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인 신한청년당, 임시정부 산파 역할”
박명수·홍선표 교수 ‘3.1운동과 기독교’ 조망

서울신학대학교 현대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박명수 교수)가 지난 3월 27일 우석기념관 강당에서 ‘3.1운동과 기독교’라는 주제로 제23회 영익기념강좌를 개최했다.

이날 박명수 교수는 ‘신한청년당의 형성 과정과 기독교의 역할’이란 주제 발표에서 “1919년 3.1운동에 지대한 역할을 감당했던 신한청년단은 기독교 정신의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려고 했으며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에도 영향을 끼쳤다”고 주장했다.

먼저 박 교수는 ‘신한청년당의 형성 과정’을 살피며 “일본 유학 중 YMCA에 출석한 장덕수와 여운형은 1918년부터 김철, 선우혁, 한진교, 조동우 등과 신한청년당을 기획했는데, 당시 이들은 모두 기독교인이었다”며 “구성원 모두가 20대와 30대 기독교 청년이었고, 민족자결주의 등 새로운 국제 질서 속에서 탄생한 점에서 신한청년단은 이전의 단체들과 구별된다”고 했다.

또 그는 “당시 윌슨 대통령에게 보낸 ‘신한청년당 독립청원서’는 신한청년당의 성격과 창립 당시의 이념을 잘 보여준다고 생각한다”며 “청원서는 1차 세계대전을 영적 전쟁으로 이해하고 하나님의 세력의 승리에 대한 감사로 시작하며 신한청년당은 한국에 기독교적 민주주의 국가를 세우고자 했다”고 부연했다.

이어 그는 “신한청년단의 이와 같은 생각은 1919년 4월 11일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수립되는데 반영되었다”며 “당시 임시헌장에는 ‘대한민국은 신의 의에 의해서 이루어진 나라이며 민주공화국이며 신앙의 자유와 소유의 자유까지 인정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으며  이 정신은 오늘의 대한민국에도 계승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두 번째 강좌에서는 홍선표 교수(전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사연구소 책임연구위원)가 3.1운동 당시 이를 알린 미국의 언론 보도를 살폈다.

홍 교수에 따르면 미국에서 보도된 3.1운동 관련 기사는 그해 3월과 4월, 5월에 집중 보도되었으며 12월까지 한국의 독립운동에 대한 관심이 이어졌다. 1919년 3월부터 1920년 9월까지의 보도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일본을 옹호하는 기사는 50여 건에 그친데 반해 한국을 동정하고 지지한 기사는 9,000여 건에 달했다.

홍 교수는 미국의 언론들이 한국의 독립문제에 관심을 갖고 보도하게 된 이유로 한국에 머물고 있던 선교사들의 역할을 들었다. 그는 “재한 선교사들은 정치와 종교를 분리해 선교에 임하라는 지침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인도, 박애라는 기독교정신에 입각해 냉정하고 솔직하게 한국인의 입장을 대변했다”며 “선교사들이 본국에 보낸 보고서와 편지는 3.1운동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증거물이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미국 기독교와 언론에서 한국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미국의 언론보도는 의회까지 영향을 끼쳤는데 상하원의원들이 모여 한국독립을 지지하고 한국독립동정안을 만들어 투표까지 진행시키는 결과를 맺게 되었다”고 덧붙였다.

한편 영익기념강좌는 연구소의 설립 기금을 마련한 고 김영익 집사(장충단교회)를 기리기 위해 지난 1997년부터 매년 봄에 개최되고 있으며, 한국교회 및 복음주의운동의 최근 이슈들을 집중적으로 다루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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