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대에 바알은? (삿 6:25~26)

권혁승 교수
사사로 부름을 받은 기드온의 아버지 집에 어떻게 바알제단이 있을 수 있는가? (삿 6:25~26)

기드온의 시대는 여호수아 이후 왕정이 세워지기까지 영적으로나 사회적으로 매우 혼란스러운 때였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가 만연된 시대였다. 당시 이스라엘을 영적으로 더욱 혼란에 빠뜨린 것은 가나안의 바알신앙이었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가 집안에 바알제단을 세웠다는 점은 하나님의 사사로 부름 받은 기드온마저도 바알신앙에 빠진 집안 출신임을 보여준다. 그런 상황 속에서 기드온이 사사로 부름을 받은 것이다.

기드온이 살았던 그 시대의 상황을 정확하게 이해하려면, 이스라엘을 영적 혼란에 빠뜨렸던 바알신앙이 무엇인지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바알’은 가나안 지역에서 가장 널리 숭배되었던 토속신이다. 히브리어로 ‘주인’ ‘소유자’ ‘남편’ 등을 의미하는 바알은 공식적인 신 명칭이라기보다는 특정 신에 대한 별칭이었다. 그렇지만 백성들 사이에서는 널리 인기를 얻으면서 공식적인 신 명칭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

우가릿 문서에 의하면 바알은 천둥과 바람과 비를 주관하는 풍요의 신이다. 큰 강을 중심으로 형성된 이집트나 메소포타미아와는 달리 가나안 땅은 하늘에서 내리는 비만을 의존하며 살아가는 곳이었다.(신 11:11) 그런 가나안 지역에서 비를 주관하는 신인 바알은 큰 영향력을 미칠 수 밖에 없었다.

바알이 여호와신앙을 견고하게 지켜온 이스라엘에게 쉽게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바알신앙이 지닌 유연성 때문이었다.

바알은 어느 신에게나 부담 없이 별칭으로 사용될 수 있었고 이스라엘의 여호와도 예외가 아니었다.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자신들의 ‘주인’이며 ‘남편’으로 이해한 것이 그에 대한 좋은 예이다.(사 54:5; 렘 3:14; 호 2:16) 이스라엘은 전통적인 여호와신앙을 지키면서도 점차적으로 바알신앙에 영향을 받으면서 영적 혼란으로 빠져 들어간 것이다.

그런 점은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후 얼마 되지 않아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어 섬긴 것에서도 발견된다. 그것은 모세의 부재로 인하여 생긴 당시의 영적 공백을 해결하려는 아론의 노력이었다. 그때 아론은 금송아지를 가리켜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출 32:4)라고 하였다. 이것은 또 다른 형태의 바알신앙화라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이 바알신앙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또 다른 이유는 바알이 강조하는 세속적 풍요 때문이었다. 광야 40년 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입국한 이스라엘은 그곳에서 번영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야 했었다. 그들에게 닥친 현실적인 문제는 광야와 전혀 다른 농경 중심적 삶을 요구하는 가나안 땅의 환경이었다.

가나안 입국 초기 여호수아의 영적 지도력 아래 이스라엘은 나름대로 여호와만을 섬기는 전통적 신앙을 견고하게 지킬 수 있었다. 그러나 여호수아 이후 지도자의 부재로 인해 영적 공백이 생기면서 이스라엘은 점차적으로 주변 가나안 사람들의 영향을 받기 시작했다.

여호와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가나안에 들어가 그곳의 주민들을 쫓아낼 것과 그들과는 언약도 맺지 말 것을 분명하게 명령하셨다.(출 23:31~33) 그러나 이스라엘은 가나안 주민들을 완전히 몰아내는 일에 실패하였고, 그 결과 그들로부터 잘못된 신앙적 영향을 받게 된 것이다.

광야에서 보낸 유목민 삶에서 가나안의 농경사회로 전환하는 과제를 안고 있었던 당시 상황은 이스라엘에게 더욱 바알신앙을 부추겼다. 그런 점은 자연스럽게 광야의 여호와신앙과 농경사회의 바알신앙을 결합시키는 혼합주의적 신앙형태를 만들어 내었다. 강력한 영적 지도자의 부재로 인하여 모두가 각자의 소견대로 살아가는 개인주의의 팽배는 이스라엘이 바알신앙에 쉽게 노출되는 허점이 되었다.

바알신앙이 팽배했던 영적 쇠퇴기 속에서 기드온이 하나님의 사사로 부름을 받게 된 것은 그가 나름대로 바른 여호와신앙의 맥을 이어갔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점은 기드온이 사사로 부름을 받는 과정에 잘 드러나 있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라고 말하는 여호와의 사자에게 기드온은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나이까?”라고 반문했다. 그러면서 그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우리를 넘겨주셨다”라고 자신의 불평을 털어 놓았다.(삿 6:13)

그러자 여호와의 사자는 여호와께서 기드온을 보내어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실 것임을 밝혀주었다.(삿 6:14) 이에 기드온은 태도를 바꾸어 하나님의 부름을 수용하면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서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작은 자이다”(삿 6:15)라고 자신의 부족을 고백하고 실망감 속에 감추어져 있던 여호와신앙을 되찾을 수 있었다. 이후 기드온은 아버지의 집에 바알제단을 헐어버리고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새로 쌓는 신앙개혁을 시작하였다.(삿 6: 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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