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16:13-20)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이것은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에서 베드로가 예수님께 드린 신앙고백이다. 이 고백은 당시 예수님을 세례요한, 엘리야, 예레미야, 혹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던 백성들의 고백과는 본질적인 차이를 보여주고 있는데 백성들은 예수님을 사람의 차원으로만 이해했지만 베드로는 예수님을 사람이 아닌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했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리스도’는 ‘기름부음 받은 자’라는 문자적인 뜻을 가지고 있지만 좀 더 깊이 묵상해보면 ‘십자가’의 의미가 들어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해 그리스도는 세례로, 세례는 십자가로 연결될 수 있기 때문이다.

우선 출애굽기에 보면 아론을 제사장으로 삼기 위하여 기름을 붓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거룩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차원에서 볼 때에 일종의 세례예식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고 할 수 있다. (출 40:13)

다음으로 세례는 십자가로 연결이 되는데 십자가 사건을 세례로 표현한 것을 신약성경 여러 군데에서 발견할 수 있다. (눅 12:40)

이렇게 해서 그리스도를 십자가로 해석해 본다면 상대적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은 부활로 해석할 수 있게 된다. 결국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라는 고백은 ‘주는 십자가에서 죽으시지만 다시 부활하실 분이십니다’라는 의미가 들어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뒤이어 마태복음 16장 21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고난을 받아 죽으시고 삼일만에 살아나실 것이라 말씀하신 때가 왜 ‘이때로부터’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즉, ‘이때’란 베드로의 입술을 통해 십자가와 부활사건을 암시하는 고백이 비로소 나온 이후라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점은 베드로의 고백과 예수님이 말씀하신 십자가, 부활 사건에 대한 예고는 같은 의미의 다른 문장일 뿐인데 베드로는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만일 베드로가 자신의 고백에 대한 의미를 진정 알았다면 예수님을 만류하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으로부터 사탄이라고까지 책망을 받지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이라면 평생, 꿈에서라도 잊지 말아야 할 신앙고백은 베드로가 한 신앙고백이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의 현장에서 이 고백을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활의 영광에 대해서는 관심을 많이 가지지만 상대적으로 십자가의 고난에 대해서는 기피하는 경향을 삶속에서 많이 발견하게 되는 것은 부인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일 것이다. 그래서 마 16:24절에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주님이 말씀하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오늘 본문말씀의 배경이 되는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은 요즘으로 하면 신도시, 첨단도시와 같은 곳이다. 화려한 도시문명 한복판에서도 여전히 변함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함을 말씀하고 계시는 것이다. 우리 모두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온전한 ‘교회’를 세우며 ‘천국열쇠’를 가지는 자들이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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