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라는 신분의 굴레에 파묻혀 있다 보면, ‘나’란 정체성이 심각하게 훼손된 모습을 보게된다. 그때 문득 ‘이것은 아닌데’라는 자괴감이 밀려온다. 하계수련회는 자신을 돌아보는 훈련의 장이다.

‘나’란 누구인가? 무엇을 위해 그토록 달려가고 있는가? 질문을 다시 점검해 보았다.

첫째, 목사란 들꽃의 인생이다. 목사의 인생이란 무엇인가? 30년 전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깊이 한 적이 있다. 그때 목사란 들꽃의 인생이라고 신학적 정의를 내리고 지금까지 이런 마음으로 살아왔다. 들꽃은 환경에 좌우하지 않고, 떨어진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라,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특징이 있다.

이것이 들꽃의 삶이다. 나는 들꽃의 삶을 살아내는 목사가 되겠다고 늘 다짐하며 살고 있다. 그래서 나의 목회지는 하나님이 친히 구역으로 재어준 소중한 곳이라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둘째, 1명의 성도를 위해서 교회를 지킨다. ‘목회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늘 해왔다. 교회 개척 때부터, 다른 교회로 가기 위한 징검다리로서 개척교회를 한다거나, 큰 대형교회를 이루겠다는 거룩한 욕심은 없었다. 한명이라도 우리 교회에 앉아서 예배를 드린다면 그 한 사람을 위해 나의 전부를 드리겠다는 결단으로 시작했다.

목회란 그 한 사람이 일어나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도록 돕는 사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사명의 길이란 항상 화려한 대장군처럼 말을 치장하고 명예롭게 으스대며 타고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처럼 볼품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걸어가는 것이다. 그러면 최소한 병들지 않는 목회가 되리라 본다.

셋째, 성도를 이용하지 않는다. 청소년 시기에, 혹시 내가 목회자가 된다면 비성경적인 방식으로 성도들의 재산이나 헌신을 이용하는 어리석은 목사가 되지 않겠다고 늘 다짐하고 살아왔다. 성경적으로 정당한 것이 아니면 성도들에게 요구하지 않는다.

18년 동안 목회를 하면서 나의 유익과 이익, 목적을 위해서 누군가로부터 예수라는 이름으로, 선교라는 명목으로 들먹거리며 요구한 적이 없다. 주님이 주시면 소중히 간직하고, 주님이 열어주시면 열심히 사명장으로 가고, 주님이 서라하면 그 자리에 묵묵히 서서 인내의 시간을 기쁘게 보냈다. 주님께 늘 다짐한다. 하나님이 내 주변에 허락하신 소중한 분들은 나의 섬김의 대상이지 나의 이익과 성공을 채우는 도구가 아니라는 것이다.

주님의 일을 할때는 사람들과 계산하지 않는다. 늘 하나님과 계산하고 산다. 사람을 의지하면 결국에는 초라해지는 것이 세상의 룰이기 때문이다. 세상의 룰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룰을 따른다. 이 방법은 아주 간단하다. 대가를 지불하는 것을 좋아하면 된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공짜로 얻으려고 하면 늘 초라해지는 것이다. 

넷째, 충성스런 일꾼이 되겠다는 결단과 의지의 삶이다. 나의 마음속에 한결같이 떠나지 않는 단어가 있다면 충성스러운 일꾼이다. 이것이 나의 인생을 이끌어왔던 동력이며 나를 나 되게 한 에너지였다. 나를 부르시고 훈련시키시는 주님께서 허락하신 성도들을 섬기는 것이 나의 귀한 사명이기 때문이다.

일꾼은 충성해야 한다. 목사는 일꾼이다. 일꾼은 일꾼의 모습으로 섬김의 삶을 지향해야 한다. 으스대고 폼 잡고 지시하는 것에 익숙하면 어느 순간 껍데기만 화려한 바리새인이 될 확률이 매우 높다.

주님께서 다양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많은 기회를 주셨다. 사역의 기초는 네 가지 가치에 기반을 두고 있다. 모든 목회자들은 누구나 목회적 기준점을 가지고 있다. 소중한 가치를 다시 뒤돌아보고 점검하면 주님 나라를 세워가는 일에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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