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역사연구소, 3.1운동과 종교계 심포지엄

3.1절을 맞아 3.1운동 정신과 종교계의 역할을 재조명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소장 이덕주 교수)는 지난 2월 23일 서울 종로구 태화빌딩 대강당에서 ‘3.1만세운동과 종교계’를 주제로 학술 심포지엄을 개최했다.

이날 기독교, 불교, 천도교 등 각 종교계가 모인 자리에서 기독교 대표로 나선 이덕주 교수(감리교신학대학교)는 일제 강점 초기 기독교계 활동과 3.1 운동을 위한 종교간 연대 과정을 조명했다.

이 교수에 따르면 선교사들이 한국에 도착했던 1880년~1890년대는 자주독립에 대한 열망이 커졌던 시기였다. 자연스럽게 선교사들은 조선인들에게 ‘자유와 해방과 평등’의 기독교를 소개했고 초기 기독교인들은 기독교의 정신으로 일제의 침략과 지배에 저항하는 민족운동을 실시했다.

그는 “민족주의 의식을 지닌 기독교 지도자들이 포진된 교회 및 기독교학교가 일제 세력에 저항하는 민족운동의 새로운 거점으로 두각되기 시작했다”며 “기독교의 수용과 함께 민족운동을 경험한 한국 기독교인들의 민족의식이 형성되고 심화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초기 기독교인들은 동학농민운동과 청일전쟁, 갑오개혁, 을미사변, 독립협회 등 다양한 저항운동으로 조선인들에게 민족의식을 심어줬다.

이 교수는 “개화파 정치인들의 ‘옥중 개종’과 황성기독교청년회(YMCA)와 연동교회 국민교육회 등 기독교회가 펼친 다양한 민족운동은 한국사회에서 새로운 거점이 됐다”며 “기독교인들이 항일 민족저항운동을 표출하도록 돕는 발판이 된 것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기독교인들의 저항운동은 이후 민족계몽운동으로 범위를 넓혀갔다. 민족 운동가들과 안창호가 조직한 ‘신민회’는 일반 대중을 대상으로 계몽운동을 시작했으며 자연스럽게 교회를 중심으로 한 야학과 계몽운동이 일어나게 된다.

이런 기독교인의 저항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 것이 3.1운동이었다. 이만열 교수(숙명여대 명예)는 “3.1운동은 일제의 강점을 거부하고 자주독립을 찾으려는 거족적인 독립운동”이라며 “무엇보다 기독교를 비롯한 종교 지도자들로부터 시작된 민족사적으로 가장 위대한 운동 중 하나”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또한 이 교수는 3.1운동의 민족사적 의미에 대해 “3.1운동 이전에는 국왕과 양반이 주인이 되는 일종의 전근대적인 봉건사회로의 회귀가 목적이었다면, 3.1운동은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를 열망한 운동이었다”고 덧붙였다.

이어 그는 “3.1운동의 정신이었던 ‘백성이 주인이 되는 나라’라는 이념은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건국이념으로 존재하고 따라야 하는 시대 정신”이라며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시국에서 종교계가 옛날 신앙선배들이 외쳤던 ‘백성 중심의 나라’, ‘평등한 사회’ 등을 기억하고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밖에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조규태 교수(한성대), 김광식 교수(동국대)가 각각 3.1운동 당시 천도교, 불교의 역할을 재조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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