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눅 12:49~53)

김희성 목사

예수께서 세상에 오신 목적을 이야기 하는 여러 말씀들(눅 4:43; 막 2:17; 막 10:45; 요 6:38 등)이 있다. 그 중에서 “불을 땅에 던지러 왔다”는 말씀은 아주 낯설고 난해하여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해석이 제시되었다.

첫째 불은 예수가 희생될 심판의 불로서 예수의 죽음을 의미한다. 둘째 불은 하늘로부터 내리는 벌로서 선과 악을 분리하는 종말론적인 심판을 의미한다. 셋째 불은 그가 받을 세례와 더불어 인류의 불화와 분열의 불을 의미한다. 넷째 불은 하나님 나라의 ‘심판하는’ 메시지를 전달해 줄 성령을 의미한다. 다섯째 불은 오순절 사건과 오순절 이후의 기독교 선포와 관련하여 부어준 성령을 의미한다.

이 말씀이 난해한 것은 두 단계의 지평이 한 지평으로 융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말씀은 우선 역사 속에서 그 말씀을 하신 예수님의 지평과 그 말씀을 누가문헌(한 질을 이루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말함)의 이 자리에 기록한 누가의 지평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이 본문에서는 예수의 지평에 관한 단서를 제공해주는 말씀이 이어져 있어서 예수 지평의 재구성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

예수의 지평에서의 불
이 말씀은 예수 파송의 목적이 아직 성취되지 않은 사실에 대면한 예수의 자기 개인적인 상황에 관해서 언급하고 있다. 첫 구절에 등장하는 ‘왔다’, ‘불’, ‘불붙음’ 등은 예수의 등장을 하나님 나라의 도래와 관련된 메시야적이고 종말적인 범주에 세운다. 특히 동사 ‘왔다’는 세례 요한이 선포한 “오실 분(메시야)이 왔다”(막 1:7, 9)는 뉘앙스를 내포하는 메시야적인 술어이다. ‘불’은 화상언어로 구약에서 하늘로부터 내리는 벌(창 19:24), 심판(사 66:16), 정결의 도구(말 3:2), 하나님의 말씀(렘 23:29), 혹은 임재(출 3:2), 성령(왕상 18:38) 등의 다양한 은유로 사용된다.

다음 구절의 ‘받을 세례’와 ‘답답함’에 관한 말씀에서 세례의 상은 그의 죽음에 대한 감춰진 암시이다. 구약과 이스라엘 전승에 의하면, 선지자적인 선포에 대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반응은 선지자들의 순교적인 죽음을 야기하는 거부이다. 예수는 이 사실을 잘 알고 바리새인에 대한 화선언에서 선지자들의 죽음을 다음처럼 피력한다: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 즉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스가랴의 피.(눅 11:49~51) 또 회개의 세례를 선포했고 자신에게 세례를 주었던 세례 요한까지도 그렇게 죽었다. 이 사실에서 예수도 자신이 순교적인 죽음을 당할 것을 예고할 수 있었다.(막 8:31; 9:31; 10:33~34)

그러므로 예수의 ‘받을 세례’와 ‘답답함’에 관한 말씀은 전통적인 화상언어로서 그의 파송 목적과 파송의 잔혹한 현실에 대한 예수의 앎을 표현하고 있다.

파송 받은 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백성들로부터 배척을 받아 순교적인 죽음을 당한다. 예수도 예외가 아니다. 죽음을 당하기까지 얼마나 번민이 많았겠는가?’ 종말에 파송된 메신저로서 예수가 가장 원하는 것은 하나님의 메시지, 즉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 나라가 도래한다.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여서 그 나라에 들어가도록 해라. 이 메시지가 확산 되면 죽더라도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그러므로 예수의 지평에서 ‘불이 붙는다’는 것은 ‘말씀의 선포를 통한 하나님의 복음의 확산’을 의미한다.

누가문헌의 지평에서의 불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전체의 문맥에 의하면, 불은 한 마디로 말하자면 오순절 성령의 불이다.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은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불 속에서 시내산에 강림하신 것과 유사하게 오순절에 혀처럼 갈라지는 불로 사도들(새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모을)에게 강림했다고 묘사되었다. 이것은 부활하신 예수께서 지시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행 1:4)을 기다린 것의 성취에 해당한다.

이 사실에 대해서는 이미 부활의 예수께서 피력하셨다.(눅 24:49) 거기서 그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보내주겠으니 이 성에서 기다리라고 제자들에게 약속한다. 누가복음 3장 16절에 의하면 메시야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시는 분이다. 이렇게 하나님 아버지께서 약속하시고, 예수님께서 그것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한 성령이 오순절에 임한 것이다. 오순절에 임한 성령은 예수가 아버지께서 받아서 부어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메시야로 증명된 것이다. 그러므로 누가문헌의 예수는 메시야로서 성령의 불을 붙이기 위해서 오셨다고 할 수 있다.

제자들은 오순절에 받은 성령에 불타서 예수의 증인으로서 담대하게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다. 복음의 확산은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제자들에게 성령의 불이 붙으면 예수에게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 누가의 문맥에서는 다섯 번째 해석이 맞다. 

우리는 이 두 가지 지평의 의미를 다 받아들일 수 있고, 그것을 다음처럼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다. 역사적인 예수의 소원인 불과 같은 주님의 말씀에 불타서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하게 선포해야 한다. 혹은 누가적인 예수의 소원인 성령의 불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담대하게 선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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