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는 교향곡이다

손동식 목사
20세기 가장 위대한 강해 설교자로 평가받는 마틴 로이드 존스(M. Lloyd-Jones)는 설교를 교향곡(Symphony)에 비유하곤 하였다. 각 악장마다 특정한 형식을 띈 교향곡처럼 설교 역시 서론으로부터 결론에 이르는 동안 차별적인 형식과 흐름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교향곡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하이든은 자신의 교향곡을 느린 서주의 1악장, 느리고 서정적인 2악장, 3박자의 미뉴에트로 된 3악장, 빠르고 경쾌한 4악장으로 진행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각각의 형식이 조화를 이루어 하나의 주제를 형성하도록 하였다. 그와같이 좋은 설교는 단조로운 모노톤이 아니라 그 시작으로 끝에 이르기까지 변화와 흐름을 통하여 조화를 이룬다.

윌리암 윌킨슨(W. Wilkinson)은 설교의 왕자, 스펄전의 목소리를 음악적 요소로 이렇게 잘 비유했다. “스펄전의 목소리! 그것은 플루트 같으며, 은종 같으며, 트럼펫 같으며, 오르간 같다. 아, 이 얼마나 위대한 입술의 악기인가!”

불과 몇 소절밖에 듣지 않았는 데 귀를 닫게 되거나 아무런 감동이 없는 그런 노래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대체로 그런 노래는 계속 들어볼 필요도, 흥미도 생기지 않는 단조로운 형식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그와같은 설교도 존재한다. 설교의 시작부터 끝까지 아무런 변화가 없는 단조롭고 지루한 설교가 그와같다.

이런 설교는 고여 있는 물처럼 설교의 진행 속에서 그 어떤 움직임(move)나 변화를 감지할 수 없다. 이런 설교는 설교 자체가 전혀 짜임새가 없어 무슨 이야기를 하고 싶은지 감을 잡을 수 없다. 이런 설교는 결국 회중을 ‘하늘나라’가 아니라 ‘꿈과 수면의 나라’로 초대한다. 따라서 현명한 설교자라면 설교의 작성 단계와 전달과정에서 형식과 흐름을 고려해야 한다.

설교가가 뛰어난 교향곡의 작곡가처럼 본문을 중심으로 설교의 악보 위에 강약과 고저, 속도와 변화를 그리고, 연주해 낼 수 있다면 그러한 설교는 소위 빨려 들어가는 설교가 될 것이다. 그러한 설교는 1분, 5분, 10분 흘러갈 때마다 흐름이 있고 감동이 있어 그 다음, 그 다음이 궁금해지는 더 듣고 싶은 설교가 된다.
이러한 설교의 구성을 위해서는 크게 두 가지를 염두에 두는 것이 유익하다.

첫째, 설교의 흐름을 방해하거나 속도감을 저해하는 군더더기를 제거해야 한다. 대체로 설교 준비를 하다보면 넣고 싶은 내용들이 너무나 많다. 본문 단어 하나하나가 담고 있는 풍부한 의미도 설교문에 담고 싶고, 설교를 준비하며 발견하게 된 많은 예화들도 모두 다 담고 싶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설교자에게 필요한 것은 ‘절제’의 미덕이다. 설교자는 전체의 구성과 흐름을 고려하여 무엇을 넣고 무엇을 뺄 것인가를 신중하게 분별해야 한다.

둘째, 설교의 구성이나 강조점이 지나치게 설교자 개인의 주관적인 취향에 흐르지 않도록 객관성을 유지해야 한다. 성악가나 오페라 배우 본연의 임무는 무대에서 본인이 혼자 감동받는 것이 아니라 청중이 감동받도록 하는 것이다. 그와같이 설교자의 임무는 본인이 강단에서 ‘혼자’ 은혜받아 감동에 겨워 하는 것이 아니라 참여한 회중이 은혜의 바다로 나아가도록 돕는 것이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 설교는 회중과 그 어떤 교감도 없이 자신만의 ‘오버쇼’로 허무하게 끝나고 말 것이다. 따라서 설교는 기획과 전달 과정에서 회중의 은혜와 감동을 중심으로 객관적이고 신중하게 기획되어야 한다.

설교의 능력이란 결국 작곡과 지휘 능력이다. 잘 기획된 설교의 악보위에 혼을 담은 설교자의 지휘가 어우러질 때, 그 연주는 성령의 바람을 타고 회중의 가슴 깊은 곳에 하늘의 감동과 은혜를 안겨줄 것이다.

저작권자 © 한국성결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