 체포되어 수감되는 사태가 일어났다. 2018년 지난 5월 30일 교단 제112년차 총회 첫날, ‘불법무기 소지’ 혐의라는 터무니없는 죄목으로 백영모 선교사가 필리핀 경찰에게 체포되어 구금되었다. 이 억울한 사연은 청와대 국민청원에 올라 백 선교사의 석방을 요청하는 국민청원이 20만 명을 넘겼다. 백 선교사는 구금된 지 126일만에 보석으로 풀려났지만 아직도 재판이 진행중이다.

29. 총회 전자행정 시스템 도입 - 행정능률 높이고 비용은 줄여 
2019년 총회본부에 전자행정 시스템이 도입됐다. 제113년차 총회에서 총회본부 전자행정을 위한 제규정을 개정하고 전자행정 시스템을 가동할 수 있는 법적 근거를 마련했다. 그 첫 단계로 총회는 일부 공문발송과 수신을 전자문서로 처리하고 있다. 지방회에서 총회로 보고하는 30여 가지 보고서식 중 교회신설, 교회합동, 교회주소 변경보고 등 7가지 항목을 전자문서로 받고 있다. 총회본부 내부에서도 기안 및 연가 등이 전자결재로 처리하고 있다.

30. 코로나19 펜데믹에 교회 ‘비상’ - 온라인예배 등장 등 변화 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전세계를 강타하면서 교단과 각 교회에도 큰 타격을 주었다. 대부분의 행사가 취소 또는 연기되었고, 예배도 마음껏 드리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전국 대부분의 교회들이 주일예배를 온전히 현장예배로 드리지 못하고, 온라인와 병행하고 있다. 하지만 긍정적인 움직임도 있었다. 코로나로 존폐위기에 몰린 전월세 교회를 비롯한 작은교회를 위해 총회와 지방회, 교회들이 협력해 10억 원 이상의 역대 최대 규모의 긴급자금을 지원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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