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이성훈 목사
피곤에 지친 이들에게 친근하게 느껴지는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하는 자에게 잠을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피곤하여 고개가 떨구어질 때마다 이 말씀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묵상 할 때마다 ‘잠’이 ‘수면’ 그 이상의 의미가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그 생각이 맞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시 127편에서 ‘잠’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쉐나’라고 하는 말이 히브리어 성경에서 문법적으로 볼 때에 단순히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에게 수면을 줍니다”라고 해석하기에는 잘 맞아 떨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대어성경에서는 이 구절을 ‘여호와께서는 사랑하는 이에게 잠자고 있는 중에도 필요한 것 마련해 주시는 도다’라고 번역 했는데 참 의미 있는 해석입니다. 더욱이 시 127편이 속해 있는 제4권과 또한 시 127편과 같은 시(詩)와 군(群)에 속해 있는 120~134편이 모두 ‘하나님께 대한 신뢰’를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어성경의 해석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신뢰하라는 것입니다.

복중에 가장 중요한 복이 있다면 재물도 아니고 명예도 아닙니다. 세상권세는 더더욱 아닙니다. 물론 이것들의 힘은 참 대단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은 한계가 있습니다. 세상에는 쓸데없는 재물과 명예를 가진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것들이 절대로 우리를 행복하게 할 수도, 절대로 복이 될 수도 없습니다.

속아 넘어가면 안 됩니다. 복이라고 하면서 근심과 걱정을 동시에 수반하는 것은 진정한 복이 아닙니다. 잠언 10장 22절에서 하나님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복은 사람을 부하게 하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복은 우리의 하나님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신뢰함이 진정한 복입니다. 온 세상 만물을 만드신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것이 복입니다. 그냥 복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것은 정말로 큰 복입니다. 그래서 그 복을 경험한 사람은 평온합니다. 흔들리지 않습니다.

백문일답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가지 질문을 해도 답은 언제나 하나라는 것입니다. 성경의 어떤 본문에서도 우리는 하나님을 발견하게 되고 예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시 127편에서의 ‘잠’(히.쉐나)을 염려와 근심이 회오리바람처럼 휘몰아쳐 온다고 해도 마음에 평안과 휴식을 주며, 상처와 고통을 치료해 주는 위로가 담긴 ‘복’에 대한 또 다른 표현이라고 보는 이유입니다. 아무리 세상의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도 평안하지 못하면 불행한 삶입니다. 돈과 권세가 때로는 편안함을 가져다 줄 수는 있지만, 우리에게 평안함을 가져다주지는 못합니다. 돈과 권세가 많으면 많을수록 오히려 더 불안해하고 근심할 뿐입니다.

그렇습니다. ‘잠’(히.쉐나)은 주님이 주시는 평온을 표현한 것입니다. 잠자리에 들 때조차도 내일의 성공을 위해서 잠 못 이루고 염려하며 근심하는 이 세상을 향해 주님은 베드로전서 5장 7절에서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염려함으로 키 한자 늘릴 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신실하게 역사하실 하나님을 믿는 믿음 하나면 충분합니다. 정말 우리에게 부족함이 없습니다. 유대인들은 잠자리에서 침대에 들어가기 전 아들에게 가르쳐 주는 매일의 기도가 있습니다. “내 영혼을 하나님께 부탁하나이다” 하는 기도입니다. 이제부터 나의 영혼에 참 믿음과 신뢰를 통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참 평안을 경험하실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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