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120명이라고 하는가? (행 2:1~4)

오순절 성령은 누구에게 임했나? 이 질문에 대하여 한국에서는 120문도라는 대답이 정설처럼 되어 있다. 그러나 본문에서 오순절에 모인 사람들이 그냥 ‘모두’라고 되어 있어서 누구에게 성령이 임했는지 말하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이 질문에 대하여 여러 가지 학설이 제시되었다. 숫자가 적은 학설로부터 소개하자면, 오순절 성령을 받은 사람은 첫째로 사도보궐선거로 충원된 맛디아를 포함한 12사도이다. 둘째로 행 1:13~14에 열거된 11사도(물론 맛디아도 포함되어 12사도가 됨)와 그들과 함께 마가의 다락방에서 마음을 같이 하여 기도에 힘쓴 여자들과 예수의 모친과 아우들이다. 셋째로 행 1:15에 언급된 120여 명의 문도들이다. 이 학설은 12사도가 포함되어 있다는 설과 포함되지 않는다는 설로 나누인다. 넷째로 부활하신 예수님이 일시에 보이신 500여 성도들(참조. 고전 15:6)이다.

이러한 네 가지 학설들 가운데에서 정답은 오순절 날 한 곳에 모인 ‘모두’(판테스)가 누구인지를 규명해야 얻을 수 있다. 누가문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전체에서 보면, ‘모두’는 보궐선거로 선택된 맛디아를 포함한 열 두 사도들이 된다.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이유들 때문이다.

첫째로, 성령강림 보도(행 2:1~13)는 열 두 사도를 언급하는 구절로 감싸여 있다. 이 보도 바로 앞에, 즉 맛디아의 사도 선출 기사의 맨 끝에 “열 한 사도의 수에 가입하니라”(행 1:26)란 구절이 나오고, 이 기사 바로 직후에, 즉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시작을 설명할 때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같이 서서”(행 2:14)란 구절이 등장한다. 이렇게 성령강림기사는 열 두 사도에 관한 어구로 감싸여 있어서 그 안에 있는 “모두”는 분명히 열두 사도를 지시한다. 그것을 뛰어 넘어서 행 1:15의 120여 문도나 행 1:13~14에 묘사된 사람들을 지시하지 않는다.

둘째로, 좀 더 원거리에 나오는 ‘모두’도 다 사도들을 시사한다. 예를 들면 성령강림 기사 제법 앞에 있는 행 1:14의 ‘모두’(개역개정성경에는 13절 끝부분에 ‘다’로 되어 있음)도 사도들의 동아리를 지시한다. 성령강림 기사 뒤에 나오는 오순절 설교 중에 있는 행 2장32절의 우리 ‘모두’(역시 개역개정성경에는 우리가 ‘다’로 되어 있음)는 열 두 사도로서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의 증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셋째로, 저자 누가는 선지자 엘리야와 그의 후계자 엘리사 동기를 그의 두 권의 책을 집필할 때 예수와 그의 제자인 사도들의 이야기에 모형으로 삼는다. 특히 엘리야가 승천한 후에 엘리사에게 성령이 임한다는 주제는 ‘예수가 승천한 후에 사도들에게 성령이 임한다’는 주제의 전형이 된다.

넷째로, 저자 누가는 또한 모세와 70인 장로의 동기를 그의 두 권의 책을 집필할 때 예수와 사도들 이야기의 모형으로 삼는다. 특히 모세에게 임한 성령이 이스라엘을 함께 다스릴 70인 장로들에게 임한다(민11:16~17.24~29)는 주제는 예수에게 임한 성령이 새로운 이스라엘 열 두 지파를 다스릴 열 두 사도들(비교. 눅 22:28~30)에게 임한다는 주제의 전형이 된다.

다섯째로,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행적에 관한 책이다. 이 책에서는 사도들과 성도들의 구분이 뚜렷하다. 열 두 사도들은 예수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열 두 지파로 구성된 새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들이다(참조. 눅 22:28~30). 그들에게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고 성령에 충만한 베드로가 열 한 사도와 더불어 서서 행한 설교로 결국 약 3000명의 유대인이 회심해 세례를 받게 된다(비교. 행 2:41).

이들은 최초로 형성된 새 이스라엘 백성에 해당한다. 새 이스라엘 열 두 지파의 대표자인 열 두 사도들이 오순절에 성령으로 무장하고 설교를 통하여 자기들이 다스릴 새 이스라엘 백성을 모은다고 해석하는 것이 아주 그럴듯하다. 그러므로 첫 성령강림절에 120 문도가 아니라 사도들이 어떻게 되고 무엇을 하는가가 가장 중요한 관심사가 된다. 120 문도는 사도의 보궐선거에 단 한번 나와서 사도들의 들러리 역할을 한 셈이다.

120 문도라고 하는 학설은 6절의 소리(헬라어 ‘포네’)가 사람이 내는 소리를 말하고, 그 소리를 듣고 많은 사람이 몰려오려면 120명이 내는 것이 더 낫기 때문에 그렇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것은 저자의 집필 용법과 헬라어 문법에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주장이다.

‘포네’는 인간의 소리만이 아니라 자연에서 나는 소리로도 사용된다. 혹시 ‘포네’가 복수라면, 모인 사람들 모두가 내는 다른 언어들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단수이기 때문에 분명히 하늘로부터 난 강력한 바람 같은 소리(헬라어 ‘에쿄스’)를 지시한다. 동일한 단어를 반복하는 대신에 동의이어를 애용하는 저자가 6절에서 ‘에쿄스’를 반복하지 않고 동의이어적인 ‘포네’를 사용한 것이다.

이상으로 오순절 날 성령에 충만한 사람들은 12사도들이다. 천하 각국에서 와서 예루살렘에 거하던 경건한 유대인들은 성령을 받은 모두가 다른 언어로 말하는 소리가 아니라 하늘로부터 난 강력한 바람 같은 소리를 듣고 몰려왔다. 그들은 와서 12사도들이 내는 다른 언어들을 듣고 그 내용을 알고 놀라거나, 혹은 그 내용을 몰라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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