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수필가 한 분의 글과 삶을 매우 좋아했다. 그 분을 만난 것은 구독하는 ‘월간샘터’라는 잡지에서였다. 그 분은 고 장영희 교수로 그 당시 ‘새벽 창가에서’라는 제목으로 칼럼을 연재했다. 잡지 프로필에 나온 그분의 사진을 보면 검은 단발머리에 소녀처럼 웃고 있었다.

그 분에 대한 좋은 감정이 생긴 이유가 몇 가지 있다.

첫째는, 일상생활에서 누구나 만나고 느끼고 경험하는 사람과 자연과 계절, 삶의 행복과 일과 쉼을 생명력있게 표현하여 유쾌하게 글을 써서 나에게도 글쓰기와 책 읽기의 즐거움을 주었기 때문이다.

둘째는, 그녀의 모습이 고등학교 시절 누나처럼 잘 돌봐 주셨던 영어 선생님의 이미지와 닮아 얄개시절을 추억하게 하기 때문이었다.

셋째는,  1급 지체 장애자로 목발을 사용하거나 휠체어를 타고 다니며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고, 또한 그 불편한 몸으로 SUNY Albony(뉴욕주립대)에서 학위과정을 마친 당찬 여성이었기 때문이었다.

2003년 12월 ‘아름다운 빛’이라는 칼럼을 마지막으로 4년간 기고했던 장 교수의 ‘새벽 창가에서’는 문을 닫는다는 기사가 올라왔다.

그 후 2004년 9월경에 ‘장영희 교수가 척추암으로 입원하게 되었다’라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아마도 운동을 할 수 없는 신체 때문에 면역력이 약해지고 연약한 척추에 암세포가 자리를 잡았고 순간순간 다가오는 통증과 고통 때문에 글을 쓰는 작업이 어려워진 것으로 추측을 하게 되었다.

그녀는 그 후 불편한 몸으로 2006년 5월까지 스물 네 번의 항암치료를 받으며 길고 긴 투병생활을 시작한다. 통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아픔 때문에 돌아눕지도 못한 채 침대에 누워 있어야 했다. 항암치료를 받기 위해서는 백혈구 수치가 조절이 되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아 애를 태웠다.

온 몸에 걸친 링거줄을 떼고 샤워 한 번 해보는 것이 소원이었다. 방사선 치료 때문에 식도가 타서 물 한 모금 먹지 못 하기도 했다. 바깥세상을 창밖으로 바라보며 도보를 걷는 사람들, 파란 하늘아래 자유롭게 나는 새들의 자유로움과 캠퍼스 안에 젊음의 생명력을 부러워했다. 그 무엇보다도 아침에 일어나 밥 먹고 늦어서 허둥대며 학교에 가서 가르치는 일상이 미치도록 그리웠다고 했다.

그녀는 인터뷰를 할 때 질문자가 “신체장애와 암 투병을 극복하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가?”라고 질문을 할 때마다 참으로 난감해하며 “그냥 본능의 힘이에요”라고 대답했다.

그 본능의 힘은 의지와 노력으로 가질 수 있는 힘이 아니라 ‘내 안에서 절로 생기는 힘’ 그것은 자신이 받은 멋진 축복이라고 생각했다.

그녀는 병상에 있을 때 TV에서 방영하는 보쌈집 소개 방송을 보게 되었는데 중년 손님 한 분이 목젖이 다 보이도록 입을 한껏 벌리고 양 볼이 불룩불룩 움직이게 씹어서 꿀꺽 삼키는 모습을 보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바깥세상으로 나가리라. 그리고 저 치열하고 아름다운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리라’라고 다짐했다고 한다.

그 후 그녀는 3년이 지난 2006년 병석에서 일어나 캠퍼스로 돌아왔고 다시 글을 기고하며 독자들을 만났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008년 간암이 재발되어 강의를 중단하게 되었고 이듬 해 2009년 5월 9일 57세를 일기로 주님의 품에 안긴다.

이후 그 분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고 더 이상 그녀의 글을 읽을 수 없다는 상실감속에서도 어느새 책 읽기는 나의 일상이 되어 버렸다.

“당신이 지금 힘겹게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바로 내일을 살아갈 기적이 됩니다”라는 그 분 생전의 삶의 외침은 그녀를 기억하는 많은 이들에게 삶은 아름다운 것이고 살아 있다는 것은 축복받은 일이며 생명을 주신 분께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한다.

어느 덧 그 분이 세상에 계셨던 기간보다 더 오래 살아가고 있는 중년의 독자인 나는 젊은 날의 고뇌와 아픔을 통하여 책을 가까이 하게 되었으니 이것이야 말로 내게는 살아온 기적과 살아갈 기적이 아닐까?

바닷가에 매어 둔 작은 고깃배
날마다 출렁인다.
풍랑에 뒤집힐 때도 있다.
화사한 날을 기다리고 있다.
.......
살아온 기적이 살아갈 기적이 된다.
사노라면
많은 기쁨이 있다.
(김종삼 시인, 어부)

그분이 이 땅을 떠난 지 벌써 10년, 강산이 몇 번씩 변했지만, 네이버 인물편에는 까만 단발머리를 한 장영희 교수가 여전히 누나처럼 웃고 있었다. 그리고 그 분이 남긴 에세이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내 서재의 책꽂이의 책들 속에서 어제도 오늘도 나를 향해 환하게 웃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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