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복 장로
필자는 성결교회에서 60여 년 간 죽 신앙생활을 해 온 순수 성결맨이다. 한창 신앙에 불이 붙던 청년시절, 그때는 여느 교단을 불문하고 많은 교회들이 심령대부흥회를 열었다. 대중교통도 별로 없던 때라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녔다. 추운 겨울, 새벽 교회 종소리를 들으면서 눈 덮인 길을 걸어도 몸이 후끈후끈한 것은 빠른 걸음 때문만이 아니었다. 늘 가슴에는 뜨거운 그 무엇이 있었다.

당시 부흥사들은 불을 뿜는 설교를 했다.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 말씀을 전하니라’.(사도행전 4:31) 필자가 출석하던 교회는 아주 작은 교회였지만 성결교단의 태두 부흥사인 이성봉 목사를 모시고 부흥회를 연 적도 있었다.

이름은 잊었지만 키 큰 시각장애인 목사의 힘 있는 설교가 기억난다. 그는 물을 마실 때도 성부·성자·성령을 외면서 한 모금씩 3번 나누어 마시라고 가르쳤다. 신앙과 생활을 엮는 부흥사의 실천적 설교를 들으면서 한 동안 세 모금 물 기도를 꾸준히 했었다.

지금의 대광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해 온지는 55년이 넘는다. 늘 감사한 것은 성결교회 신자로서 반세기 넘게 한 교회에서 지내 온 점이다.

대구에는 기독교의 간판을 달고 있는 교회가 1,600여 개나 된다. 그 가운데 성결교회는 50개가 채 되지 않는다. 그런데 대구극동방송 전속 남성합창단을 이끌어 오면서 교단 구별 없이 교회순회 찬양 또는 대구기독교총연합회 행사에 참석하는 일이 가끔 있다. 그 때마다 자격지심이 슬며시 고개를 쳐든다.

초교파적으로 활동하던 중 직접 듣지는 못했지만 어느 장로교회 목사가 성결교회를 이단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의 무지를 탓하기 전에 우리에게도 반성할 무엇이 있지 않을까. 기독교계가 종합적으로 하는 행사에서 성결교회가 늘 뒤로 밀리는 경우를 여러 번 봐 왔다. 성결교회의 정착이 어렵다고 하는 대구지역의 특수성에 한계가 있음을 자위하면서도 기분이 영 석연치 않다.

최근 대구기독교계에서 성결교회의 이름이 크게 드러난 일이 있었다. 지난해 12월 3일 대구 동광교회 김기환 목사가 대구기독교총연합회 제25회 대표회장으로 취임한 것이다. 김 목사가 담임하는 교회는 작은 교회다. 장로가 한 분 뿐이다. 그 교회가 운영하는 작은 찻집은 쉼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규모는 작지만 대형교회들이 유행처럼 운영하고 있는 카페와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길가 찻집이라서 누구든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고 가격도 저렴하다. 선교차원에서 자원봉사 하는 바리스타 젊은이들이 만들어 주는 커피는 친절과 정성이 곁들어 짙은 정감의 냄새를 풍긴다. 찻집은 김 목사의 아이디어였을 것이다.

필자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장로교회들이 대구 교계를 움직이고 있는 여건 속에서 아주 작은 교회에 시무하는 성결교회 목사가 1,600여 개 교회에 영향을 미치는 대구기독교총연합회 회장으로 취임한 것이 대견하고 반가워서다. 김 목사가 회장이 된 것은 오로지 일에 대한 적극성과 부지런함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는 수년 간 여러 임원을 거치면서 대구 기독교 연합활동에서 성결교회를 각인시켰다.

대기총 회장으로 취임하던 날, 대구 교계와 지역 인사들이 참석하였고 CTS를 비롯한 기독교 언론의 취재도 뜨거웠다. 겨울 날씨에도 작은 교회당 안은 열기가 있었다. 아주 작게만 보이는 대구 성결교단에서 대구기독교총연합회 대표회장이 나온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대기총 회장으로서 김 목사의 활동은 성결교회를 모르고 있는 대구시민들에게 교회를 피알하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

성결교회 장로로서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기독교가 독립적으로 운영되는 자유경쟁체제라는 장점도 있지만 단점이 더 많다. 교회가 개인주의화 하는 것을 주님께서도 원치 않을 것이다.’

성결교회의 이름을 걸고 회장이 된 김기환 목사를 위해 같은 교단에 몸을 담고 있는 교회지도자들의 기도와 관심이 있었으면 한다. 성결교회를 널리 알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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