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완전 + 불완전 = 완전

이성훈 목사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모든 것이 다 아름답습니다만, 그 중에 가정만큼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구원의 축복을 제외한다면 우리 인류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이 가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듭니다. 어떻게 불완전한 인간이 모여 사는데 가정이 최고의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을까요?

물론 상식적으로는 불완전한 존재와 불완전한 존재가 합하여지면 불완전한 것이 증폭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놀랍습니다. 불완전한 것과 불완전한 것이 더하여져서 불완전을 온전케 하실 계획을 결혼이라는 제도를 통하여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장 18절에 보면 홀로 있는 아담이 외로이 있는 것을 보시며 하와를 만드실 때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하와는 아담의 ‘돕는 베필’이라고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단순히 아담이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와가 도와야 한다는 생각을 갖게 합니다.

물론 이 생각이 그릇된 것은 아닙니다만, ‘돕는 베필’(히.에제르 크네그도)에서 ‘돕는’(히.에제르)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지 않고, ‘베필’(히.크네그도)점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습니다. 이는 아담을 돕는 사람이라는 그 이상의 의미가 담겨 있음을 의미합니다. ‘돕는 베필’(히.에제르 크네그도)에서 ‘베필’(히.크네그도)라는 말을 직역하면 ‘그 앞에 있는’(in front him), 혹은 ‘그와 반대되는’(like opposite to him)이라는 말입니다.

불완전한 한쪽 면이 그와 반대되는 것을 통해 온전한 모습을 갖추어 나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이 경우에 돕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 사이 즉 남편과 아내 사이에는 우열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세상 논리로 보자면 돕는 자와 도움을 받는 자 사이에는 자연스럽게 우열이 형성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베필’(히.크네그도)라는 말은 반대편 또 다른 면의 의미일 뿐 절대로 부족함으로 의미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남자나 여자라는 이유로 인해 차별 대우를 받는다든가 혹은 상대방에게 군림하려고 하는 자세는 결코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남녀의 위치가 본질적으로 결코 동일하지도 않습니다. ‘돕는 베필’(히.에제르 크네그도)이란 각각의 인격체로서 서로 상응하는 위치에 서서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도록 서로 부족한 것을 보충해야 하는 관계여야 합니다.

자연히 신약에서 ‘여자의 머리는 남자가 된다’(고전 11:3)는 말은 남자는 가정에서 어떠한 위치인가를 알고 그 일들을 수행해야 한다는 의미이지, 결코 남자가 여자보다 우위를 차지한다는 말이 될 수 없습니다. 이는 그리스도가 교회의 머리라고 해서 그리스도가 교회의 두목이 되는 것은 아닌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자기 자신을 주신 것처럼 남편은 자기의 아내를 자기의 몸을 대하듯이 사랑하고 아껴주어야 하는 것이 머리의 의미입니다. 그래서 남편과 아내의 관계는 서로 종속되지 않는 개념이지만 서로 반대되는 위치에서 하나님이 부과하신 신비한 종속관계가 형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남자와 여자의 조화를 위해서 허락하신 새롭게 부과하신 종속제도가 바로 결혼입니다.

그래서 결혼이란 하나님이 이 땅에 우리 인간에게 허락하신 놀라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감정적으로 잘 동의가 되지 않는 분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가정이 축복이 아닌 고통과 저주로 여겨지는 상황 때문에 그럴 것입니다. 축복과 저주는 종이 한 장 차이입니다. 고통과 저주의 가정이 하나님이 주신 결혼 제도를 다시 한 번 되새기며 나아가 보십시오. 누구든지 지상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행복한 결혼에 한걸음 더 가까이 다가설 수 있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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