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산군의 모진 핍박받고 신앙의 절개 지키다 순교
6.25 당시 순교자 165명…교단 지도자 6인 납북

 

6.25 한국전쟁은 우리나라에 너무도 큰 상처를 남겼지만 한국교회가 순교의 피 위에 세워진 교회라는 영광스러운 역사를 갖게 했다. 우리교단도 전쟁 중 수많은 순교자가 나왔다. 순교자들의 죽음은 안타깝고 비극적인 일이지만 이들의 순교의 피는 성결교회가 순교영성으로 우뚝 서는 계기가 되었으며 교단의 화합과 부흥을 이루어내는 밑거름이 되었다. 

배교 거부, 공산군에 죽임 당해
6.25 전쟁 당시 교단의 순교자는 납북자를 포함하여 총 165명으로 파악된다. 그러나 이는 공식적인 숫자라는 점일뿐, 미처 파악되지 못하고 순교한 사람들이 다수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 공산군에 의해 죽임을 당한 순교자 대부분이 공산군의 회유와 협박 가운데 신앙을 지키고 배교를 거부하다가 순교했다.

문준경 전도사를 비롯해 조한수 목사, 오덕삼 목사, 서두성 목사, 임광호 전도사, 배춘근 전도사, 김봉하 전도사, 문봉교 장로, 김연호 장로, 한피득 집사, 이인석 집사, 신학생 이춘원 등이 공산군에 의해 체포된 후 배교 거부로 순교했다.

또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많은 이들이 희생당했다. 김영범 목사, 이정순 목사, 전기찬 목사, 강축수 목사, 김인석 목사, 송계순 목사 등도 공산군에게 피살되었다.

공산군에게 피납된 후 죽임을 당한 이들도 있다. 이기백 장로, 임수열 전도사, 김재은 전도사, 김성희 성도 등이 피납 후 행방불명되거나 살해된 것으로 파악된다.

북으로 끌려간 교회 지도자들
6.25 한국전쟁 당시 강제로 북으로 끌려간 많은 이들이 아직 남한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이들 중 성결교회 지도자 6인도 포함되어 있다.

이건 목사(서울신학교 교장), 박현명 목사(성결교 총회장), 김유연 목사(서울신학교 교수), 최석모 목사(아현교회), 박형규 목사(신학교 재단총무), 유세근 목사(독립문교회) 등이 그들이다.

납북된 성결교회 지도자들은 전쟁 발발 후 피난을 떠났다면 비극을 피할 수도 있었다. 북한군에 의한 서울 함락 전일인 1950년 6월 27일 서울 종로2가 한국기독교연합회 사무실에서 교단 대표들이 긴급히 모였다.

장로교 대표 한경직 목사, 감리교 대표 이유선 감독, 성결교 대표 김유연 목사 등 수십 명이 모여 순교의 각오로 피난을 가지 못한 신자를 지키고 교회를 사수하자는 결의를 했다.

이 결의를 이행하기 위해 피난 갈 기회가 있음에도 서울에 남아 교회와 신학교를 지키고 있던 박형규 목사, 유세근 목사 등은 공산군에 빼앗긴 신학교 환원운동을 벌이다가 학교 구내 주택과 자택에서 북한군에 의해 강제 연행되어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납북된 이들의 소식은 전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중 1962년 3월 당시 중앙정보부 산하 북한문제를 다루는 내외문제연구소가 제공한 납북증언을 동아일보에서 ‘죽음의 세월’이라는 제목으로 연재했다.

이 증언은 광복 후 북한 정부 인사로서 6.25남침 시 기획 납북 담당 요원이었던 조철 씨의 증언을 정리한 것이다.

이 증언에 따르면 성결교회 지도자들은 북한에서 질병과 영양실조, 강제노역 등으로 대부분 생을 마감한 것으로 추정된다.

납북 지도자들은 1950년 11월 강계에 도착 했다. 이건, 박현명, 김유연 목사 등 성결교회 지도자를 포함한 60여 명은 농가에 분산 수용되었고 이곳에서 질병과 영양실조로 다수의 병사자가 발생했다.

또 1951년 5월 납북자들이 안주로 이송되었는데 이건, 박현명, 김유연 목사 등 20여명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제1진으로 출발해 1주일 후 대동군 문성리에 도착했으나 제2진으로 올 인사들 다수가 강제노역소로 보내졌다. 그해 7월 문성리 수용소에서 송찬근 목사가 병사했다.

그 후 수용소 철조망 안으로 그 동네의 노파가 이건, 김유연 목사에게 음식을 넣어주면서 전달하려했던 평양 지하교회 김인준, 박상철 목사의 쪽지가 발각되어 이건, 김유연 목사가 주모자급 죄명을 쓰고 정치보위부에 체포된 후 처형당한 것으로 추측된다.     

북으로 끌려간 성결교회 지도자들은 안타깝게도 순교 당했지만 그들의 후손들은 목사, 장로, 권사 등 순교신앙의 증인으로 복음을 위해 살아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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