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정오, 서울 탑골공원에서 학생들이 모여 독립선언문을 낭독했다. 그리고 우렁차게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같은 날 오후 2시에는 명월관에 모인 33인 대표들이 역시 독립선언문을 낭독했으며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다. 이어서 수많은 군중들이 만세를 외치며 거리를 행진했다. 이것이 바로 36년 일본폭력통치기간에 터져 나온 크나큰 저항운동의 출발이었다. 아니, 5천년 모국역사의 최대민중저항운동이었다. 우리는 이제 그 100주년을 맞는다.

그렇다면 이 삼일만세운동의 기본사상은 무엇일까. 최남선이 초안했고 기독교, 천도교, 불교의 대표들이 서명해서 전국 방방곡곡에 뿌려졌던 독립선언문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글쓴이는 경기도 화성 발안장터 만세사건, 제암리교회 학살사건 등의 현장 가까이서 태어나 자랐다.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했던 남양감리교회는 33인 가운데 세 번째로 이름이 기록된 이필주 목사가 목회하였고 그 기념비가 교회 뜰 앞에 있었다. 그리고 나중에 고등학교 교사로서 기미독립선언문을 외워서 가르쳤던 교육경험도 있다. 그 뒤 목회와 신학교육에 헌신하면서 이 선언문에 기독교 사상이 상당부분 그 기초가 되고 있는 것도 발견했다.

독립선언문은 국가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기초사상으로 하고 있다. 조선이 단연 독립국이며 조선민족이 ‘자주민’임을 딱 잘라 첫 머리에서 선언했다. 일본에게 독립을 구걸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이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고 다스려 온 자주적 단일민족국가라고 의연하게 만천하에 공포했다. 그렇다. 우리는 스스로를 통치할 실력이 있는 민족이다.

독립선언문은 ‘평화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침략주의와 폭력주의를 ‘옛 시대의 쓰레기’라고 일갈했다. 1차 대전 도발국들과 특히 일본을 향해 던지는 평화폭탄이었다. 만세운동은 한반도와 일본은 물론, 중국, 아시아, 그리고 온 지구에 평화마을을 건설하려는 결단이라고 강조했다.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적개심을 버리고 단연 ‘평화시위’를 하겠다는 비폭력 평화주의도 밝혔다.

독립선언문은 도덕주의, 인권주의, 평등주의를 강력하게 주창하고 있다. 독립만세운동은 우리들의 조국건설에 목적이 있지 결코 일본 파괴에 목표가 있는 것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폭력의 시대가 이미 지나갔고 도의의 시대가 오고 있다며 일본을 깨우쳤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는 평등인권주의가 바로 도덕 곧 큰마음 큰 관용(tolerance)임을 강조했다. 조선인들을 제도적으로 차별하는 일본인들에게 맏형다운 충고였다.

독립선언문은 장래지향주의에 방점을 찍었다. ‘아아, 신천지가 안전에 전개되도다.’ 라는 구절이 이를 웅변한다. 이것은 성경의 ‘새 하늘과 새 땅’(계 21:1)의 인용이다. 일본강점시대에는 교회에서도 종말론의 책인 요한계시록이 많이 읽혀졌고 설교로 선포되었다. 신앙입국(信仰立國) 곧 믿음으로 나라를 세워나가자는 신념이 불타올랐던 때였고, 그래서 교회와 기독교학교들이 적극 나섰다. ‘흔쾌한 부활을 이룩하게 되도다.’ 같은 성경용어를 써서 장래지향적 희망의 깃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 개인도 국가도 과거고착적이거나 현재집착적이면 안 된다. 반드시 장래지향적이어야 한다. 

기미독립선언문은 그해 2월 8일 동경 조선기독청년회관에서 개최된 ‘동경유학생 독립선언문’(춘원 이광수 초안)과 같으면서도 다르다. 같은 점은 당연히 ‘조선의 독립국임과 조선인의 자주민임’의 선언이다. 그러나 다른 점은 동경선언문은 일본의 과오를 비판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일본의 한국에 대한 사기와 폭력”에 대하여 경고와 저주를 퍼붓는 수준이다. 그러나 삼일독립선언문은 그것보다는 훨씬 더 장래지향적이다. 일본이 더 좋은 이웃이 되었으면 하는 기도가 담겨 있다. 

기미독립선언문은 실로 한국역사에서 가장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교육철학, 역사철학, 정치철학, 국민윤리가 담겨 있는 문서로 평가해서 지나침이 없다. 종교단체대표들이 한 자리에 앉아 합의된 선언문 만들기가 쉽지 않은데 대승적 결단을 한 것 자체가 한국역사에 처음 있는 일 아닌가. 특히 독립선언서 정신이 한국과 일본, 북한과 일본, 서울과 평양의 고질적 증오심을 녹여내는 만통열쇠(master key)가 되고, 더 나아가 지구함생체(global community) 건설의 머릿돌이 되면 더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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