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까지 잘 오셨습니다”

설교학을 학문적으로 공부할 때와 지난 5년간 현장 목회자로 살 때와 설교에 대한 생각들이 다소 달라졌습니다. 그 본질에는 변함없지만 어떤 이론들은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필터링 되고 어떤 원리들은 목회현장에서 피와 살로 변하여 살아있는 실체가 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설교는 모든 목회자에게 한없는 기쁨이면서 언제나 부담인 것 같습니다. 사람과 교회를 살리는 설교 자체가 가지는 영광을 생각할 때 그것은 황홀한 기쁨을 주지만, 그러한 기대치를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부족한 우리 자신을 바라볼 때는 언제나 부담입니다. 가끔씩 은퇴하신 노목사님을 뵐라치면 그 길을 어찌 다 걸어오셨는지 더욱 고개가 숙여집니다.

어떤 개그맨은 가장 힘들었던 시간이 아버지의 장례를 치른 날 ‘웃기기 위해’ 저녁행사에 가야 하는 날이었다고 하더군요. 어쩌면 목사의 일도 그와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설교자의 일은 어찌보면 더 어려운 처지에서 더 아픈 사연을 담고 사는 교인들에게 환한 웃음으로 소망의 편지와 기쁨의 선물을 전하는 집배원의 일입니다. 그러나 때때로 비가 오고 눈이 오는 날이면 그것이 힘겹게 느껴지기 마련입니다.

오래전 설교와 예배에 대한 부담감으로 주일 아침이면 ‘설사’를 하곤 한다는 한 선배 목사님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매 주 새로운 신선한 양식을 교인들에게 내어놓아야 한다는 부담감, 그러기에는 분주한 목회의 현실 속에서 항상 약간의 아쉬움을 가지고 올라가야 하는 설교 원고들, 그리고 한 조각의 생명의 떡을 기다리는 교인들을 위한 책임감, 대중 앞에 서는 것들에 대한 본능적인 두려움, 그리고 잘 해내어야 한다는 부담감….

어떤 주일 아침은 한 걸음에 단숨에 강단으로 올라가기도 하지만 또 어떤 날은 복잡한 마음들로 강단에 올라가기가 버거운 주일도 있으며, 또 어떤 날은 심한 감기몸살로 몸을 가눌 수 조차 없지만 ‘죽으면 죽으리다’라는 심정으로 그렇게 강단에 올라가는 날도 더러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넘치게 부어주시는 성령님의 은혜 가운데 강단을 내려올 때면 또 한 번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감사의 기도를 올릴 것입니다.

매주 들려지는 모든 설교들이 교인들이 듣기에는 큰 차이가 없는 듯 하지만, 매주 한 편 한 편 설교자의 설교 속에는 설교자만이 아는 이야기(story)가 담겨 있습니다. 한 편의 설교에는 성경은 물론이요, 연약한 목회자와 그를 향한 하나님의 은혜의 이야기가 담겨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한 편의 설교란 한 편의 드라마요, 네 악장의 교향곡이기도 합니다. 

매주 분주함 중에서도 남은 바닥의 물을 한 모금이라도 더 긁어모아 교인들에게 생수를 공급하기 위해 수고하고 애쓰신 설교자들께 진심을 담아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여기까지 잘 오셨습니다.” “여기까지 잘 오셨습니다.”

그리고 할 수 있다면 내년에는 조금 느린 걸음으로, 자신을 돌보며 천천히 걸어가시기를 권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이 길을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불꽃같이 살다 간 설교의 왕자, 스펄전(Spurgeon)은 우리의 책무에 관해, 그리고 그 기간에 관해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선지자들은 그들의 예언을 말할 수 있을 때까지 기근과 전쟁과 재앙 가운데서도 계속 살아남을 것이다. 주의 제사장들은 하늘의 간구가 있는 동안에는 그리고 그들의 마지막 희생 제사가 그 분 앞에 드려질 때까지는 해를 받지 않고 제단 앞에 서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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