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잠겼다고?

기도를 안하는 것도 아닌데 우리의 삶 속에서 장애물이 사라지고 해결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마치 깊은 늪과 같은 상황으로 치닫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인간적인 계산으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상황에 처하게 되면 사람들은 어쩔 줄을 몰라합니다.

이것이 바로 요단강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처했던 상황이었습니다. 약속의 땅을 지척에 두고 있는 가운데 그들이 처한 상황이 그리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왜냐하면 요단강이 잔뜩 불어나 있는 상황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너희가 요단 물 가에 이르거든 요단에 들어서라(히.베 야르댄 타아모드)”(수 3:8)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들었을 때 이스라엘 백성은 기가 막혔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이 말씀을 직역하면 “요단강 안에 너희 모두 계속해서 서 있으라”는 말로써 이 말씀은 그들을 적잖이 당황케 하였을 것입니다.

성경은 그 때가 “곡식을 거두는 시기여서 물이 언덕에 넘쳤다”고 하고 있습니다. 즉 그들이 요단강을 걸어서 건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더욱이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요단강 안에서 서 있으라”는 명령은 그들에게 “죽으라”는 이야기로 들렸을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하나님이 그들에게 해결방법으로서 하신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스스로 성결케 하라”(수 3:5)는 말씀이었습니다. 이는 해결책이 될 수 있을 법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 상황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듣고 싶었던 말씀은 요단강을 건널 수 있는 “배를 제작하라”든가 아니면 “요단강물이 줄어들 때까지 기다리라”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삶 속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에게 “물이 범람함에도 불구하고 요단강 안에 서 있으라”고 명령하시듯이 이성으로는 도저히 납득이 되지 않는 상황으로 내모실 때가 있습니다. 믿어질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다면 오직 믿음입니다. 이 경우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요단이 곡식 거두는 시기에는 항상 언덕에 넘치더라 궤를 멘 자들이 요단에 이르며 궤를 멘 제사장들의 발이 물 가(히. 크제)에 잠기자(히. 타발)”(수 3:15)  여기에서 ‘물가에 잠기자’라는 말은 ‘가장자리’ 혹은 ‘끝’이라는 말입니다.

당연히 제사장들의 발이 아직은 물가에 있었기 때문에 ‘잠겼다’는 표현은 그리 적절해 보이지 않습니다. 더욱이 ‘잠기다’라고 번역한 ‘타발’이라는 히브리어는 ‘푹 담궜다’라는 말이 아닙니다. 이 말은 일반적으로 포도주나 기름 같은 것을 가지고 상처난 부위에 바를 때 사용하는 말입니다.

따라서 제사장의 발이 물 끝에 약간 묻혀졌다는 표현이 훨씬 자연스럽습니다. 즉 강둑까지 가득 찬 요단강의 넘실거리는 흐름에 비할 때 제사장의 순종은 아직 완전하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저 강둑에서 발을 적시는 정도의 작은 순종의 움직임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비록 시작이지면 그들이 이러한 믿음의 태도를 보이자마자 요단강이 갈라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비록 완전하지는 않으나 그래도 순종하기로 결심하자마자 이러한 믿음은 하나님을 감동시키게 되었고 이어서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성경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믿음 뿐입니다. 오직 믿음 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앙은 암기가 아닙니다. 신앙은 하나님을 절대적으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삶으로 입증이 되어야 합니다. 세상 방법과 논리로 이해가 되지 않을지라도 오직 믿음만을 선포하며 말씀에 순종하며 나아가는 믿음의 일군들이 모두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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