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화콘텐츠학의 석좌교수 조용헌이 안동 시내의 치암고택을 찾았다. 이 집 대청마루 벽에 칠언문구가 하나 쓰여 있었다. 입조당계희사(入朝當戒喜事) 지심귀재불기(持心貴在不欺)라는 글귀였다. 집주인에게 이 문구의 유래를 물었더니 퇴계 선생이 젊은 율곡에게 당부한 내용이라 하였다. 2박 3일을 머물고 떠나는 율곡이 퇴계에게 가르침을 청했을 때 대학자는 이 문구를 주셨다는 것이다(조용헌, ‘퇴계가 율곡에게 준 당부’)

▨… 조용헌은 이 칠언문구에서 조정에 들어가서는 희사를 경계하라는 앞부분에 주목하여 우리 시대의 시대적 상황을 빗대었다. 그러나 목사의 자리에서 보면 “마음 닦는 공부를 할 때에는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게 귀한 일이다”라는 뒷부분의 지심귀재불기가 더 아프게 가슴을 찌름을 누가 부인할 수 있을까. 퇴계는 목사들에게 꼭 필요한 내면 수양을 짐작조차 할 수 없었을 것인데 우리 목사들이 부끄러워할 한마디를 남겨 주었다. 그래서 그가 대석학인 것일까.

▨… 지금의 고난을, 고난의 의미를 명상하는 사순절이라는 사실을 모든 목사들은 명심하고 있을 것이다. 명심하는 그 일에서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 게 귀한 일이다”라고 누군가가 들이댄다면, 가슴이 아프지 않을 목사가, 부끄러워하지 않을 목사가 우리 교단에는 몇 명이나 있을까. 사순절에는 주님의 고난을 체현하자고 구호로는 외쳐대면서도 스스로를 속이는 우리 교회들의 행태를 우리 주님은 어떻게 받아들이실까.

▨… “엎드려 원하오니 전하께서는 반드시 수신(修身)으로 사람 쓰는 근본을 삼으셔서 백성을 새롭게 하는 임금으로 극(왕도)을 세우소서. 극이 극되지 못하면 나라가 나라될 수 없을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노니 밝게 살피소서. 신(臣) 식은 황공하옴을 이기지 못하와 죽기를 무릅쓰고 올리나이다.”(조식, ‘단성현감사직소,’ 한글역, 김규성) 평생 벼슬길에 나가지 않았던 조식은 왕(명종)이 단성현감을 제수하자 죽기를 무릅쓰고 날 선 검같은 상소를 올렸다. 나라를 나라되게 하기 위해서….

▨… 한국교회를 향해 조식의 상소같은 외침으로 신앙을 깨우려는 사람은 과연 없을까. 교회의 자본주의화에 안주하고 기복신앙에 자족하는 한국교회는 그래도 우리는 섬기는 자라고 자신을 스스로 속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사순절에는 한 번 자문해보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손이나 얼굴이 아니라 발을 씻어주셨음을 잊어버리는 교회도 있을 수 있는지도 자문해보자. 교회를 교회되게 하기 위해 단성현감사직소 같은 결단을 구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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