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 7:31~37)

‘과유불급’이란 말이 있습니다. ‘정도가 지나친 것은 오히려 모자란 것만 못하다’는 뜻입니다. 이 교훈을 잘 가르쳐주는 예가 조선시대 유명옥이란 사람이 만든 ‘계영배’라는 술잔입니다. 이것은 지나친 음주를 경계하기 위해서 술잔에 70%정도의 술만 차면 저절로 흘러 나가도록 되어 있습니다.

‘계영배’가 만들어진 얘기가 있습니다. 도공 유명옥이 스승도 이루지 못한 ‘설백자기’를 만들어 명성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유명세에 들떠서 술로 허랑방탕하다가 재물을 전부 탕진했습니다. 그제야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술을 적당히 먹게 만드는 ‘계영배’를 만들었다는 이야기입니다. 성공적인 인생에는 반드시 절제가 필요함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성도가 승리하는 비결이 절제에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들이 우승하기 위해서 모든 일에 절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저들은 썩을 면류관을 얻으려고 절제하는데, 하물며 신앙인은 썩지 않는 면류관을 위해서 절제해야 되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본문 27절에서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절제가 처음뿐만 아니라 끝까지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는 모든 일에 절제하여 주님 오시는 그 날까지 신부로서 단장하며, 흠결없이 보존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승리자는 자신을 다스리는 자라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16:23)고 하였습니다. 자기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모든 일에 절제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절제가 쉽지만은 않다는 것입니다.

돼지는 위의 용량에 70~80% 정도만 배를 채운다고 합니다. 사자는 배가 부르면 지나가는 토끼도 잡아먹지 않는다고 합니다.

반면에 인간은 몸에 좋다고 하면 혐오스러운 것까지도 마다하지 않고 먹습니다. 성경은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롬3:10)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죄성과 절제의 한계성을 드러내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절제는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셔야 가능한 일입니다. 이사야 48장 9절에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노하기를 더디 할 것이며 내 영광을 위하여 내가 참고 너를 멸절하지 아니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과 영광을 위해서 우리에 대해서 길이 참으시고 예수 안에서 부르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승리를 우리에게 기대하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승리의 길을 가도록 힘을 공급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내 안에 오직 예수가 살아계시고, 예수로 충만할 때, 절제할 힘을 얻게 되고, 모든 일에 절제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절제가 요구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절제하지 못해서 낭패를 보는 인생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순절 기간을 통해서 절제의 모범되시는 예수님을 묵상하며, 닮기를 바랍니다. 절제는 나를 이기고 세상을 극복하며, 주님께서 기대하시는 승리를 얻게 하는 힘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일에 절제하시므로 주님의 뜻을 이루고, 주님께서 나를 위해서 약속하신 그 승리를 이루며 사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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