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지역 선교 활동

초기 동양선교회의 경상남부지역의 선교활동은 경남지역에 선교사를 상주(常主)시키고 그들을 중심으로 한 지방전도대의 천막전도로 이뤄졌다.

부산지역에 기독교가 진출한 것은 1876년 조선이 일본과 병자수호조약을 체결하여 부산이 개항되면서 부터다. 일본을 비롯한 열강들이 속속 부산 일대에 진출하고 기독교 선교도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일본에 있던 스코틀랜드성서공회 총무 톰슨(Thomson)이 1882년 중국에 있던 로스(J. Ross)로부터 2천 여 권의 복음서와 전도 문서를 받아 일본인 나가사카(長坂)를 파견하여 판매하도록 했다. 이어 1884년 톰슨 자신이 일본인 두 사람과 함께 부산에 건너와 부산에 성서보급소를 설립하고 3년 남짓 복음을 전파했다.

1891년부터 1913년까지 21명의 미 북장로회 선교사들이 부산지방에서 선교활동을 펼쳤다. 그 뒤에 호주 선교사들이 부산 선교에서 큰 비중을 차지했는데 1909년 두 선교회가 협의하여 1914년 이후로는 부산과 경남지역은 호주장로교회가, 경상북도는 미 북장로교회가 각각 선교활동을 전담하기에 이르렀다.

성결교회의 경남지역 선교는 부산경남지역에 복음이 전해지고 어느 정도 확산된 연후 시작되었다.
1917년 동양선교회는 일본에서 대거부락전도운동을 마무리 하였다. 대거부락전도운동은 수년을 걸친 대대적인 전도운동이었으며 동양선교회는 이 운동을 일본에서 마무리한 후 한국으로 그 무대를 옮겼다.

일본에서 대거부락전도는 아직 사중복음이 들어가지 않았을 때에 전 일본 사람에게 그 복음을 전파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사중복음이 이미 여러 곳에 전파되었기에 사중복음이 전혀 전파되지 않았던 일본의 상황과는 다소 달랐다. 한국에서는 이미 성결의 복음이 여러곳에 전파되었지만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었다.

동양선교회는 한국에서는 각 도마다 선교사와 지역사역자들을 상주시켜서 복음전도관을 세우고자 하였다. 특히 일본에서의 목표보다 좀 더 구체적인 목표를 세우고 처음 지방전도를 시작한 지역이 경남지역이었다. 왜냐하면 경상남도가 한국에서 복음이 가장 잘 들어가지 않은 지역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동양선교회는 경상도 지역의 선교를 위해 두 명의 선교사 클락과 웃스, 그리고 10명 가까운 한국인 사역자들로 지방전도대를 구성했다. 물론 이전에도 헤슬렙의 전도대가 있었지만 이들은 일본의 대거 부락 전도대의 패턴을 이어받은 것은 아니었다. 클라크와 웃스 장막전도대는 경상도 요지 요지로 이동하며 사중복음을 전했다.

우선 이 전도는 부산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부산은 한국인과 일본인이 각각 4만 명씩 살고 있는 거의 일본인 도시였다. 동양선교회는 우선 일본인을 위해 대형천막을 치고 집회를 열었고 강사는 동양선교회 창설자의 한 사람인 일본인 나까다 주지 목사였다. 여기에 경성에서 토마스 선교사와 여섯 명의 성서학원생들이 와서 도왔으며 이 집회에는 일본인과 한국인을 떠나 많은 사람들이 집회에 참석하였고 결신자가 나왔다.

1918년 6월 10일에 끝난 부산집회의 결과로 100명 이상의 구도자가 나왔으며 동양선교회는 이들을 보살필 책임자로 박제원 전도사를 파송했다. 이 모임이 발전하여 부산교회가 설립되었는데 오늘의 수정동교회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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