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의 발견

설교에서 서론의 주요한 목적은 회중의 관심을 확보하는 것이요, 진행될 설교를 안내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서론에서 흥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설교의 지루함은 ‘거룩함’과 결코 동의어가 아니다. 오래전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 윌리엄 생스터(W. Sangster)는 이렇게 말했다.

“마귀를 대적하듯, 설교의 서론이 지루해지려는 경향을 대적하라.” 특히 전도설교, 혹은 복음설교는 더욱 그러하다. 전도설교는 영혼을 얻기 위한 힘겨운 전투이다. 따라서 설교자는 영혼을 얻기 위하여 설교의 서두에서 힘찬 기병대의 함성과 우렁찬 대포소리로 잠든 영혼을 깨워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복음은 그들의 귀에 들려지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서론을 시작하는 것이 좋은가? 여러 가지 방법들이 가능하겠지만, 귀납법적으로 설교를 접근할 때 크게 네 가지로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흥미로운 이야기로 시작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이야기는 사람들의 흥미를 쉽게 획득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극적인 이야기를 서두에 꺼내는 것은 현명하지 않다. 서두의 이야기가 끝나면 설교의 본론에서 오히려 집중력이 반감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교회와 성도들의 삶의 이야기로 시작할 수 있다. 사람들은 남의 이야기보다 자신의 이야기, 우리의 이야기에 더욱 관심이 많다. 따라서 이야기 중 최고의 이야기는 자신의 이야기요, 우리의 이야기이다. 먼 이국에 피어있는 화려한 꽃보다 내 집 오두막에 피어있는 들꽃이 더 정겨운 법이다. 만약 교회 공동체와 교회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한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집중하여 귀를 기울일 것이다. 그러나 이야기의 소재는 신중해야 한다. 설교주제와 연관된 교인들의 덕스러운 이야기나 교회행사와 연관된 에피소드가 좋다. 

셋째, 유머로 시작할 수 있다. 유머는 강단과 회중석 간의 거리를 좁히며 경직된 회중들의 마음을 여는 효과적인 도구이다. 그러나 설교의 내용과 상관없이 그저 웃기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하는 농담은 금물이다. 그러한 유머는 회중에게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저 인간의 만담이라는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 따라서 유머의 내용은 반드시 본론의 내용과 맥을 같이 해야 한다.

넷째, 사진이나 짧은 영상으로 시작할 수 있다. 설교 주제와 연관된 사진이나 짧은 동영상은 단번에 회중의 주의를 획득한다. 유튜브(youtube)나 SNS의 흥미롭고 감동적인 자료들을 서두에서 사용할 수 있다. 특히 절기 때나 특별 예배 때에 더욱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서론의 유용성에도 불구하고 필자가 믿기에 최고의 서론은 ‘생활의 서론’이다. 사랑하면 그의 목소리가 듣고 싶고 그의 목소리가 정겹기 마련이다. 사랑하면 그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기 마련이다. 설교자가 일상의 삶을 통하여 자신의 교인들에게 신뢰받고 사랑받는 설교자라면 굳이 흥미있는 예화를 사용하지 않아도 교인들은 그의 설교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또한 그 설교자가 성도에게 풍성한 꼴을 먹이기 위해 성실한 말씀 연구와 최선의 설교 준비를 하는 신뢰받는 설교자라면 교인들은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설교의 서두부터 한마디도 놓치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설교의 서론이란 어찌보면 강단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강단에 내려가는 그 순간 설교자의 삶을 통하여 시작되는 것이다.

세상에서 지친 영혼들이 목자의 집의 초인종을 누를 때, 따뜻하고 환한 웃음으로 풍성한 말씀의 ‘거실’로 안내하는 설교자는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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