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단은 핸드폰을 이길 수 있을까?

현대강단과 교회는 미증유(未曾有)의 거대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 서 있는 듯 하다. 핸드폰과 인터넷 혁명은 전통적인 신앙의 패러다임에 새로운 대안들을 요구하고 있으며, 회중의 삶 깊숙이 자리잡은 매스미디어 혁명은 강단에 새로운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일찍이 존 스토트는 텔레비전이 교회와 설교에 끼치는 다섯 가지 해악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였다. 첫째, TV는 사람들로 나태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안락의자에 앉아 텔레비전에 익숙한 사람들은 밖으로 교회모임에 참여하기를 귀찮아 하며 능동적인 봉사와 전도 및 회중예배를 꺼려한다.

둘째, 텔레비전 시청은 사람들의 사고능력을 둔감하고 소극적으로 만드는 경향이 있다. 셋째, 텔레비전은 사람들로 자기 방어에 익숙하게 만들어 복음에 관해 완고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 넷째, 텔레비전은 가공된 현실을 제공함으로 사람들을 심리적으로 혼란시킨다. 다섯째, 텔레비전은 무의식적으로 사람들의 가치판단을 변화시키며 도덕적인 혼란을 야기할 수 있다.”

오늘날 텔레비전보다 더 직접적인 영향력을 발휘하는 매체는 핸드폰이다. 핸드폰은 24시간 함께 하는 해결사이며 장난감이고, 묵상의 도구가 되어 버렸다. 회중들의 세계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라 작은 손바닥 그 안에 있다. 회중들은 교회나 혹은 강단의 가르침 보다 작은 손바닥 안에서 매일매일 쏟아지는 다양한 정보와 그것이 해석하는 가치에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무엇보다 이러한 정보를 전달하는 방식은 가히 혁명적이다. 핸드폰은 문자와 그림, 사진, 동영상을 비롯한 다양한 도구로 흥미진진하고 입체적인 방식으로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전달한다. 그리고 이러한 전달방식은 회중들로 하여금 주로 구두에만 의존하는 설교 전달방식을 구태의연하고 원시적인 방식으로 인식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오늘날 강단은 진리를 위하여 진리를 담는 그릇에 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숙고해야 한다.

이러한 현대 매스미디어의 도전과 그것에 대한 강단의 대응은 이미 서구교회에서 시작되었다. 정인교 교수(서울신대)의 말은 주목할 가치가 있다. “필자가 안식년을 맞아 미국에 머물면서 미국 교회를 탐방할 기회가 있었다. 그들의 예배를 직접 체험하면서 얻은 결론은 대부분 부흥하는 교회의 설교는 그 기본 패러다임이 ‘듣는 설교’에서 ‘듣고 보는 설교’로 변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스킷 드라마와 설교, 그리고 영상과 설교의 결합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였다.”

지난 교회사의 가장 위대한 설교자라고 평가받는 스펄전의 설교가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복음에 관한 열정과 함께 청중에게 어필되지 않던 당시의 설교방식과 결별하고 당대의 시대의 방식으로 전하였기 때문이다.

스펄전은 당대의 대부분의 지루하고 따분한 설교자들과 달리 청중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 방식으로 설교했다. 그런 까닭에 스펄전의 전기 작가들은 스펄전을 ‘혁신가(innovator)’로 평가하며 그의 설교적 접근에 관해 ‘새로운 접근들(new approaches)’로 평가한다.

스펄전의 전기작가 칼릴리는 당시 런던의 교회상황 속에서 스펄전의 자리를 이렇게 논평한다. “애초부터 스펄전은 런던의 목사들의 타입 중 어떠한 범주에도 분류될 수 없는 사람이었다. 그는 홀로 서 있었다. 기존의 전통적인 목사들에게 그는 혁신가로 간주되어 졌으며, 모든 새로운 시도들로 그들과 대조되었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유형의 회중에 적실한 강단을 위한 진지하고 사려깊은 숙고가 필요한 시대이다. 시대의 변화를 간파하고 유비무환의 정신으로 미래를 준비하는 교회와 교단은 복이 있다. 그들이 강단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한국 강단의 새역사를 창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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