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학원 학생시절 섬마을에 세운 교회들

경성성서학원 청강생이 된 것만으로 문준경은 감지덕지했다. 그 당시 경성성서학원 학제는 6년으로 매년 3개월 동안 공부하고 9개월 동안은 어디든지 가서 전도하고 교회를 설립해야 했다. 그는 학기 중에는 청강생으로 뒷자리에 앉아서 공부하면서 정규학생이 아니기 때문에 장학금지원을 받지 못해 배고픈 설움도 많이 겪었다.

어느덧 3개월이 지나고 9개월의 실습기간이 돌아왔다. 그녀는 첫 실습을 신안군 임지면 진리에 와서 전도하여 진리교회를 세웠다. 그녀는 첫 사역지를 놓고 기도하는 가운데 증도에서 가까운 임자를 택하게 되었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임자도에 발을 내딛었다.

문준경은 임자도에 당도한 후 노방전도를 시작하였으며 쉬는 동안 동네 언덕에 올라 찬송가를 불렀고 이 찬송을 듣는 아이들과 동네아낙, 할머니 등이 모여 그의 노래를 들으며 즐거워했다. 그런 다음 이어진 즉흥설교를 순수한 마을 사람들은 받아들였고 이러한 노방전도의 결실로 정규예배로 발전하여 진리교회가 세워지게 된 것이다.

그녀는 9개월이 지나자 다시 등교하여 원장에게 정식장학생으로 받아달라고 간청했지만 또 거절을 당했다. 어느 날 교정을 거닐다가 뜻밖에 이성봉 전도사를 만나게 되었다. 너무나 반갑고 기쁜 마음에 한걸음에 달려가 인사를 하고 청강생으로 공부하고 있는 사정을 말했다.

이성봉 전도사는 곧장 원장실로 찾아가서 자신이 문전도사의 추천서를 써주게 된 경위를 설명하고 문 집사를 정식학생으로 받아 줄 것을 간청했다. 그리하여 문준경은 정식학생이 되어 기숙사에 들어가 공부할 수 있게 되었다.

기숙사 밥을 먹게 되니 건강도 좋아져 매 실습기간마다 열심히 전도하여 신안 섬마을에 교회를 세워나갔다. 그녀는 성격이 명랑 활달했다. 늘 웃는 낯으로 사람들을 대했으며 유머가 풍부하고 화술에 능했다. 이야기를 어찌나 재미있고 구수하게 잘하는지 듣는 사람마다 매료되어 감동을 받아 변화되어갔다.

특히 노래를 잘 불렀다. 찬송뿐만 아니라 가요나 민요도 구성지게 잘 불렀다고 한다. 지금으로 치자면 복음성가가수 뺨칠 정도로 상당한 실력을 가졌던 같다. TV도 없고 라디오도 없던 시절에 고운 목소리로 불러대는 노랫가락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에 더없이 좋은 전도의 도구였다. 그는 특히 이명직 목사가 지은 ‘희망사’라는 찬송을 잘 불렀다.

“세상만사 살피니 참 헛되고나 부귀공명장수는 바람잡이이요, 고대광실 높은 집 문전옥답도 우리 한번 죽으면 일장의 춘몽/ 홍안소년 미인들아 자랑치 말고 영웅호걸열사들아 뽐내지 마라. 유수 같은 세월은 널 재촉하고 저적막한 공동묘지 널 기다린다 … ”

이렇게 이어지는 찬송은 무려 16절까지인데 문준경 전도사는 이걸 잘 불렀다. 문 전도사가 나룻배를 타고 섬마을에 나타나 동산이나 마을복판에서 찬송을 구성지게 부르면 마을아이들과 아낙네, 남정네 할 것 없이 모여들었다. 찬송을 부른 후 전도설교를 하여 모인 무리들이 예수 믿도록 감동시켰다.

문 전도사가 이렇게 노방전도를 시작하여 교회를 개척하고 있었다. 그녀가 실습기간에 세운 두 번째 교회가 증동리교회이고 세 번째가 대초리교회, 네 번째가 재원리교회, 다섯 번째 세운 교회가 우전리교회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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