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학은 테오크러시(theo cracy)를 신정(神政)정치라고 번역하고 비기독교인들이나 일반 학문에서는 종교정치라고 번역한다. 테오크러시의 원형은 구약성서에서만 찾을 수 있음에도 중세의 교황청은 그 막강한 정치권력의 행사를 신정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하였다. 주후 1075년 교황 그레고리 7세는 영적인 권한이 세속적인 권한보다 상위에 있다는 원칙을 발표하여 군왕 위에 교황이 있음을 선언하였다.

▨… 교황은 면죄부만 판 것이 아니다. 각 나라의 교역을 통제하였고 십자군 전쟁도 주도하였다. “돈이 돈궤 안에 땡그랑 하고 떨어지자마자 영혼이 연옥에서부터 날아 나온다고 말하는 자들은 단지 인간적 교리들을 설교하는 것이다(95개 조항 중 27조)”라고 1517년 10월 31일에 95개 조문을 비텐베르크 교회당 문에 붙였던 루터가 보다 일찍 태어났더라면 종교개혁은 훨씬 일찍 그 모습을 드러냈을 것이다.

▨… 뒤마의 ‘삼총사’의 리슐리외 추기경의 역할에서 보듯 중세의 신부들에게는 모든 일이 ‘거룩한 일’이었다. 왕정을 감독하고 세금 거두는 일을 관리하고 십자군의 대장이 되기도 했다. 가히 무소불위의 능력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 세속적인 일이 하나님의 일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 저들은 신도들에게 한층 더 경건을 강요했고 자신들에게 대한 충성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임을 강조했었다.

▨… 중세의 테오크러시가 그리워서일까 아니면 목사님들의 능력이 출중하기 때문일까. 그도 저도 아니면 목사님들의 명예에 대한 갈증 탓일까. 한국교회의 연합기관 가운데 영리의 목적이 배제될 수 없는 사업체의 책임자도 목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저들의 호칭도 한국교회 초기에는 총무(General Secretary)였었는데 어느 사이에 모두 사장으로 바뀌어 있다.

▨… 맹자는 양심(養心)이라는 말을 썼었다. 마음을 기른다는 뜻이지만 의역하면 인간다운 인간의 마음쯤이 되지 않을까. 양심은 욕심을 줄이면 줄일수록 그 마음이 저절로 맑아져서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거듭난 사람’을 맹자의 언어로 풀어보면 ‘양심’의 사람이 아닐 런지. 목사님들이 명예에 대한, 세속에 대한 욕심을 줄이면 줄일수록 경건해지는 것 아닐까. 목사의 사는 경영하는 이들의 직위에 쓰이는 사와는 엄연히 구별되어야 할 거룩함을 드러내는 ‘사’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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