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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일내’는 ‘조일래’목사
교단 총회장 당선 되자 마자 교단의 갈등 해소하고 화합 이끌어
한교연 대표회장 당선 돼
한국교회 ‘턴업 운동’ 벌여
한기총과 통합 위한 물꼬 터
통장도 없는 청렴한 목사
[1095호] 2017년 06월 28일 (수) 15:39:44 황승영 기자 windvoic@hanmail.net
   

조일래 목사는 교단 안팎에서 ‘일내(래)는 목사’로 통한다. 그의 신앙과 삶 자체가 일을 내고 마는 여정이었다. 

1947년 7월 28일 경남 거제시 동부면 산양리의 완고한 가정의 종손으로 태어난 그는 집안의 극심한 반대에 불구하고 기어이 일을 내고 만다. 예수를 믿고 목사가 된 것이다. 인연을 끊겠다는 부모의 애끊는 마음을 뒤로하고 서울에 올라온 그는 집사의 직분으로 교회를 개척하며 또 일을 냈다.

특별한 부름을 경험한 조 목사는 처음부터 신앙심이 유별났다. 대학 1년 때 예수를 만나마자 교회에서 새벽기도회를 인도했고, 군대 훈련 중에도 주일예배를 인도했다. 하나님이 부르신 목적이 분명했고, 믿음도 깊었기에 그는 하나님의 거룩한 일을 내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2·3·4운동으로 작은교회 희망 심어
교단 총회장과 한국교회연합 대표회장 등으로 활동하면서도 교단과 한국교회를 위해서도 많은 일을 냈다.

교단이 갈등의 골이 가장 깊어졌을 때 총회장에 당선된 조 목사는 대통합 안을 가결시켜 교단을 화합과 안정으로 이끌었다. 또 2·3·4 부흥운동을 통해 작은교회에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주었다. 2·3·4운동은 목회자가 하루 2시간 기도, 3시간 성경연구, 4시간 전도를 통해 목회에 충실하면 자립교회에서 지원하는 운동이었다. 9개월간 2·3·4부흥운동을 전개한 결과 작은 교회의 교인 수가 63%나 증가했다. 작은교회의 부흥이 어렵다고 말하지만 기본에 충실하면 부흥할 수 있는 희망을 심어준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위기의 교단 구하는 ‘해결사’
조 목사는 교단에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등장해 해결사 역할을 도맡았다. 부동산실명제법 위반으로 교단의 많은 교회가 과징금을 물게 되었을 때에도 총회장으로서 유지재단 이사들과 함께 국회의원들을 만나 설득하고 노력했다. 그 결과 국회에서 부동산실명제법이 개정되었고, 과징금 문제도 해결되었다.

2001년 교역자공제회가 자금 부족으로 연금지급 불능 상태에 이르게 됐을 때도 교역자 연금을 구하는 구원투수로 특수임무를 수행했다. 위기에 처한 연금 전면 개편에 나서 온갖 난제를 극복하고 복지성과 수익성, 보험성을 가진 새 운영규정을 만들었고, 마침내 공제회가 정상궤도에 진입하게 만들었다. 지금도 당시에 정한 호봉제에 따라 공제회가 운영되고 있다. 조 목사는 이후 공제회에 대한 불신의 소리가 높아지고 특별감사를 받는 등 어려움에 봉착했을 때도 교역자 공제회 이사장에 긴급 투입됐다. 당시 그는 공인회계사 감사제도 도입, 현금 유동성 확보와 운영방안의 개선 등으로 공제회에 대한 불신의 벽을 깨고, 신뢰를 회복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밖에도 해외선교위원회 임원으로 20년 넘게 일하면서 선교지 감사 등 온갖 문제를 해결하는데 앞장섰다. 해외선교위원장으로 재직할 때는 해외선교 발전에 공헌했다.
 
한국교회 턴업 운동 전개
조 목사는 교단 뿐만 아니라 한국교회를 갱신하는 일에도 뛰어들었다. 2015년 한국교회 최대 연합기관인 한국교회연합 제5대 대표회장에 피선된 것이다. 교단에서는 정진경 이만신 이용규 목사에 이은 네 번째 연합기관장 배출이었다. 조 목사는 한국교회 갱신을 위해 턴업(Turn-Up)운동을 벌였다. 끝없이 추락하고 있는 것에 턴(Turn)해 한국교회의 위상과 영향력을 업(UP) 시키자는 운동은 많은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특히 한국교회의 최대 난제라고 할 수 있는 한교연과 한기총의 통합 논의에 물꼬를 트는 등 일치와 연합에도 앞장섰다.

청렴하고 온화한 목자
하나님 일에는 절대 타협이나 양보가 없는 조 목사도 성도들 앞에서는 한없이 낮아진다. 심방 가서 냉수 한 그릇도 얻어먹기 어려운 개척교회 시절에 그의 가정은 사례비를 못 받아 굶기가 일쑤였다. 하지만 시장 통 노점상을 하는 성도의 가게에 매일 심방을 가서 어묵 몇 개를 먹고서는 돈을 놓고 조용하게 사라졌다. 어려운 성도를 보면 남몰래 돕고, 고통 중에 있는 성도들과 함께 눈물을 흘리며 주님을 사랑을 실천한 것이다.

지금까지도 성도들에게 한 번도 함부로 말하거나 반말을 한 적이 없다. 어린 교역자에게조차  말을 놓지 않고 항상 존대말을 사용한다. “목회자는 양떼를 끝없는 인내와 사랑으로 양떼를 사랑해야 합니다. 잘 가르칠 뿐만 아니라 믿음과 삶에도 본이 되어야지요.”

대학과 대학원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그는 항상 수와 계산에 밝았지만 자기 자신을 위해 계산을 하거나 이익을 따지지 않았다. 항상 교회가 우선이었다. 교회 재정이 어려우면 자신의 사례비를 줄여서 위기를 넘겼고, 누구보다 먼저 작정 헌금을 하고, 언제나 아낌없이 헌금을 드렸다. 공무로 교회를 비우는 일이 있어도 휴식이나 운동 등 개인적인 일은 반드시 퇴근 이후나 쉬는 날 하는 것을 철칙으로 삼았다.

조 목사는 또 늘 자신을 검증하고 도덕성과 청렴성을 생활의 지표로 삼아왔다. 지금도 개인 통장이 없다. 사례비 통장도 교회 사무원이 관리하고 있다. 모아둔 돈도 없지만 자식에 돈은 물려주지 않을 것이라고 성도들 앞에서도 공언하기도 했다.

“나는 자식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공부는 시켰습니다. 그러나 돈은 물려주지 않을 것입니다. 그 대신 나는 하늘나라에 저축합니다. 땅에 저축한 건 한 푼도 없지만 하늘 나라에 저축하는 마음으로 삽니다.”

조 목사가 주 안에서 맘껏 주의 일에 힘쓰며 일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이은자 사모가 늘 곁에서 그를 그림자 같이 내조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개척교회 시절부터 가정 살림을 책임지면서도 남편 내조와 심방, 전도 등으로 조 목사의 목회를 도왔다. 이 사모는 2007년 교단 100주년 창립 행사에서 전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 사모는 몇 년 후 수정교회가 총회에서 전도상을 받는데도 일등공신 역할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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